내게 주어진 모든 것을 사랑으로!!

마음따라 발길따라

내 페이스따라 내변산을 걸었다(2)

물소리~~^ 2017. 3. 14. 11:25




봄 햇살 속 비타민D를 마음껏 받으며 발맘발맘 걷노라니

세찬 몰소리가 들리면서 사람들 소리도 들린다. 직소폭포다!!

지금까지 서로 새살거리며 다정히 걸어오다 느닷없이 만나는 낭떠러지에서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제 몸을 던지며 혼을 불사른다.

아, 저 물들은 무서울까, 아님 스릴을 느낄까, 거칠 것 없는 자유로움일까


 

▲ 비류직하삼천척 (飛流直下三千尺) 이다!

변산8경 중 제2경에 속하는 직소폭포는 내변산의 가장 중심이다.

폭포의 장관과 밑으로 이어지는 제2· 제3폭포와 분옥담, 선녀탕은 변산 최고의 비경으로

“직소폭포의 선경을 보지 않았다면 감히 변산을 말하지 말라”고 말할 수 있는 곳이다

 


▲ 분옥담

 

 

폭포아래 소에서 내려온 물은 굽이쳐 흐른다.

물은 그렇게 제 몸을 굽혀가며 흘러가는 유연함을 지녔다.

물들은 낭떠러지에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잠깐 숨을 고르느라

또 다른 소를 만들어 놓고 또 내려간다.

아마도 바위에 부딪혀 멍든 마음 빛일까

마음의 멍이 옥빛이라면 내 마음도 하마 옥빛일까

이제 그 소에는 용이 살고 선녀들이 목욕을 하는 곳 이어야한다.

정말 이곳에도 조금 아래에 선녀탕이 있었다.

 

 

▲ '선녀 독탕'


▲ '선녀 자매탕'

 

우리 동양인들은 폭포를 사랑하고, 서양인들은 분수를 사랑한다고 했던가.

깊은 산 속에서나 만날 수 있는 폭포를 좋아하는 마음이기에

비류직하 삼천석이라고 자연스레 표현할 수 있었을 것이다.

멋지다! 좋다!를 반복하며 경치를 마음에 담고 천천히 다시 걷기 시작한다.

어디쯤 걸어오니 나이드신 어르신이 길가에 앉아 계셨는데

나를 보더니 끝까지 가려면 얼마나 가야하느냐고 물으신다.

어디 끝이냐고 물으니 폭포라고 하신다.

조금만 더 가시면 된다고 했더니 힘들다고 갈지 말지 망설여진다고 하시니.

이곳은 그렇게 쉽게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찾아오는 내변산 깊은 골짜기인 곳이다.



▲ 왼쪽이 나무테크, 앞쪽 바위에 전망대

 

폭포에서 한참을 내려와 큰 호수를 만났다. 직소보다.

폭포에서 내려오는 물을 받아 놓는 곳으로 깨끗하기도 하거니와 수량이 엄청나다.

부안댐이 건설되기 전에는 이물을 상수원으로 사용했었다고 한다.

호수변의 나무테크를 따라 걷다 전망대에 올랐다.

그새 난간도, 전망대도 새로이 조성된 것 같다.

이곳 전망대는 미선나무 열매를 형상화한 하트모양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미선나무속(―屬 Abeliophyllum)의 단 하나뿐인 종인 미선나무는

충청북도 괴산군 송덕리와 진천군 용정리의 특산인데,

변산반도에서도 자라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하니 이곳이 미선나무 자생지라고 한다.

 


▲ 전망대에서 바라보니 내가 올랐다 내려온 관음봉이 직소보를 굽어보고 있다.

거대한 바윗덩어리의 산이 웅장하다.

직소폭포에서 쏟아져 내려온 이 물줄기는 봉래구곡을 지나 부안호를 거쳐 바다로 간다.

오른쪽 호수변의 가지런한 길이 나무테크~ 참으로 멋진 길이다. 

 



▲ 직소보 다리를 지나 자연보호헌장탑이 있는 곳에 도착

 

나는 이곳에서 또 한 번의 선택의 기로에 빠졌다.

1.8km만 걸어서 내변산분소 주차장으로 빠지던가 아니면

월명암을 거쳐 남여치로 넘어가는 4km 이상을 걸어야 할까가 망설여진다.

남편은 폭포에서 차를 주차해둔 원암마을로 되돌아갔다.

전화로 어찌하면 좋을지 물으니 나의 체력을 묻는다.

조금 힘들기는 하지만 괜찮다고 하니 그럼 월명암을 거쳐 남여치로 내려오라고 한다.

지금까지 내가 지나온길, 지금 순간에 선택한 코스를 변산반도 최고 코스로 꼽는다.

지금이 2시 30분, 앞으로 두 시간 이상을 걸어야 한다.


이 길은 예전에 한 번 다녀온 경험이 있어

월명암까지의 오르막길이 매우 험하다고 알고 있는데…

내 체력이 될까 싶은 의구심이 자꾸 망설이게 했지만 가보겠다고 말을 하고 말았다.

남여치에서 만나기로하고 오르기 시작!

한 번 선택한 일에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 힘듦도 이겨내야 한다.

그래야 성취감이 찾아 올 것이다.


 


 

 

시작부터 오르막이다.

높이가 낮은 산?? 절대 아니다.

천천히 호흡을 깊게 하며 계속 오르고 올랐다.

중간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이 나더러 어디까지 가느냐고 묻는다.

남여치라 하니 놀라는 표정이 역력하다. 지금 나는 1시간에 월명암까지 가야한다.

예전에 이곳을 다녀오면서

그 옛날 스님들은 이 길을 어떻게 다녔을까하는 소회를 피력한 바 있다.


 

 


 

▲ 이 길도 새롭게 정비를 많이 한 것 같다

저 낭떠러지 길을 걸으면서 예전에는 무서움에 오금이 저렸는데

이제는 철제 난간을 설치해 놓았다.

 


 

 

사실 오늘 이 산에 오면 봄꽃을 만날까 기대감도 있었지만

예전과 달리 내 체력에 정신을 쏟느라 눈길을 자주 돌리지 못했다.

때론 등산로를 벗어나야 귀한 꽃도 만나곤 하는데 오늘은 그럴 기력이 없다.

한 순간 두려움이 번진다. 지금 여기서 되돌아갈까?

아니다 여기까지 왔으니 앞으로 가는 게 빠를 것이야 라는 생각을 반복하며

오르면서 쉬는 시간을 자주 가졌다.

그렇게 앉아서 바라보는 산의 육중한 몸매는

나에게 뜻 모를 든든함을 안겨주면서 힘을 북돋워준다.


▲ 위험구간의 소나무 자태가 멋지다.

예로부터 변산에 유명한 것 세 가지로

변재(邊材), 변청(邊淸)(), 변란(邊蘭) 삼변(三邊)을 꼽았다고 한다.

변재(邊材)는 변산의 소나무를 이르는 것인데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무분별한 벌목으로

변재가 거덜 나면서 변청도 변란도 고갈되면서 지금은 보기 어렵다고 한다.

내가 오늘 굳이 이 길을 택한 것은 행여 꽃을 만날까도 싶은 마음이었는데 아쉽다.

 

 

 

 

▲ 등산로는 온통 바위

조용헌 박사는

산 중 암벽이야말로 도시 독의 해독제라 했다.

돼지고기에 새우젓의 궁합이란다.

지금 비록 몹시 힘들지만

내 몸의 독을 저 바위가 씻겨주고 있다하니 발걸음이 자꾸 앞으로 나아간다.



 

멋진 소나무 곁에 앉아 쉬노라니 나무에 기대고 싶은 마음이 든다.

하지만 위험하다. 대신 내 배낭을 조심스레 올려놓고 한 컷 찍어주니 마음이 한결 풀린다.

이제 저 높이만 오르면 곧장 편안한길이 나오고 그 길 따라 가면 월명암이 나올 것이다.

힘내자!


▲ 빈 나뭇가지 사이로 쌍선봉이 보인다.

저 아래에 월명암이 있는데....

하지만 저 곳은 비 탐방로라고 하였다. 왜일까?

월명암 대웅전 뒤로 올라가는 낙조대도 통제지역이라는 것을

지면을 통해 일찍이 알고 있었기에 아쉽다. 하지만 낙조를 보려면 어차피 넘 이른 시간이다.

 

 

▲ 드디어 편한 길을 만났다.

산 중간쯤을 가로지르며 이어진 길은 응달 길이었으니

예전의 초여름에 걸으면서 시원함을 느꼈던 길!

역시 그 길에는 아직도 바위에 붙은 얼음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발가락들이 힘들다고 한다.

응달진 곳에 이르니 쉽게 몸이 식는다. 그래도 기분이 좋다.

 

 

월명암에 도착! 자연보호헌장 탑으로부터  1시간 5분 걸렸다.

대한민국 3대 영지처(靈地處) 중 하나인 월명암은 이야기와 창건신화가 풍성한 절이니

그 이야기는 따로 정리를 해보고자 한다.

또한 이곳은 변산8경 중 제4경에 속하는 월명무애의 장소다.

월명무애(月明霧靄)는 쌍선봉 중턱에 있는 월명암에서 내려다보이는

안개 낀 아침 바다의 신비한 경치를 일컬음이다



 

 

 

 

 

이곳에서 10분만 머뭇거릴 것이다.

월명암 마당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참말 좋다.

내변산 줄기가 환히 보이니 고요히 앉아 있기만 해도 마음이 절로 정화될 듯싶다.

머리가 긴 삽살개가 나를 호위하듯 바라본다.

많은 사람들을 봐서일까 아니면 원래 순한 심성일까.

나를 반기는 듯싶은 인상을 받았다.

대웅전에 인사하고 요사채 마루에 준비해둔 따듯한 약차 한 잔을 마시고 남여치로 향했다.

이제 마음이 느긋해진다.

 

 


 


 


 


 


 


 


▲ 해우소를 가려주는 멋진 나무

저 나무계단을 타고 내려가면 남여치로 가는 길

이곳에서 다시 2km 를 가야한다고 이정표가 알려준다.

 

 

▲ 쌍선봉 삼거리이정표지만

쌍선봉 방향의 화살표는없다. 통제구간이기 때문이다.

저곳에 오르면 변산의 모든 풍경을 다 만난다 했는데

월명암의 수행방해 및 수목보호를 위해 통제한다고 하였다.

아무려나 국립공원인데…

 


 

 

 

월명암을 조금 지나니 작은 옹달샘이 있고 그 옆에 법구경이 걸려있다.

아마도 목을 축이며 쉬어가며 마음에 새기라는 명언일 것이라 여겨진다.

하지만 샘물은 마셔보고 싶다는 마음이 일지 않았다.

흐르지 않고 고여 있다는 내 생각인데…

그래도 산에 사는 동물들의 중요한 식수가 아닐까.

무엇 하나도 다 존재의 이유가 있는 법인데

나는 또 하찮게 여기는 마음을 앞세우고 말았구나!


▲ 드디어 남여치에 도착. 오후 4시 56분이다.

 

월명암에서 이곳까지의 길은 어려웠다. 순한 길이기도 하고 사납기도 하였다.

하지aks 마지막을 마무리하는 정성스런 마음으로 천천히 걸었기에 몸에 무리는 없었다.

남편이 조금 올라오면서 나를 마중한다. 참 편안했다.

 

남여치의 남여는 한자로 藍輿 다

남여는 지붕이 없는 가마를 말하는데

전해 내려오는 말에 의하면 조선시대 이완용이

전라북도 관찰사로 있을 때 여기서 남여(藍輿)를 타고 낙조대, 쌍선봉에 올랐다고 해서

이 고개를 남여치라고 한다고 하니 별로 반갑지 않은 이야기다.

나라를 팔아먹은 사람의 흔적도 이렇게 남겨 놓는 것일까

어쩐지 유난히 힘든 길이었음이 새삼스럽다.

 

종아리가 당기고 아프다

꽃은 만날 수 없었지만

근 2년 만에 오전 11시 10분 부터 5시간 이상을 걸은 날이었다.

 

참 뿌듯한 하루였다.

 

▲ 내변산에 남긴 내 발걸음 數

 


▲ 등산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변산의 유명한 바지락죽을 맛있게 먹고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