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구항 전경
느닷없이 남편이 홍게 먹고 싶지 않으냐고 묻는다. 웬 홍게?
아픔을 겪고 나서 약해진 면역력에 행여 감염이 올수도 있으니 어패류를 삼가라는 조언을 많이 들은 터라 관심이 없었는데 느닷없이 홍게를 들먹이니 조금 생소한 느낌이 들었다. 요는 남편이 영덕에 가고 싶었던 것이다. 전국 길이라면 꿰뚫고 있는 사람이라 함께 어딜 가든 길 찾는 걱정 없이 다니는데, 지난해, 그러니까 20여일 차이로 지난해라고 부르려니 참 많이도 어색하다. 12월 26일 경북 상주에서 영덕까지 동서를 잇는 고속도로가 개통되었다고 하니 한 번 다녀오자는 뜻이었다. 마침 연말, 월말이 겹쳐있는 시기의 업무에 조금 마음의 부담감이 쌓이고 있었는데 지난 1월 7일 토요일 아침 이른 시간에 그냥 훌훌 따라 나서고 말았다.
조수석에 앉아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풍경을 따라 달리는 재미도 쏠쏠하다. 상주에서 새로 난 고속도로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짙은 안개로 앞이 어두웠지만 아침 안개들도 새로운 고속도로에서 새로움을 느끼고 싶은가보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고속도로가 영덕까지의 거리만 단축시켜 준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쳐 지나며 만나는 나들목의 표지가 퍽 낯익은 이름들을 달고 있었기 때문이다.
빠른 것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하여 때론 일부러 국도를 이용하기도 하지만 오늘만큼은 빠름을 타고 달려보면서 더 가까워진 명승을 꼽아보면서 언제 다시 저곳을 가 보아야지 하는 마음 다짐에 혼자 마음 부풀기도 하니....
영덕에는 대게가 있다. 크다고 해서 大게가 아니라 다릿마디가 대나무 같다고 해서 ‘대게’라고 한단다. 지금 한창인 대게 철의 대게는 살이 차고 단단하면서 맛있는 때라고 한다. 그동안 조금은 불편한 교통사정으로 그리 큰 명성을 얻지 못했지만 고속도로를 타고 제철 영덕 대게를 맛보러 오는 관광객들이 크게 늘어서인지 강구항 그 어느 곳에도 차를 주차할 수 없었다.
주차도 못하고 항구를 빠져 나오는 데만 몇 십분은 걸렸다. 잠시잠시 밀리는 차들 사이로 바라보는 항구 바닥에는 붉은 홍게가 산처럼 쌓여있다. 쌓여있는 홍게를 빙 둘러서서 경매를 하는 모습에서 진정 삶의 현장을 만난 듯싶으니 구경 오기 잘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세상에~~ 홍게가 대게는 아니라하니 새삼스럽다. 요즈음 대게는 별로 없고 홍게보다 훨씬 비싸다고 한다.
우리는 할 수 없이 그냥 그렇게 국도 7번을 타고 동해바다를 바로 옆에 끼고 위로위로 올라갔다. 영덕은 대게만 유명한 것이 아닌가 보다. 가는 길목 곳곳에서 과메기를 엮어 말리는 풍경을 자주 만났다. 이곳 과메기는 꽁치가 아닌 청어과메기로 진짜 과메기라고 한단다. 번들거리며 말라가는 모습이 풍요로워 보였지만 내 입맛을 당기지는 못하니 그냥 풍경으로만 만나고 있을 뿐이다.
이곳의 해안도로를 '블루로드' 라고 관광안내 팜플렛에 적혀 있다. 진정 푸른 길! 이다. 영덕은 마치 저 동해의 푸른 바다가 제 것인 것처럼 부르고 있었다. 그래도 손님일 뿐인 우리로서는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니 어쩌면 이곳의 전매특허일지도 모르겠다.
영덕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면서 만나는 곳곳에는 게 모양의 조형물이 가득하다. 창포말등대가 그러하고 해안가를 따라 걷는 길의 울타리에도 게들이 서 있다. 풍력단지에도 게 조형물이 있었다. 경정해변, 축산항, 고래불해수욕장까지 연결되는 길은 20번 지방도로다. 7번 국도와 지방도를 넘나들며 동해안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월송정까지 왔다.
월송정은 관동팔경 중 하나로 정자 주변의 해송이 숲과 정자에서 바라보는 푸른 동해, 특히 일출명소로 널리 알려져 있다하니 우리 선조님들의 탁월한 눈썰미가 새삼 자랑스럽다.
고속도로를 따라 국토를 가로질러 왔고, 싱싱한 홍게를 먹어보기도 했다. 동해안 7번 도로를 위쪽에서 정동진를 따라 내려오긴 했어도. 이번처럼 영덕이라는 곳을 샅샅이 살펴보기는 처음이다. 한 지역의 그 무엇을 기억시키는 힘은 자연 풍경이 있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또한 그 풍경 속에는 역사적인 인물들이 함께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까워진 마음거리를 따라 언젠가 풍경과 역사 속 인물들은 나를 초대할 것이니 그 초대에 기꺼이 응 할 것이라는 다짐을 남겨두고 또 다시 고속도로를 달려 집으로 돌아왔다.
▲ 고속도로에서 일출을 맞이하다.
▲ 상주부터 시작하는 상주 영덕 간 고속도로에 진입하자마자 자욱한 안개가 가득하다. 중앙분리대의 파란색 줄이 선명하다. 이는 참 잘한 것 같다. 평소 어두울 때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똑같은 길에서의 착시현상인지 중앙분리대의 분간이 안 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파란색 줄이 이런 걱정을 덜어 줄 것이라 생각하니 기존 고속도로 전부에도 이런 선을 중앙분리대에 넣어주었으면 싶다.
▲ 차량에 장착된 내비게이션을 업그레이드하지 않은 탓에 내비는 새로운 길을 인식하지 못하고 길을 잃고 길 없는 곳에서 방황하고 있다
▲ 얼른 스마트폰의 T MAP을 실행해보니 폰은 나는 잘 알고 있다는 듯 정확하게 길 안내를 해준다. 이러니 스마트 폰 매력에 안 빠질 수 있을까.
▲ 의성휴게소
아담한 크기의 휴게소도 안개에 묻혀 있다. ▼
▲ 이제 청송도 빨리 갈 수 있겠구나!
청송 사과도 그렇고 청송은 멀기도 하지만 지방도, 국도를 따라 돌고 돌아가는 육지의 오지라 알고 있었다. 이제 이 고속도로를 달리면 청송의 문화역사지도 이제는 조금 쉽게 만날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차오른다. 차가 달리는 거리보다 내 마음에서 느껴지는 거리감이 더욱 가까워진 것이다.
▲ 이 고속도로는 150개의 터널과 교량이 있다고 한다.
▲ 드디어 영덕 톨게이트에 도착 역시나 ‘게’ 문양이 우리를 맞이한다.
고속도로를 타고 온 사람들일까? 아직 점심시간이 이른 시간인데도 엄청난 차량들과 사람들로 강구항은 복잡했다. 어느 곳에 주차도 못하고 그냥 항구를 빠져 나오는데 만도 30여 분이 소요되니 우리는 삼사해상공원으로 향하고 말았다.
▲ 삼사해상공원 입구에서 ▼
▼ 영덕어촌민속전시관
우리는 그렇게 강구항을 빠져나와 지방도20번 길을 따라 북으로 올라갔다. 해파랑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푸른 바다를 계속 오른쪽에 끼고 달리는 기분은 정말 좋았다. 가는 도중에 풍력발전단지, 해맞이공원 등을 바라보았고 항구에서 오징어잡이 배를 만나기도 하였다. 어부들의 노고로움에 앞서 풍요로움을 먼저 느낄 수 있으니 흐뭇하기도 하다.
▼ 월송정
▲ 월송정에서 바라본 동해
▼ 조금 한가한 후포항에 들러 홍게를 먹었다.
▼ 수족관의 홍게
#. 지난 1월 7일 다녀왔는데 연말 업무에 바쁘다는 핑계로 이제야 정리를 했다. 그냥 지나칠까도 했지만 사진들이 아까워 기록으로 남겨두자는 의미로 간추려 보았다.
'마음따라 발길따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 페이스따라 내변산을 걸었다(1) (0) | 2017.03.13 |
---|---|
禮가 아니면 움직이지말라 (0) | 2017.01.30 |
섬 산에서 俗에 속한 마음을 풀어내다. (0) | 2016.12.21 |
巖능선 따라 섬 산 풍경 속으로 (0) | 2016.12.20 |
비금도를 찾아가다 (0) | 2016.12.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