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고양이로소이다
고월 이장희
꽃가루와 같이 부드러운 고양이의 털에
고운 봄의 향기가 어리우도다
금방울과 같이 호동그란 고양이의 눈에
미친 봄의 불길이 흐르도다
고요히 다물은 고양이의 입술에
포근한 봄 졸음이 떠돌아라
날카롭게 쭉 뻗은 고양이의 수염에
푸른 봄의 생기가 뛰놀아라
1924년에 발표된 고월 이장희의 詩.
시인 이장희는 1900년 1월 1일에 29세의 나이에 요절한 천재시인이다.
봄볕에 졸고 있는 고양이 한 마리에서
우주만물이 생동하는 봄을 담아내고 있는데,
고양이의 털, 눈, 입술, 수염의 각 모습에서
봄의 모든 것을 읽어내며
그 무엇 하나도 놓치지 않는 시인의 섬세함이 느껴진다.
학창시절에 이 시를 배우면서 고양이에 대한 거부감이 조금은 스러지긴 했지만
아직도 고양이를 만나면 도망가는 나의 습성이다.
오늘 만난 따스한 햇살 가득한 담장 밑의 고양이는
‘나를 찍어 주세요“ 하듯 나를 빤히 바라보며 봄을 즐기고 있었다.
꾸벅 졸고 있는 고양이에게서 나른한 봄이 어린다.
인기척에 눈을 뜨고서도
꼼짝하지 않는 고양이에게서
봄을 빼앗기지 않겠다는 다부짐이 보인다.
긴 꼬리로 발을 감싸고 있으니
아마도 발이 아직은 시린 것일까
남아있는 겨울에 대한 옹골찬 반항처럼 야무지다.
이처럼 나조차 흉내 낼 수 있는 시인의 감성표현은
평범하면서도 친근하고 무언가를 생각케하니
햇살 좋은 어느 봄날에 고양이를 만나면 생각나는 詩
'봄은 고양이로소이다' 를 읊어 본다.
▲ 황묘농접도(黃猫弄蝶圖) / 김홍도
사진출처 / 인터넷
나의 사진 속 고양이의 털빛이 마치 김홍도의 '황묘농접도‘ 속 고양이를 닮아 있다. 김홍도의 '황묘농접도'는 누군가의 생신을 축하하기 위해 그렸다고 한다. 그림 속의 고양이와 나비, 중국어로 고양이 묘(描)는 칠십 노인 모(耄) 字와 발음이 같고 나비 접(蝶)은 팔십 노인 질(耋) 字와 발음이 같다고 한다. 하여 고양이와 나비는 칠팔십 세의 노인을 상징하는데 고양이가 나비를 바라보고 있으니 칠십 고개를 넘기고 팔순을 바라보는 분께 생신 축하로 드리는 그림일 것이라고 추정한다.
빨간색 패랭이 꽃, 그리고 이끼가 낀 바위가 있는데
패랭이꽃의 또 다른 이름은 石竹花. 죽(竹)은 축(祝)하를 의미하며
크고 작은 바위는 든든하며 오랜 세월 변함이 없어 장수를 상징한다고 한다.
제비꽃은 여의초(如意草)라고도 부르니 뜻대로 이루어진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소재들이 지닌 상징성을 음미하며 그림을 바라보면
'일흔 살, 여든 살이 되도록 건강하시어 장수하시고
모든 일이 뜻대로 이루어지기 바랍니다.' 라는 덕담을 읽을 수 있으니
그림 한 장으로 무엇을 축하하면서 주고받는 정겨운 마음들을 지닌 우리 선조님들~~
이제 달력상으로 봄이 시작되는 3월 첫날!
문득 햇살을 즐기는 고양이로부터 따스한 봄볕을 느끼고
고양이를 그린 민화를 떠올리며
봄이 되어 생기를 되찾는 모든 만물에게서 기운을 받는 활기찬 날들이 되시라고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께, 선조님을 흉내내는 마음의 덕담으로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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