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여뀌
옛날 옛날에
휘영청 달 밝은 밤이면
도깨비들이 마을로 내려왔다지요.
사람들은 도깨비를 물리치려고
대문밖에 여뀌꽃을 심어놓았대요.
수많은 꽃을 달고 있는
예쁜 꽃빛에 도깨비들도 홀렸는지
문밖에서 밤새 여뀌꽃송이를 헤아리다가
그만 날이 밝으니 도망치듯 돌아갔다네요.
하기야
저 많은 꽃송이 알갱이들을 어떻게 다 헤아리겠어요.
여뀌들은 서로 부비고 웃으며
도깨비들을 홀렸겠지요.
사람을 홀리려다
오히려 홀려 돌아간 도깨비
헤아리고 헤아려도
또 헤아려야하는 인생살이가
여뀌꽃을 닮았나 봅니다.
그래도 오돌토돌 야무지게 예쁘잖아요?
▲ 여뀌
여뀌라는 이름의 유래는
꽃이 붉고 그 맛도 매워서 귀신을 쫓는다는 뜻의 역귀(逆鬼)에서 비롯되었다고도 하고
꽃대에 작은 꽃이 줄줄이 엮여 있는 모습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일부 지방에서는 맵다고 '맵쟁이'라고 부르며
영어명도 워터 페퍼(Water pepper, 물후추)이다.
아마 도깨비들도 이들의 강한 응집력과
매운맛에 놀랐을 것이다.
여뀌 종류는 근 40여 종에 이르지만
주변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것은 개여뀌로
밭가나 숲에서 군락을 이룬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대개 '개' 자가 붙으면 본래 것보다 쓸모가 없음이라는 뚯인데
개여뀌는 여뀌의 매운맛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여뀌는 종종 소설에 등장하기도 한다.
김동리의 역마에도, 김주영의 홍어에도, 최명희의 혼불에도 등장하고,
여뀌꽃만를 수놓는 고운 여인들도 있고,
화가들의 눈에 들어 모델이 되기도 했던 꽃이기도 하니
그만큼 우리에게 흔한, 잡초에 가까운 친숙한 꽃이기도 하다.
요화하마도(蓼花蝦蟆圖)(20×14.8㎝, 비단에 수묵담채) /겸재 정선
사진 출처 / 인터넷
한여름 여뀌 풀 아래서 더위를 식히던 개구리가
곤충을 보고 잡으려고 뛰어오르는 모습을 묘사한 그림이라고 한다.
여뀌를 뜻하는 한자 `료`(蓼)는
중국어에서 무언가를 끝마친다는 의미의 `료`(了)와 같은 독음을 갖고 있으며
폴짝폴짝 뛰어 다니는 개구리는 신분 상승을 뜻하는 행운의 동물로 여겨진다는 점에서
여뀌 아래에서 곤충을 향해 뛰어오르는 개구리는
학문을 갈고 닦아 관직으로 나아가는 뜻을 이루고자(완료) 하는
선비의 바람을 담은 것이라 해석한단다.
우리 주변에서 만나는 흔한 꽃에
흔하지 않는 마음으로 바라보며 의미를 부여하며 살았던
우리 선조들의 생활이 발견될 때면 참으로 뿌듯한 마음이 된다.
여뀌 꽃 하나로 이 가을을 다 차지한 듯싶은 내 마음이다.
▲ 이삭여뀌
▲ 미꾸리낚시
▲ 명아주여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