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의 주요 등산로는 50여 곳에 이른다고 한다.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 45km에 달하는 종주를 한 번에 하지는 못했지만 구간구간 다닌 길을 이어보면 얼추 종주를 하지 않았나 하는 자부심을 가져 보기도 한다. 그럼에도 철쭉으로 유명한 바래봉을 오르지 못했다. 그곳은 주 종주 능선에서 벗어난 곳이기도 하지만 철쭉 피는 시기에만 오르는 곳이라는 나만의 인식으로 그 시기를 놓치면 금세 잊어버리곤 했던 것이다. 올 들어 부쩍 바래봉을 오르고 싶었다. 하여 언니랑 철쭉 피는 시기인 5월 중순 경에 다녀오자는 약속을 해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어제 아침 갑자기 다녀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내 체력이 어느 정도 인지도 가늠하고 싶었고 지금 철쭉제를 하고 있다는 기사도 보았다. 또한 행사장인 지리산허브밸리 주차장에서 바래봉 까지는 왕복 3시간이 소요된다고 하니 시간상으로는 충분히 안성맞춤이지 싶은 마음이었다. 토요일 아침 일찍 남편과 함께 출발했다. 다행히 아이들도 일정이 있어 일요일에나 온다하니 시간도 여유로웠다.
미세먼지로 인해서일까? 시야가 청명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맑음이었다. 2시간여를 달려 주차장에 도착하니 행사장을 알리는 커다란 애드벌룬이 하늘에 떠 있고, 땅위에는 수 십 개에 달하는 천막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수많은 차량들, 그리고 관광버스에서 쏟아내는 엄청난 사람들이 행사장과 산을 오르는 곳으로 바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산 속의 산을 품고 있다는 지리산은 이렇게 사람들을 품어주며 사람의 산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이 산을 삶의 터전으로 삼아 살아가는 사람들의 수고로움이 행사장에 펼쳐져 있는 듯, 온갖 산야초들이 풍성하기만 하다. 축제장은 내려와서 돌아보기로 하고 곧장 바래봉으로 향했다. 천천히 아주 느림의 행보를 하기로 작정했는데도 훅 끼쳐오는 산내음과 맑은 공기에 절로 마음이 바빠진다. 산에 오면 늘 그랬듯, 남편과는 어느 시점부터는 동행이 아니 되는 터 이리저리 해찰하며 혼자 걸었다.
햇살은 아직 부드러웠지만 벌써부터 그늘을 찾아 걷는 사람들이 많다. 약 1km를 걷는 구간은 아주 편안한 길이었다. 길 양쪽으로 펼쳐진 철쭉 군락지의 꽃들은 이제 막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개화시기보다 이르게 찾아온 듯싶었다. 기대심이 컸을까? 꽃들의 자태는 그리 예쁘지 않았지만 산에 왔다는 마음만으로도 충분히 설레고 좋았다. 나로 하여금 여기까지 오게 한 산의 모든 것들이 제각각의 모습으로 나를 반기고 있었다.
어느 시점부터일까 오르막길이 시작되고 있었다. 잘 다듬어진 등산로가 아주 오래된 길임을 짐작케 한다. 저 위 산의 주능선까지 이어지는 다듬어진 등산로는 아마도 많은 사람들의 발자국의 징표일 것이다. 입을 앙다문 철쭉, 나무들의 연두 잎, 점점 가까워지는 하늘이 내려주는 많은 선물을 마음에 받아두면서 아주 천천히 걷는데 등산로는 한 번도 꺾이지 않는 오르막이었다.
멀리, 혹은 가까이 보이는 산색에 감탄만 나온다. 같은 나무일지라도 내 보이는 색이 각기 다름은 아마도 제 안에 품은 빛이 다름에서 빚어지는 것이리라. 우리 사람들도 각기 개성이 다르듯~~ 점점 힘이 든다. 천천히 걷기에 숨은 차지 않는데 자꾸 다리의 힘이 빠지고 있었다. 나도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이 힘들다며 투덜대는 소리를 들으니 위안이 되었다. 그래, 저들도 힘들다 하는데 나는 당연함일 것이다 라고…
현 위치 표시판에 고도 1,014m라고 표시된 곳에 아담한 공터가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늘이 없는 곳인데도 삼삼오오 앉아서 간식을 먹으며 봄을 즐기고 있었다. 나도 그냥 한 곳에 앉아 어진 바람결을 따라 풍경을 감상하고 있었는데 도저히 더 이상 오를 힘이 없음을 느끼고 있었다. 150m를 더 오르기 위해 1.1km만 걸으면 바래봉 정상이라는데 포기해야겠다. 행사장이 해발 500m 지점이기에 정상인 바래봉 1,150m 까지는 610m만 오르면 될 것을 겨우 500m 오르고 체력이 고갈 되었다. 남편에게 전화하여 이제 내려갈 갈 것이라 말하고 바래봉을 등지기 시작했다.
저 위로 보이는 바래봉이 자꾸 아쉽다한다. 산은 늘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니 다시 찾아오라며, 어여 조심해서 내려가라 한다. 쉼 없는 오르막은 다시 쉼 없는 내리막길이었다. 오를 때 마음으로 내림의 길을 걷는다면 힘들지 않을 것이다. 꽃보다는 연초록의 부드러움에 그냥 좋았던 시간이었다.
▲ 하단부의 철쭉은 피기 시작했지만 그리 예쁜 모습이 아니었다.
▲ 귀여운 구슬봉이
▲ 이곳은 가축 종자?와 관련된 곳이라는데...
하여 출입통제가 곳곳에 있었고 통제된 구역은 철쭉이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 산괴불주머니
▲ 많은 사람들이 철쭉 사잇길을 걸어가고 있다.
▲ 이곳부터 오르막이 시작되는데 누군가가 바래봉까지의 거리를 지워 놓았다.
힘들어서 그랬을까?
▲ 모두들 올라가는데 한 사람이 되돌아 내려오고 있다.
▲ 숨은듯 피어있는 조팝나무가 더 예쁘다
▲ 잘 다듬어진 등산로
▲ 병꽃나무 꽃도 연두에 물들었나 보다.
▲ 국수나무
▲ 하늘이 가깝게 보여 능선에 다 오른 줄 알고 좋아했는데...
▲ 소나무들이 철쭉 꽃이 예쁘게 필 수 있도록 촛불기도를 하고 있네 ^^
▲ 쇠물푸레나무
▲ 왕버들
꽃가루가 어찌나 많이 날리던지 결국 마스크를 할 수밖에!!!
▲ 산사태를 막기 위한 정성
▲ 지리산의 제비꽃
▲ 3.2km를 올라왔네~~ 장하다!
▲ 참 고운 빛!
▲ 이곳에서 결국 하산을 결심했다
세상에서 가장 높은 산은 에베레스트산,
세상에서 가장 비싼 산은 부동산,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산은 하산!!
하여 나는 가장 중요한 일을 선택했음에~~
▲ 철쭉 봉우리 건너 보이는 남원 운봉마을(1,014m 높이에서 바라봄) ▼
▲ 바라보기만 했던 바래봉
▲ 오르던 사람들이 잠시 숨을 고르며 쉬고 있다.
▲ 다래덩굴 새순
이 새순을 사람들이 따고 있었다. 먹으면 좋단다~~
▲ 점나도나물
▲ 뱀무
▲ 아쉬움을 봄동산에 묻어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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