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주어진 모든 것을 사랑으로!!

단상(短想)

탱자나무는.....

물소리~~^ 2016. 4. 20. 15:51

 

 

 

 

 

 

 

 

 

   산책길에 만나는 풍경 하나마다에도 마음을 쏟는 요즈음이다. 예전과 같지 않은 체력으로 오직 선택해야하는 하나의 길이나마 주어졌음이 정말 감사한 일이기에, 그렇게 내 마음의 의미를 담아가며 걷는 시간이다. 오늘도 그렇게 뽕나무와 탱자나무와 황매화가 어우러진 곳을 지나다 문득 한 두어 송이 피어난 탱자나무 꽃을 보았다. 참으로 정감어린 꽃이다.

 

중학교 시절 자취집 울타리는 온통 탱자나무였다. 한 밤중 시험공부하다 졸린 눈을 씻으러 나와서 문득 만난 탱자나무 꽃의 몽환스러움도, 달빛에 녹아내린 향기의 질척함도 절대 잊지 못한다. 가을에 노랗게 익는 열매는 그냥 취하고 싶은 그 무엇을 품고 있다.

 

새봄에 올리는 수많은 가시는 보기와 달리 여리디 여리다. 봄 날 막 새순을 피워 올릴 즈음의 가시는 야무지게 똑똑 부러지며 안겨주는 부드러움을 나는 퍽 좋아한다. 탱자 꽃은 마치 제 몸의 가시를 피하려는 듯, 헤픈 여자처럼 꽃잎을 성글게 피워낸다. 가지의 짙푸름은 한겨울에도 늘 푸른빛을 품어내며 튼튼함을 자랑하니 무엇 하나 정겹지 않은 나무와 꽃인데 쓰임은 조금 비극적이다.

 

너와 나의 경계선을 구분 짓기 위한 울타리로 사용하는 목적이 크기 때문이다. 옛날 죄지은 선비들을 귀양 보내고 귀양살이 집 주위에 탱자나무를 심어 죄인이 바깥출입을 하지 못하게 했다고 하니 탱자나무인들 마음이 편했을까. 또 다른 하나는 나라지킴이 역할을 했다는 사실이다.

 

강화도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탱자나무가 두 그루 있다고 한다. 이는 침입하는 외적에게 대항하기 위해 심은 탱자나무라 하니 정말 눈물이 나도록 서러운 이야기다. 병인양요만 해도 적들은 총과 대포를 들고 쳐들어 왔건만 순하디 순한 우리 백성들은 여리디 여린 탱자나무로 탱자성(지성, 枳城)을 쌓고 방어를 했다는 사실에 그만 마음이 싸해진다.

 

우리 지방에도 지방기념물로 지정된 탱자나무가 한 그루가 있다. 가람 이병기 선생의 생가에 있는 탱자나무다. 어느 해 겨울, 그곳에 가서 가지가 무성하고 우람한 탱자나무를 보고 나는 그 나무가 선생의 가르침을 받아 한글공부를 하고 있었다고 느꼈다. 수많은 가시들의 어우러짐이 마치 한글 자음과 모음을 조합해 놓은 듯 보였기 때문이다.

 

탱자나무는 본래 그대로일 뿐인데 쓰임을 달리하면서 울타리라는 멍에의 짐을 지기도 하지만 나라 지킴이라는 보루의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또한 국문학의 대가이신 선생의 말년에 동무가 되어주기도 하였던 탱자나무, 어쩌면 개개인의 자산도 보호하고 나라도 지키면서 우리말도 지켜주었다. 오늘처럼 아련한 추억을 보듬고 나의 길동무가 되어주기도 한 탱자나무는 그래서 참 좋은 나무다.

 

우리가 살아가며 만나는 많은 가시들이 아플 것이라는 고정된 관념을 넘어서면 그 가시는 오히려 우리를 지켜주고 위로해주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이라는 것을 탱자나무는 은근히 알려주고 있다.

 

 

▼ 지난 블로그에 올렸던 사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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