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저녁? 아니 토요일 새벽이다. 어렴풋이 현관문 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잠금장치는 스르르 제 몸을 풀어준다. 디지털시계를 바라보니 새벽 2시다. 작은 아들이 온 것이다. 주말마다 오는 발걸음 이제 가볍게 해주고 싶은데 아이는 근무를 마치고, 또 제 할 일 하고 늦게 출발했을 것이다. 살금살금 들어오는 아이가 미안해 할까봐 그냥 잠을 자는 척했다. 방문을 열고 기웃거리더니 그냥 제 방으로 간다.
지난 29일은 이식 후, 첫 정기검진일 이었다. ct사진 결과 깨끗하다는 결과를 듣고 한 짐 덜은 기분이었는데 아이들은 마치 내가 다 낫기라도 한 냥 좋아하였다. 그러더니 이제 엄마 피부 관리도 하고 여행도 다니면서 활기차게 생활하기를 권한다. 하지만 아직은 모든 것이 이르다. 더욱 조심하고 관리하면서 1년 후나 되어야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거란 의사의 말씀을 들려주며 아들의 들뜸을 가라앉혀 주었는데… 아들은 무엇을 보고 알았는지 주말에 득량만 추억의 거리를 가보자고 제안하였던 터다.
아마도 7080의 거리라는 이름에 우리 부부의 공통점을 찾아보고 추억에 젖어보라는 배려였을 것이다. 많은 비가 내릴 거라는 예보가 있었기에 어쩌면 출발하지 못할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을 하며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비는 오지 않고 잔뜩 흐려 있었다. 이곳 아닌 다른 지방은 비가 내렸지만 훈훈한 날씨가 마음을 가볍게 해주었다.
아이의 배려가 고마워 일단 출발했다. 이곳에서 3시간이 소요되는 곳이지만 내 마음은 그곳 근방까지 두루 돌아보고 싶다는 잔잔한 설렘이 고여 온다. 흐린 날씨가 차분함을 안겨주니 나로서는 나들이하기에 더욱 안성맞춤인 듯, 참 좋다. 어디쯤 가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는데 그리 많지 않은 비다.
내비의 도움으로 어렵지 않게 득량역에 도착했다. 득량만은 고흥반도 북서쪽에 위치한 灣으로 보성과 인접한 곳이다. 가는 길에 농로사이에 오롯하게 뻗은 경전선철도도 보았다. 경상도와 전라도를 잇는 철길이며 이곳 득량역을 통과하는 철길이다. 왠지 정겨움이 물씬 묻어난다. 보리 싹이 이제 막 파릇파릇해지는 논밭 사이로 뻗은 철길은 그렇게 우리 서민들과 밀접한 교통수단임에 더욱 정겨운 것이리라.
뭐 그리 특별함이 있는 것이 아닌, 그저 한 마을 주민들이 그렇게 마음을 모아 추억의 거리를 조성해 놓은 듯싶은 소박함이었다. 득량역을 중심으로 거리 양편으로 그 시대의 가게모습으로 상호도 예전처럼 해 놓고 추억을 조성해 놓았던 곳이다. 이런 마음들 때문에 간이역이었던 득량역은 절로 높아진 몸값으로 관광열차들을 끌어들이기도 하고 있으니.. 그 시대 그 마음들이 새삼 그립다. 처음 만난 순간 약간의 어색함이 있었지만 작은 가게들과 이름을 바라보면서 절로 웃음이 나오니 익숙함을 만난 듯 즐거웠다. 어쩌면 이런 시절이 있어 오늘의 내가 있는 듯싶다.
이발소는 그 시절 그대로의 모습으로 영업을 하고 있었지만 잠깐 문이 잠겨 있어 들어가 보지 못했다. 어쩌면 소설 속에서나 설명되어질 그런 모습~ 저 의자에 나무 판자 하나 걸쳐놓고 앉힌 아이들의 머리를 깎아주던 그 이발사는 지금 어디쯤에 계실까? 비가 잔잔히 내리고 있어서인지 거리의 사람들은 별로 없었고 열려진 가게 문들도 없었다.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다니기만 했어도 마치 내가 그 시대 속에 살고 있는 듯싶다.
득량이란 지명의 유래도 처음 알았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이곳에서 아군의 식량을 조달할 수 있어 왜군을 물리쳤다는 이야기에서 얻을 得, 곡식 糧, 에서 유래된 이름이란다.
비 오는 날의 간이역! 득량역을 만난
이 하나만으로도 난 오랜 추억 속에 현재의 시간을 묻어두고 왔다. 그냥 아련함이었다.
'마음따라 발길따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순천만 (0) | 2016.03.08 |
---|---|
비 오는날의 녹차밭 (0) | 2016.03.07 |
蘭 전시회를 다녀와서 (0) | 2016.02.25 |
뒤틀려 곧게 오른 기둥의 용오정사 (0) | 2015.11.02 |
숨겨진 비경 두암초당을 찾아서... (0) | 2015.11.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