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운문사 대웅보전
5개월에 걸친 표준 치료가 끝나고 다음 일정을 조율하고 있는 요즈음, 주기적으로 맞아야했던 주사를 건너뛰고 있으니 내 몸의 컨디션은 정상인 못지않게 좋다. 부작용의 후유증으로 남은 흔적들이야 시간 따라 농도가 옅어지리라는 믿음이기에 컨디션을 좌우하지는 않는다.
남편은 다음 일정이 더 힘들게 진행될지도 모르니 지금 기분 좋을 때 맑은 공기도 맡으면서 몸뿐만 아니라 마음도 쾌적하게 해 주자며 당일치기 나들이를 권한다. 어디를 갈까 하며 의견을 주고받다 아직 미답지인 경북 청도 운문사에 다녀오기로 했다. 여느 때 같으면 영남 알프스라 불리는 산에 속하는 운문산에 올랐다 내려오면서 운문사를 둘러보곤 했겠지만 내 체력이 미치지 못하니 그냥 운문사에만 다녀오기로 했다.
이른 아침 6시에 출발했다. 4시간이 소요되는 거리다. 비가 내릴 거라는 예보에 맞추기라도 하듯 알맞게 흐린 날씨의 고속도로는 차분함을 안겨주었다. 구름 안개도 토요일의 휴식을 즐기느라 늦잠을 잤는지 산 중턱에서 아직 뭉그적거리고 있다. 묘한 분위기를 그려내며 골마다, 산등성, 혹은 산꼭대기에 걸쳐있는 구름들이 참 정겹다. 정말 집에만 있었다면 만날 수 없는 풍경들이지 않는가. 구름들은 오늘 내가 운문사(雲門寺) 가는 걸 알고 있을까. 구름들은 갖가지 환영의 몸짓으로 나를 맞이하고 있으니 내가 으쓱해진다.
3시간여를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청도 IC를 빠져나오니 이제는 산골로, 산골로 접어드는 길이다. 길가의 감나무들은 감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으며 간혹 대추나무들은 가지가 휘어질 정도의 튼실한 대추들을 달고 있으니 정말 마음이 풍요로워진다. 더구나 비에 약간 젖은 듯싶은 싱싱함으로 더 없는 깨끗함을 빚어내고 있으니 나는 절로 심호흡을 하며 저들의 기운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산이나 어느 곳을 직접 찾아가 만나는 경치도 좋지만, 아무 꾸밈없는 모습으로 내 눈길을 빼앗는 스치는 풍경이 더 없이 좋기만 하니 아마도 내 안에 역마살이 자리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드디어 운문사 초입에 들어섰다. 일단 입장료와 주차비를 내어야했다. 차를 가지고 쓰윽 들어섰지만 아니!! 차로 들어갈 일이 아니었다. 솔바람길이라는 안내 표지판이 보인다.
얼른 길 한쪽 주차공간에 차를 세우고 걷기로 했다. 괜히 주차비까지 냈나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이렇게라도 이곳 유지비에 동참했구나 싶은 마음이 드니 너그러워진다. 우리는 울창한 소나무 사잇길을 걸었다. 한 두 방울씩 떨어지는 빗방울이 있었지만 우산을 펼치지는 않았다. 길가의 잔잔한 꽃들에 마음이 쏠리니 카메라부터 챙기느라 우산을 푸대접 했다. 짚신나물, 도둑놈의갈고리, 고마리, 등 야생화들이 눈에 띈다.
풀무더기 속 야생화들은 잘 닦인 고운 길과 잘 자란 소나무들에 치여 눈길을 받지 못하지만, 간혹 빈 병이나 쓰레기들이 제 몸을 덮치기도 하지만, 잔잔한 꽃들은 그래도 제 향기를 잃지 않고 피어나고 있는 것이다. 내 눈에는 우람한 소나무가 있어 더 돋보이는 자디잔 꽃들이었다.
붉은 소나무가 가득한 솔바람길, 오랜 세월을 껴안고 자유자재로 제 몸을 만들며 살아온 이력 앞에 과연 아름답다 라는 내 한마디가 가당키나 할까? 소나무는 그저 구름을 부르며 더욱 제 멋을 보여주며 서 있을 뿐이었다. 멋진 자태의 소나무들 몸통 곳곳에는 깊게 파인 상처들이 있었다. 나는 곧바로 그 자리가 송진 채취를 하기 위해 깎아 내린 흔적이란 것을 알았다. 예전 주왕산에 올랐을 때 자세한 사연을 읽고 알았던 것이다. 소나무들은 그렇게 아픈 시간들을 견뎌내고 오늘을 맞이하고 있었으니.. 나를 바라보고 더욱 의젓함으로 서 있는 것 같아 마음이 뭉클하다. 우리 민족의 은근과 끈기를 대변해주는 소나무들처럼 보였다.
길 한 편 깊은 계곡에는 맑은 물이 흐르고 있었지만 수량은 많지 않았다. 간혹 씽씽 스치는 차 안의 사람들도 아마도 이 길을 걷고 싶어서일까. 차창을 내리고 두리번거리는 모습이 영낙 없이 내게는 그렇게 비쳐진다. 이 좋은 길 내려서 걸으세요!! 외치고 싶었다.
운문사(雲門寺)를 풀이하면 구름문을 달고 있는 절이라고 할까? 마치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해주듯 오늘의 운문사는 배경의 산마다 구름을 걸치고 운문사를 호위하듯 하고 있으니 경탄이 절로 나온다. 처음 만난 건물이 범종루였다. 이상하다 다른 절들은 사천왕문을 먼저 거쳐야 하는데… 범종루 아래를 지나 조심스런 걸음으로 경내에 들어서니 정갈함에 나도 모르게 경건해진다.
불경을 읽는, 아니 합창하는 낭랑한 목소리들이 들려온다. 아! 이절은 비구니 절이라 했다. 지금시간이 10시 20분 경, 아마도 아침 예불시간일까? 대웅보전에서 들려오는 스님들의 목소리가 참으로 청아하다. 저 목소리 예불만 듣고 있어도 절로 마음이 고요해 질 것이니 금세 마음이 아려온다.
여 스님들이 가꾸어서일까. 참으로 아기자기하다. 예쁨에 끌려 이리저리 누비고 다녔다. 절 곳곳을 둘러보며 세월의 흔적을 만나고 품은 역사의 자취를 찾아보기도 했다. 어느 곳이든 역사를 만나는 일이 나에게는 퍽이나 재밌는 일이다. 이 절에는 보물이 8점이 있으며 일연스님이 주지스님으로 계실 때 이곳에서 삼국유사를 집필 하였다고 한다. 대웅전이 하나가 아닌 두 개의 건물이 있는 사연도 있다. 사천왕 석주도 찾아 볼 일이며, 수령이 500년이나 된 처진 소나무도 있다.
▲ 운문사 들어가는 길
▲ 처진소나무 (천연기념물 180호)
▲ 또 하나의 대웅보전
정식 이름은 '비로전' 이라고 한다.
▲ 꽝꽝나무와 삼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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