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2010년 3월에 최명희 작 ‘혼불’의 필사에 참여한 적이 있다. 문학관에서 주최한 행사에 참가 신청을 하여 하게 된 경우였다. 한 자 한 자 써 내려가는 정갈함에 흠뻑 빠져 정성스레 필사를 했고, 나의 몫으로 내려온 혼불 한 부분을 필사하는 일은 거부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라는 내용의 글도 썼었다.
필사(筆寫)의 사전적 의미는 ‘책이나 문서 따위를 베끼어 씀’ 이다. 베끼어 쓰는 것, 즉 책 그대로의 글을 옮겨 쓰는 일은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다. 정신력과 집중력을 요하는 일이기에 공부 방법 중 한 방법이기도 하다. 내 경우 책 읽을 때 집중이 안 되거나 설렁설렁 읽어질 때 책장을 앞으로 넘겨 단 몇 줄이라도 베껴 쓰다보면 내용이 익숙해지면서 책 읽기가 수월해 지는 경우가 많다. 또 좋은 글귀를 만나면 옮겨 적기도 한다. 그렇게 사용되는 대학노트 대여섯 권을 지금도 보관하고 있다.
학교 다닐 때나 직장생활 때 글씨 잘 쓴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는데 컴퓨터 활용이 일상화 된 요즈음 글씨 쓰는 일을 잊어버리고 산다. 나의 글씨체는 자연히 퇴화되어 옛 글씨체가 나오지 않는다. 그나마 책 읽을 때 필사의 기분으로 가끔 옮겨 적는 경우에 정성을 다하는 것으로 옛 명성을 찾아보고자 하지만 글씨가 먼저 줄행랑치면서 숨어버린다. 글씨체를 다듬을 수 있고 집중력과 정신력의 힘을 길러주는 필사는 아무리 예찬해도 지나침은 없을 것이다.
요즈음 한 작가의 표절문제로 문학계가 시끄럽다. 문학계를 넘어서 사법의 잣대까지 요구하는 사태를 대하노라니 못내 씁쓰름하다. 어느 누구 책읽기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마는 나 역시도 문학이란 순수함에 이끌려 책읽기를 좋아하는 한 사람이다. 또한 거론되는 작가의 책을 다수 읽었기에 관심은 더욱 지대하다. 작가 당사자는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의 글을 필사해 오면서 작가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는 고백을 책을 통해 여러 번 하기도 했다.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참으로 대단하신 분이라는 생각을 지니게 되었고 그 순수함에 이끌려 왔던 것도 사실이다.
나만의 이런 작은 관심을 가지고 회자되는 갑론을박에 끼어들 자격은 전혀 없다. 그런데 침묵하던 작가가 한 언론매체와의 인터뷰 내용 중 화들짝 필이 콕 박히는 말이 있었다. 절필을 요구하는 질문에 “원고를 써서 항아리에 묻더라도, 문학이란 땅에서 넘어졌으니까 그 땅을 짚고 일어나겠다.”고 밝힌 내용에서다.
항아리란 말에 무언가 번개처럼 스치는 생각으로 작가에 대한 표절 어쩌고 하는 말들은 멀리 달아나 버렸다. 앙엽(盎葉 : 항아리속의 감나뭇잎)이 퍼뜩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는 중국에 전해오는 이야기로 한 선비가 문득문득 떠오르는 생각들을 감잎에 적어 항아리에 넣어두곤 했다는 이야기다. 그렇게 모아 둔 메모를 모아 책으로 엮었다는 이야기가 역사적으로 전해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필사와 메모는 내용에서는 다르겠지만 스쳐 지나는 심금을 울리는 그 무언가를 잡아두고 싶은 정서는 같을 것이다. 자신의 일이 세간의 관심으로, 것도 좋지 않은 일로 도마 위에 오른 작가의 심정은 오죽할까. 그에 절필이라도 선언하면서 자숙하기를 원하는 독자들에게 글을 써서 항아리에 넣어둘지언정 펜을 놓지 않겠다는 심정 표현은 아마도 이런 앙엽 이야기를 알고 표현했던 것 아닐까 싶었던 것이다. 필사의 힘으로 작가의 길에 들어선 작가는 이제 메모로라도 남긴 글들을 항아리에 넣어 보관하고 싶다고 한다.
부디 초심을 잃지 않는 마음으로 임하여 독자들에게 실망을 안겨주지 않았으면 싶다. 항아리에 남겨둔 아픈 이야기들이 훗날 더 좋은 명성을 지녀 나로 하여금 필사를 하고픈 마음이 일도록 좋은 내용이기를 바라는 마음 크다.
#. 이 글은 단순한 제 생각입니다.
요즈음 거론되는 갑론을박에 대한 내용들에
그 어떠한 의견도 표하고 싶지 않은 내용으로 읽어주시고 표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앙엽이야기 http://blog.daum.net/panflut0312/34805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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