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억은 늘 단순하다. 머언 시간 속에서 나의 추억을 꺼내는 일은 풍경을 먼저 찾아 기억의 그림을 그려 보는 일이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사물의 배경이 되는 풍경 속에 기억과 추억을 저장하는 습성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런 나의 습성은 아마도 아버지의 근무지를 따라 자주 전학을 다녔던 까닭이리라. 정이 들 만하면 헤어져야 했던 친구들 보다는 늘 묵묵히 그 자리를 지켜주는 풍경들에 마음 쏟는 일이 더 좋았던 것이다.
그렇게 요즈음 나의 한 단편적인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것도 풍경이 앞섰다. 풍경을 그려보고서야 아, 그 때 내가 초등 5,6학년 시절이었지… 하며 풍경과 시간을 꿰맞추었던 것이다. 글로 설명할 수 없고 그림으로도 그릴 수 없는 아련한 추억이다.
그 시절 우리는 아버지의 직업상 당연히 농사를 짓지 않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다만 집에 딸린 작은 텃밭에 채소를 심거나 공터에 닭장을 만들어 놓고 닭을 키우는 정도였다. 모든 것이 부족했던 시절, 굵직한 마름모 철망으로 둘러싸인 닭장은 왠지 모를 든든함이었다. 제법 많은 닭들이 있었던 것 같다. 여름 철 학교에서 돌아오면 나와 남동생은 들로 나갔다. 그 시절 동네 모든 어린이들은 들로 산으로 놀이를 다녔기에 하등 이상할 것이 없었다. 나는 메뚜기를 잡고 남동생은 개구리도 잡았다.
그렇게 포획한 것들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손으로 다듬어져 닭 모이로 되곤 했었다. 그렇게 튼실하게 키운 닭이지만 내겐 특별한 기억은 남아 있지 않다. 가령 달걀을 어떻게 했다든지, 그 달걀로 맛있게 반찬을 해 먹었다든지 라는 그런 기억은 없는 것이다. 다만 한 가지 한 여름 더운 날 저녁 무렵 평상위의 풍경은 또렷하게 기억된다.
아마도 복날쯤 되지 않았을까. 학교에서 돌아오는 나의 코에 구수한 냄새가 젖어들었고 어머니는 분주하게 부엌을 드나드셨다. 아, 오늘 닭고기 먹는 날이구나! 혼자 좋아라하며 어머니 주변을 맴돌았다. 저녁식사시간이 가까워지면 어머니는 커다란 양푼에 푹 삶은 닭을 담아서 마당의 평상으로 가신다. 나는 쪼르르 달려가 그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 어머니는 닭의 뼈를 발라내고 살들을 잘게 찢으셨다. 그 중 유난히 결에 맞게 잘 찢어지는 부위가 있었으니 그쯤에서 어머니는 살 한 점을 집어 소금에 찍어 내 입에 넣어주시곤 했던 것이다.
입에서 살살 녹는 그 맛이라니… 지금 생각하면 아마도 닭가슴살 부위였던 것 같았다. 그렇게 닭고기는 맛있는 것이라는 깊은 의식을 가지고 살아왔다. 결혼 후 아이들 간식거리로 닭튀김을 많이 해 주면서 또 다시 닭을 자주 만나는 시기가 되었다. 하지만 어느 날 닭도리탕을 하라며 남편이 사온 생닭을 토막 내다 얼마나 몸부림을 쳤는지 아예 몸살을 앓아버리고서는 닭을 멀리하게 되었다. 그 후 아이들이 먹고 싶어 할 때는 그저 주문해서 먹도록 했고 그렇게 닭고기를 잊어버린 생활이 지금까지 계속 되어온 터였다.
닭고기 요리조차 잊어버리고 살아온 날들 속에 갑자기 닭고기가 나를 흔들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닭가슴살이다. 고단백의 식사를 하라는 담당의사의 말에 충실하려다 보니 닭가슴살이 주요 식품의 메뉴로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입맛을 잃기도 했지만, 팍팍하니 맛도 하나 없는 가슴살을 지금의 내 몸에 좋다고 먹으라고 한다. 인터넷의 도움을 받아 여러 방법으로 요리하여 먹긴 하지만 옛날 그 좋은 맛은 어디로 갔는지 찾을 길이 없다. 다만 변하지 않은 한 가지는 가슴살은 여전히 결 따라 잘 찢어진다는 사실이다. 결을 따라 찢어 샐러드를 만들어 놓고서는 그 옛날 어머니가 소금을 찍어 입에 넣어주던 맛을 생각하며 억지로 입에 넣곤 하는 요즈음이다.
그 옛날 평상위에서 찢기던 닭가슴살도 세월을 타고 어느새 몸짱 만들기의 일등공신이 되었다. 맛은 없지만 그래도 먹고서 만들어지는 몸의 균형을 더 선호하는 요즈음의 젊은 세대들이다. 하지만 몸짱이 되는 눈으로 보이는 변화보다는 내면에 존재하는 한 의식을 변화시키는 것이 더 어려운 법이다. 나의 내면에 존재하는 그리운 맛있음의 의식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미래는 과거로부터 형성된다는 말이 있다. 내 어렸을 적 맛있게 먹었던 닭가슴살이었으니 그 맛있음이 오늘을 지나 내 훗날로 이어질 것이다. 냉동실에 자꾸만 쌓여가는 닭가슴살을 맛있는 생각으로 먹고 내 훗날을 기약해야겠다. 아픔 따라 맛있는 추억을 먹는 나의 행위가 풍경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 풍경 속에 나의 어설픈 추억이 창호지에 달빛 스미듯 저장되어 훗날 웃음으로 기억 되었으면 좋겠다.
'내맘의 글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금쪽같은 시간 속에서 (0) | 2015.07.09 |
---|---|
항아리 속 감잎 (0) | 2015.06.27 |
봄이 전해주는 기운을… (0) | 2015.03.27 |
바다의 보물 전복 (0) | 2015.03.09 |
히야신스에게서 받은 행복한 사랑 (0) | 2015.03.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