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아려보니 올 3월에는 새벽산행을 8일밖에 하지 못했다. 아픈 핑계도 있었고, 또 다른 일들로 바쁜 일정을 보내기도 한 까닭이지만 무엇보다도 자꾸만 추위를 타는 것이었다. 추위쯤은 아랑곳 하지 않던 나였는데… 참 여러 가지를 잃은 올 해의 시작이다. 오늘 아침 작정을 하고 나섰다. 오랜 결석을 한 나를 산은 그저 포근히 안아주며 반긴다. 몸이 가볍다. 어느새 바람결이 달라졌다. 기분이 좋아진다.
익숙한 길이지만 조심조심 걸음을 옮기는데 아주 작은 소리가 들린다. “휘이익” ~~ 아, 호랑지빠귀소리다. 해마다 봄이 오는 초입에 울어주던 새, 호랑지빠귀였다. 와락 반가움이 일었다. 한데 내 가까이 가 아닌 먼 곳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아마도 내가 잦은 결석을 하니 혼자 토라졌나 보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나오지 못했던 나를 멀리서 알아보고 토라진 마음일지라도 반겨주고 있으니 알 수 없는 편안함이 나를 감싼다.
별이 잘 보이는 봉우리에 올라서니 별들이 총총한 하늘이 펼쳐진다. 어쩜 북두칠성도 자리를 조금 옮겨 앉아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거의 가로로 누운 상태였는데 지금 하늘에서는 세로로 서있는 모습으로 바꾸어 있다. 아, 정말 우주의 자리가 변하고 있으니 봄이 자동 오고 있음이었다. 그 봄 찾아 새들이 울고 나무들도 움을 틔울 준비를 하고 양지쪽에서는 들꽃들이 꽃을 피우고 있는 것이다. 땅속의 새싹들도 마음이 부풀어 있을까. 그 힘에 흙들도 한껏 제 몸을 부풀리며 욱신거리니 내 발바닥이 푹신하다.
하늘에서도 지상에서도 계절 따라, 아니 계절의 변화를 이끌어가는 힘들에 서로들 자신을 내 보이려 옥신각신 하겠지만 어차피 그들도 한 세월을 지나고 있을 뿐이다. 나 역시도 지나는 세월 속에서 내가 서 있어야할 자리도 어느 정도 바뀌어 있을 것이다. 그 자리 바뀜을 확실히 알게 해 준 요즈음의 변화가 하늘의 별도 지상의 생물들도 겪고 있는 것이라 여겨지니 한결 마음이 부드러워진다. 느닷없이 들려온 조카의 아픔도 어쩌면 우주 변화의 한 순간에 서 있음일 것이니 이제 거뜬히 이겨낼 것이다.
퇴근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 노상에서 봄을 한 움큼씩 팔고계시는 할머니에게서 봄을 샀다. 쑥 한 움큼이었다. 이 쑥을 뜯을 때 할머니의 등 뒤로 쏟아지던 햇살은 얼마나 따사로웠을까. 쑥국을 끓이고 쑥 튀김을 했다. 상큼한 향이 입 안을 헹궈 내는 것 같다. 그저 잡히지 않는 향 일 뿐인데도, 쑥 향은 봄을 일러준다. 봄이 되어 내 보내는 쑥 향은 얼마만큼의 세월을 지녔을까. 짧은 순간들의 시간을 쌓고 쌓아 확고함으로 자리 잡고 있음이 아닌가.
해마다 봄이 되면 만나는 쑥인데도 늘 새롭고 가슴 울렁이게 하는 그 기운을 우리 조카에게 전하고 싶다. 여명 속에서 파르르 떨고 있으면서도 제 빛을, 제 자리를 잃지 않고 있는 진달래, 생강나무들이 지닌, 불끈 일어나는 힘을 모두 모아 우리 멋진 조카의 병실에 가득 채워주고 싶다. 화사한 이봄이, 따사로움이 느껴지는 이 봄이 문득 슬퍼진다.
▲ 뒷산의 진달래
▲ 뒷산의 생강나무
▲ 수선화
▲ 봄까치꽃
'내맘의 글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항아리 속 감잎 (0) | 2015.06.27 |
---|---|
맛있는 추억을 먹다. (0) | 2015.06.19 |
바다의 보물 전복 (0) | 2015.03.09 |
히야신스에게서 받은 행복한 사랑 (0) | 2015.03.08 |
땅을 하늘로 바꾸는 별꽃 (0) | 2015.02.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