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양목에 걸린 물방울그물
가뭄 끝의 태풍은 반갑기조차 하다. 강풍과 폭우로 인한 피해를 피 할 수 없음에도 우선은 단비를 내려준다는 그 하나에 온 마음이 기울어지니 참으로 대책없는 마음이다. 태풍은 지독한 기다림의 인간의 기대치에 역부족임을 알았을까. 다행히 큰 피해 없이 부족하다싶은 양만큼만 비를 내려주고 물러갔다. 이마저도 참으로 고맙기만 하다.
점심시간을 틈타 비 개인 하늘 밑을 따라 길을 걸었다. 햇살 없는 날인데도 모든 것이 싱그러워 보이니 마음이 참 개운하다. 어느 교회의 아담한 담장에는 갖가지 식물들이 제 키를 자랑하며 담장을 훌쩍 넘어서며 자라고 있다. 얼마만큼의 높이일까 가늠하려 땅을 바라보니 키 작은 회양목들이 담장에 바짝 붙어 옹기종기 귀엽게 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와락 솟구치는 정겨움에 그들을 한참을 바라보았다. 주변의 식물들이 아무리 제 높이를 키워낸다 해도 회양목은 오직 자기가 자랄 수 있는 만큼만 키우면서 조금치의 욕심도 없이 싱싱하게 자라고 있었다.
갑자기 내 눈이 확 밝아온다. 회양목 한 그루에 맺혀있는 물방울그물을 보았던 것이다. 어쩜 ! 이리도 예쁠까. 작은 물방울들이 서로 연결되어 마치 그네를 만들어 걸어 놓은 듯싶었다. 누구를, 무엇을 태우고 싶었었을까. 지나는 바람도 슬쩍 앉았다 갔을 것이다. 아마도 비 개인 화창한 날, 벌 나비들을 태워주고 싶었을까. 아기자기한 물방울그물을 바라보며 나 혼자만의 상상에 빠져 보았다. 문득 인드라망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인드라는 인도의 힌두교에서 숭배하는 수많은 신들 중 ‘천둥의 신’ 의 이름이다. 인드라 신은 추후 불교에서 불법을 수호하는 ‘제석천’이 되는데 제석천의 궁전에는 무수한 구슬로 만든 한 없이 넓은 그물이 걸려 있는데 그 그물을 인드라망이라고 하였다. 그물에 걸린 수많은 구슬들은 서로를 비추고 비추어주는 관계라고 한다. 서로를 비추어주며 끝없이 연결된 구슬들은 결국은 하나에서 시작되고 있음을 나타낸다고 하니 그것이 바로 인간세상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국민은, 아니 전 세계인은 스스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있는 밀접한 관계임을 암시해 주고 있다. 우주의 모든 만물과 우리 인간과의 관계일 수도 있다. 지난 6월 우리는 메르스라는 혹독한 전염병을 경험했다. 전염병은 사람들의 관계 사이를 용케도 알고 자리를 잡아갔고 그에 대한 대비책은 철저한 격리와 치료였다. 환자들을 인간의 관계망에서 떼어 놓는 방법밖에는 없었던 것이다. 자꾸만 이어나가는 관계의 선에서 격리 시키는 일이 어디 그리 쉬운 일이던가.
사람들이 격리되니 세상과의 연결이 끊어지면서 경제적인 면은 물론 사회 전반적인 것에까지 큰 타격을 입히는 결과를 초래했던 것이다. 보이지 않게 연결 지어진 인드라망의 선이 끊어졌던 것이다. 우리는 결국 그 그물망 안으로 다시 들어가고자 노력을 했다. 과학의 기술을 빌려오고 의술의 힘을 빌려와 그물망에서 떨어져 나온 공포를 이겨내고자 노력했다. 이처럼 서로를 비추어 주는 생활 속으로 들어가고자 노력함은 우리는 결코 혼자 살아갈 수 없는 하나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요즈음 나도 모르게 나를 침범한 아픔으로 내 몸에 독한 약을 쏟아 붓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독한 약으로 인한 여러 후유증을 겪을 때 마다 차라리 약을 쓰지 않고 자연 그대로 살아가다 생명이 다하면 모든 것을 놓아버리면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여러 번 했었다. 하지만 그 생각들은 나 혼자만을 생각할 때였다. 나를 둘러 싼 여러 관계들을 생각할 때면 결코 그마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사랑하는 우리 아이들이 눈에 밟히고 오직 나에게만 의지하는 남편이 가엾어 보이고, 우리 형제들과 나를 바라보는 안타까운 마음들이 나를 붙잡고 있었다. 아니 연결되어 있음에 이르면 화들짝 깨어나는 마음으로 나를 부여잡곤 했다. 심지어 내가 처리해야하는 일들마저 나를 세워주는 인드라망그물의 한 코였다. 나만으로 끝나지 않는 공동체적 삶인 것이다.
회양목에 걸린 물방울그물처럼 내가 속한 인드라망그물도 아름다운 것이라면 내 몫의 구슬을 아직은 포기하지 않아야겠다. 나와 연결된 그물들이 더욱 튼튼해져, 설령 내 것이 끊어져도 흩어짐이 없을 때에 내 몫을 포기해도 괜찮을 것이라고 다짐해 본다. 서로를 비추고 비추어주는 관계에서 발생하는 알 수 없는 힘의 위력은 독한 약에 대항하는 나의 미약함을 세워주는 원천이 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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