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이맘때쯤이면 행여 꽃이 피었을까? 하는 마음으로 오가는 길목을 세심히 살펴보곤 한다. 어디 어디서 봄의 전령사라는 책무를 짊어지고 예쁘게 피어난 꽃의 소식이라도 들려오면 까닭 없이 조바심이 나기도 한다. 하지만 그 꽃들은 보기 어려운 만큼 찾아가기도 힘들고 찾아가서도 쉽게 만나지 못하는 꽃들이다. 요 며칠 사이 여기저기서 톡톡 튀어나오는 꽃소식들이 있으니 변산바람꽃과 복수초의 모습이다.
설날을 낀 긴 연휴를 알리는 달력의 빨간 글씨는 편히 쉴 수 있다는 기대감을 안겨주었다. 시간이 여유롭다면 귀한 꽃이라도 찾아 나서자 작정하였다. 한데 느닷없이 연이어 들려오는 친정 친척들의 부고에 저 빨간 글씨들이 마치 불길함을 예견한 것처럼 보이니 심란하다. 시댁의 대사를 그르칠 수 없기에 그저 묵묵히 일을 하고, 차례를 지내고, 인사를 다녀오고 집으로 돌아왔다. 내일은 발인식에 다녀와야 한다. 내 집안은 그림처럼 고요하였다. 남은 시간을 어찌할까 서성이다 차림을 바꾸어 뒷산에 올랐다.
설날을 맞이한 뒷산도 고요하다. 푸석한 흙 위에 널린 바스러진 낙엽들이 마치 힘을 모두 쇠진한 모습이다. 그래 이제는 스스로 물러나며 봄을 기다린 생물들에 자리를 내 줄 때가 됨을 알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 사람들도 이처럼 살아가는 것이 아닌지. 하지만 갑작스런 죽음 앞에서 저항 한 번 못하고 맞이하는 죽음에는 어떤 마음자세로 임하여야 할까? 바람 끝이 아직은 날카로움으로 나를 스친다. 시선을 내려 군데군데 무리지어 있는 자잘한 녹색식물들에 눈 맞춤을 해 본다.
별꽃 무리들이다. 2월은 일부러 찾아보지 않으면 봄꽃을 찾을 수 없는 시기다. 어쩌면 꽃을 피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쪼그리고 앉아보니 아! 꽃이 피었다! 솜털이 보송보송한 모습이 마치 이제 갓 태어난 아이처럼 사랑스럽다. 어찌 귀한 꽃만 봄을 알리는 전령사라고 할까. 우리 뒷산 봄의 전령사는 별꽃이었다.
봄꽃이 더욱 예쁜 까닭은 추운 겨울을 이겨냈기 때문이다. 그 고통을 이겨내고 이처럼 새 생명으로 태어난 모습은 우리의 느슨한 마음을 꽉 조이며 당겨주는 것이다. 별처럼 생겼다고 해서 별꽃이란 이름이니 마치 땅이 하늘이고, 그 하늘에서 피어난 별 같았다. 땅과 하늘을 바꾸어 놓을 수 있는 이 작은 꽃은 참으로 영리하기도 하다.
무심코 바라보는 꽃잎은 10장처럼 보이지만 5장이다. 다만 꽃이 깊게 파이면서 한 장의 꽃잎이 두 장으로 보이는 까닭이다. 이는 제 꽃이 풍성하게 보이도록 하기 위함이란다. 그래야 벌 나비들이 많이 찾아올 것이라는 구애방법이란다. 정말 저렇게 깊게 파이면 살짝 스치는 바람에도 상처가 날 것만 같은데 이들은 작은 몸집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진즉 체득한 것이다. 줄기에 잔털이 가지런히 나 있음도 가뭄으로 수분이 부족할 때 털에 묻은 물 한 방울 까지도 뿌리로 내려 보내기 위함이란다.
이처럼 아주 작은 별꽃들도 살아가기 위해 온 몸으로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추운 겨울의 고통도 스스로 이겨내며 누구보다도 일찍 봄을 알려주고 있다. 저들은 봄이면 다시 태어나곤 하는데 우리 사람은 왜 한 번 끝나면 다시는 일어설 수 없는 것일까. 무겁게 가라앉은 마음을 별꽃은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며 나를 세워준다. 화려하지 않은 모습으로 당당하게 살아가는 작은 꽃에 ‘봄의 전령사’ 라는 멋진 이름의 임명장을 수여하고 싶다. 우리 뒷산 봄학년 봄반의 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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