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덕스런 봄 날씨다. 봄이 오고 있음을 시샘이라도 하듯 하늘은 가랑비 한 움큼 훔쳐다가 뿌려대더니 오늘(토요일)은 모두 물러섰다. 오히려 청량하고 푸근한 햇살 선물을 한 아름 안겨준다. 산악회에서 강화도 마니산을 간다는 공지를 받았다. 최고봉이 500m가 채 안 되는 산이며, 최근 아픔으로 부실한 내 몸을 챙겨보라며 남편이 다녀오라고 권한다.
조금 늦은 오전 11시 쯤, 강화도 마니산 들머리 함허동천에 도착했다. 날씨가 참으로 좋다. 회원 분들은 벌써부터 가벼운 옷차림으로 바꿔 나섰다. 조금 늦었다 생각이 들었지만 오히려 나무들이 피톤치드을 가장 많이 발생하는 시간이어서 더 할 나위 없이 상쾌하다.
강화도는 생명과 역사의 땅이다. 살아있는 교과서로 많은 유적지와 설움을 품고 있는 땅이다. 또한 썰물 때가 되어 나타나는 섬을 두르고 있는 갯벌은 많은 생물들이 살아가고 있을 뿐 아니라, 우리의 서울을 가로 지르는 한강의 들머리를 막는 역할을 하기에 외세의 침략에 맞서 나라를 지킨 보루, 강화도이다.
이런 강화도를 찾고 마니산을 오르는 일정은 누구나가 꼭 동참하고픈 일정이었을 것이다. 나 역시 젊은 시절 강화도에 입섬만 해 보았을 뿐, 지금까지 마니산을 오르지 못한 세월을 살아왔다. 전국체전이나 나라의 주요 경기가 열릴 때마다 마니산 참성단에서 채화된 성화를 봉송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괜한 마음에 애국자라도 되는 듯싶었으니, 그 현장을 찾아나서는 뿌듯함이 가득하다.
함허동천에서 우리는 계곡길이 아닌 팔각정 코스를 택했다. 하여 계곡에 커다랗게 함허동천 이라 새겨진 글씨를 볼 수 없었지만, 팔각정 이름이 함허정이니 그 유래를 조금 살펴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함허동천은 이곳 정주사에 한 때 머물렀던 함허대사의 법호를 따서 함허이며, 동천은 산과 내가 둘러있어 경치가 좋은 곳을 말한다고 한다. 쉬어 감을 청하는 경치를 지닌 곳이라 한다.
매표소를 향해 삼삼오오 걷기 시작하노라니 오르는 양 도로변에는 목련이 어느새 꽃망울을 탐스럽게 맺고 있었다. 진정 봄! 이다. 야영장에서는 전국 산악회에서 몰려와 시산제를 올리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기가 센 이곳에서 시산제를 거행함은 실로 이치에 맞는 일이 아닐까. 슬금슬금 구경하며 등산로를 따라 오니 금세 함허정이란 이름의 팔각정이 나타난다. 팔각정을 지나 본격적인 등산이 시작되면서 땀이 줄줄 흐르니 나 역시도 옷을 바꿔 입어야 했다.
바다 속에 우뚝 솟은 섬의 산에 오르면 어느 곳 에서나 확 트인 전망을 만날 수 있어 참 좋다. 계곡길과 합류지점에서부터 펼쳐지는 바위 군상들이 참 재밌다. 마니산이 기가 세다한 것은 이런 바위들이 많아서이지 않을까? 거대한 바위들이 빚어놓은 풍경은 언뜻 거칠어 보이지만 참 아름다운 길이다. 겨우내 헐벗은 나무들과 함께 지내며 제 나름대로의 모습으로 함께 어우러지기 때문이다.
멀리서 바라보며 저 험한 곳을 어찌 오르나? 하며 무서움이 앞서지만 결코 피하거나 벗어나고 싶지 않은 정겨움으로 우리를 이끈다. 암릉이 주는 선물이다. 능선에 오르면 산의 기세는 한 풀 꺾이는 법, 하지만 마니산처럼 능선이 바위로 이루어진 길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우리는 때론 리듬체조 선수들보다도 더 길게, 넓게 다리를 찢어야 했다.
아슬아슬한 구간도 있다. 반대편에서 내려오던 한 여자 분이 무서워서 못가겠다고 울상을 짓기도 한다. 사람들은 너도나도 그녀를 돕는다. 마니산을 오른다는 설렘 한가득 이었지만 바위가 빚은 풍광 앞에서는 섣불리 다가설 수도 앞지를 수도 없는 길. 바위가 그나마 내준 틈새로, 때론 넓은 바위를 폴짝 뛰어 오르며 길 아닌 길을 걷는다. 등산길은 온통 암릉 길이었는데도 위험보다는 스릴을 느낄 수 있었다.
마니산 정상을 조금 앞두고 커다란 바위 앞에서 참성단중수비(塹星壇 重修碑)의 안내판을 만났다. 안내판만 열심히 사진을 찍다 어느 한 순간 바위위에 새겨진 글씨를 보았다. 아! 진정한 참성단 중수비였다. 글자는 마멸되어 읽을 수가 없는데 다행히도 원문과 번역문을 안내판에 기록해 세워 놓았다. 지방문화재 13호란다. 나뭇가지가 마모된 중수비위에 제 그림자를 내려주어 중수비를 더욱 멋지게 수 놓아주고 있었다.
중수 기록의 내용은, 참성단이 오래 되어 무너진 곳이 많으므로 숙종 43년(1717년) 강화유수 최석항(崔錫恒)이 별장 김덕하, 전등사 총섭 신묵(愼黙)에게 중수토록 하여 열흘이 못되어 중수했다는 것이다. 이 내용을 신묵이 바위에 기록해 놓은 것이라 한다. 단군님이 나라를 세운지 4천 년이 넘는 세월!! 그 오랜 세월을 껴안고 있는 역사의 현장에 내가 서 있으니 참으로 감회가 새롭다.
▲ 아들이 사 준 선글라스와 자켓을 입고 (^+^)
▲ 여인의 얼굴 같다!
▲ 거대한 곰 두 마리??
▲ 웃고 있는 고래
▲ 봄 기운이 가득한 산
▲ 코끼리 다리???
▲ 갯벌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반듯반듯함이 참으로 정갈하다
▲ 마치 보물상자 같다.
저 안에 어쩌면 이곳까지 피난와서 지내야 했던
왕들의 비책이 들어 있지는 않을런지.....
▲ 저 멀리 마니산 정상과 참성단이 보인다.
▲ 우리가 지나 온 길
▲ 앞으로 가야할 길
▲ 마치 고인돌 같다.
▲ 책꽂이
▲ 마모되어 읽을 수 없는 글자위에
나뭇가지들이 그림자를 내려 수를 놓은 듯싶다.
▲ 헬기장에서 바라본 참성단
▲ 마니산 표지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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