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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숲을 지켜낸 수호초

물소리~~^ 2015. 2. 9. 13:23

 

 

 

 

 

▲ 수호초

 

 

 

  입춘 지난 날씨가 한겨울보다도 매섭다. 계절의 명현반응일까? 겨울 초입인 12월에는 눈도 많이 내리고 추웠다. 1월은 별 추위 없이 지나간 듯싶으니 아마도 계절은 그냥 내친걸음으로 봄을 맞이하려 했는데, 느닷없는 추위로 이상 증상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라 혼자 생각했다. 이에 이런 현상이 다가오는 봄에 더욱 좋은 반응일 것이라는 혼자만의 믿음으로 이겨내고 싶다.

 

지난 연말에서 이어지는 업무는 유난히 힘들다. 아마도 내 몸이 부실해진 까닭이리라. 입술 양 끝이 부풀어 오르니 입을 벌리려 할 때마다 아프다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계절의 변화에 따른 몸의 변화를 겪는 것은 어디 우리 사람뿐일까. 생명을 지닌 모든 것들이라면 모두 겪는 일일 것이다.

 

내 몸이 힘들수록 내게 짐 지워진 일들에 대한 책임감이 무겁게 짓눌려온다. 그 무거움을 털어버리고 싶듯, 식물들도 겨울 동안의 움츠림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고플 것이다. 그 힘은 어쩌면 생명에 대한 환희를 느끼고 표현해 보고 싶은 욕구가 아닐까. 지난 토요일 낮에 수목원을 찾았다. 초목들이 내 뿜는 거칠 것 없는 희망을 내 맘에 품어보고 싶었다.

 

흐릿한 하늘은 차분함이었지만 조금은 을씨년스럽기도 하였다. 조심조심 걸어 들어간 수목원은 한적했다. 맨 먼저 영춘화를 살펴보았지만 꽃 피울 기세는 없고 야무지게 꽃송이를 숨기고 있다. 통통 여문 모습에서 며칠 더 있다 바깥세상을 구경하겠다는 마음이 보였다.

 

성큼 그 곁을 지나 숲 속으로 난 길을 따라 걷노라니 보이지 않는 무엇들의 술렁거리는 기척이 느껴진다. 나무들은 어느새 저마다 부푼 꽃망울을 내달고 있다. 그들의 소곤거림은 자기들끼리 서로를 바라보며 나누는 정겨운 미소였다. 문득 이 모든 것들을 내려주는 자연의 섭리에 감사의 악수라도 청하고 싶은 마음이 드니 발걸음이 한층 가벼워진다.

 

수목원 한 바퀴 휘이 돌고 나오는 길, 정문에서 발길이 딱 멈춰졌다. 수목원 표시석 아래의 식물에 눈이 번뜩 뜨였다. 수호초였다. 쓰러지듯 자라는 수호초들이 꽃망울을 맺고 있었다. 한 겨울임에도 초록의 빛을 전혀 잃지 않고 자라고 있었지만 오가는 차량들의 먼지를 받아낸 듯 잎들에 뿌옇게 먼지가 앉아 있다. 추위를 가까스로 이겨낸 듯싶은 힘없는 모습에 정이 쏠린다.

 

나무들의 보금자리인 숲의 땅을 사철 내내 푸르게 지켜주는 고마운 풀이라 하여 이름이 수호초다. 저렇게 힘없이 쓰러진 듯 자라는 까닭은 다른 생명들을 지켜 주느라 정작 제 몸은 돌보지 않기 때문이란다.

 

이렇게 계절에 앞서 일찍, 추운 날씨에도 꽃봉오리를 올렸지만 꽃이 피어나는 데까지는 앞으로도 두어 달은 더 필요할 것이라 한다. 수호초 꽃은 한번 꽃을 피우면 피어있는 채로 긴 시간을 보내지만, 지금 시절의 초록 잎의 존재감보다도 미약 하다고 한다. 수호초 꽃이 필 무렵이면 온갖 봄꽃들이 만발하기에 특별함 없는 수호초 꽃에 사람들이 관심을 갖지 않기 때문이다.

 

추운 겨울의 숲 속 땅을 따뜻하게 지켜 내느라 제 몸 건사를 못하는 수호초는 굳이 제 역할을 내 세우지 않고 있는 그대로 살아가고 있었다. 꽃으로라도 관심을 가지려 호들갑을 떨 수 있겠지만 그냥 묵묵히 제 역량만큼의 꽃만으로도 만족하는 것이다. 수호초라는 이름, 그 이름을 누구나 받을 수 있을까.

 

온통 잿빛인 공간에 홀로 초록을 지니며 지친 듯 늘어진 수호초의 꽃봉오리가 유난히 싱싱하게 보인다. 어제와 오늘은 겨울보다도 더 한 추위지만 분명 봄을 품고 있다. 잿빛의 침묵에는 세상에서 가장 큰 힘으로 살아가는 생명들이 숨어 있었다.

 

참 아름다운 계절과 계절 사이의 순간이다. 내 몸도 어느새 수호초의 보호를 받고 있는 듯싶으니 갑자기 마음이 밝아지며 힘이 난다. 나에게 주어진 일은 능히 내가 해 낼 수 있는 일이기에 이겨낼 것이라고 응원해 주는 수호초를 만난 뿌듯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