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이 줄에 걸린 긴수염고래
- 사진출처 / 인터넷 -
속보="무사히 빠져나간 것 같습니다. 고통스러웠을 텐데 잘됐습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굵은 글씨 내용이 내 눈을 확 끌어감과 동시에 난 휴우! 하고 안도의 숨을 내 쉬었다. 지난 11일 남해 홍합 양식장 부이 줄에 멸종위기종인 거대한 긴수염고래(Right whale)의 꼬리가 걸려 빠져 나가려고 안간힘을 다하고 있다는 뉴스를 보았다. 그에 해당 청에서 고래를 구하기 위한 노력으로 엉킨 부이 줄 3개 중 2개를 끊었지만 나머지 한 개는 고래가 워낙 격하게 움직여 끊지 못하고 날이 어두워 철수했다고 한다.
오늘(12일) 오전 7시 무렵 작업을 재개 하려 했지만 고래는 이미 사라졌었다고 한다. 그나마 끊긴 2개의 줄 틈을 찾아 나갔을까. 어제 저녁까지만 해도 부이 줄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 안간힘 쓰다 지친 모습이라는 사진을 접할 때 마다 안타까움을 금하지 못했던 터다.
지친 고래의 모습을 대하는 순간, 얼마나 힘들까? 하는 연민에 내 일처럼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그 순간 나는 생뚱맞게도 행여 고래는 저렇게 몸부림치다 생똥을 싸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내 경우지만, 내 몸이 힘들고 특히나 소화가 안 되어 위가 쓰린 경우에 이르면 나는 나도 모르게 화장실을 찾거나 구토가 잦은 내 경험에 비유한 것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생똥은 산똥의 사투리로 ‘배탈 등으로 인해, 먹은 것이 제대로 다 소화되지 못하고 나오는 변’ 을 일컫는 말이다. 얼마나 힘들면 먹은 것을 소화도 못시키고 그대로 위 아래로 내놓게 되는지, 그 상황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는 누구나 한두 번 경험을 했음직한 일이다. 고래는 그 고통의 시간들을 어떻게 이겨냈을까. 긴수염고래도 자신에게 닥친 고통스러움을 그렇게 몸으로 풀어버렸지 싶은 마음이다.
문득 언젠가 책에서 읽은 박완서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박완서님은 남편을 잃은 해에, 스물여섯의 나이인 아들을 또 잃어야 하는 참척의 고통을 겪으셨다. 그 고통을 어떻게 극복하셨느냐는 질문에 ‘극복한 것이 아니고 그냥 견디어 냈다’ 는 그 말씀에 그만 내 가슴이 쿵! 무너지는 소리를 들었던 기억이 생생하였다. 어쩌면 고래도 그렇게 제 몸이 겪고 있는 고통을 극복하려는 반항이 아닌, 그냥 견디어 내려는 섭리를 따르는 마음을 택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고 말았다. 가슴이 먹먹해진다.
긴수염고래는 몸길이가 10m 이상으로 몸무게는 100톤에 달하며 수명이 사람처럼 60~70년에 이른다고 한다. 현재 지구상에 남아 있는 개체 수가 300마리 이하인 대표적 멸종위기종이라 했으니 참으로 귀하신 몸이다. 고래를 귀하게 여기는 조건의 또 하나는 고래가 지닌 좋은 성분이다.
향수의 원료가 되는 용연향은 고래의 부산물이다. 긴수염고래와 다른 종의 향유고래는 심해에 사는 대왕오징어 등을 먹다 잘못하여 내장에 상처 내기도 하는데, 고래는 이 상처를 치료하기위해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이 용연이며 치료 후 이를 게워 낸다고 한다. 게워 낸 용연은 처음에는 대변과 같은 악취를 풍기지만, 10년 이상 바다 위를 장기간 부유하며 염분에 소독이 되면서, 햇볕에 잘 말라가면서, 사향 같은 냄새를 갖게 된다고 한다. 이것이 아주 귀한 향수의 원료가 되는 것이다.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게워낸 악취 덩어리는 오랜 세월 인내한 결과로 누구도 지닐 수 없는 향기를 지니게 된 것이다. 장시간 바다 위를 떠 다녀야 하는 고통을 고통으로 생각지 않고 상처를 치료했다는 당연함으로 견디어 냈을 것이다. 누구 고통 없는 삶이 있을까. 극복하려는 안간힘보다는 견디어 내는 마음으로 이겨내는 의미를 깊게 새겨 스스로에게 힘이 된다면 좋겠다.
부이 줄에서 무사히 탈출한 긴수염고래도 빠져 나오기 위해 겼었던 고통을 견디어 냈으니 또 다른 무엇으로 승화 시킬 것이다. 이제 더욱 멋진 고래의 후손을 번식시키며 살아가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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