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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맘의 글방

도토리나무의 몸부림

물소리~~^ 2014. 11. 24. 21:14

 

 

 

 

 

우리 집에서 바라본 나무

 

 

   계절을 앞세운 세월은 모범생 답안같이 띄어쓰기 한 번 틀리지 않고 척척 밀려오고 밀려간다. 아침 산책을 하려고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8층에서 멈춘다. 이 시간은 언제나 나 혼자서 일층까지 직진하는데… 무슨 일이지? 누구지? 하는데 지인이 타신다. 그이는 교회에 가는 길이란다. 그이가 하는 말, 나더러 참 대단하다고 한다.

 

일 년 열두 달 내가 산책을 나가는 시간은 오전 5시, 똑같다. 그렇게 한 시간 다녀와서 씻고 아침식사하고 출근하면 한 치의 시간 낭비가 없는 움직임이다. 여름이면 이 시간에도 한 낮처럼 환하니 그냥 인사만 하고 지나치곤 하는데 요즈음처럼 어둠이 짙은 계절이 되면 무슨 큰일이나 하는 것처럼 이야기를 한다. 나는 늘 그 시간 그 마음 일 뿐이다. 오히려 요즈음처럼 어두운 시간이면 하늘의 별들도, 달들도 더욱 뚜렷이 볼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왜 시인들이 새벽하늘의 별들을 졸고 있다 하는지, 눈썹 같은 그믐달이라고 하는지, 할머니들께서는 왜 보름달에 소원을 빌면 들어준다 하는지, 옛날 우리 어머니 장독대에 정화수를 떠 놓고 북두칠성을 헤아려 보며 간절한 기원을 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은 마음이 절로 일어나는 나만의 시간인 것이다. 운동이 아닌, 내 마음이 청아해지는 그 맛을 놓칠 수 없는 유혹의 시간이다.

 

이런 산책길에서 며칠 전 참 희한한 경험을 했다. 내가 일방적으로 정한 3번째 봉우리에는 수형이 참 예쁜 커다란 도토리나무가 있다. 오가다 그곳에 이르면 늘 발걸음을 멈추고 하늘 한 번, 나무 한 번 쳐다보곤 하는데, 그날은 이상하게 나무 끝의 모든 가지들이 서로 몸을 비비면 사사삭 소리를 내고 있었다. 바람이 부나? 아니었다. 비가 오려고 그러나? 하지만 하늘에는 별들이 총총했다. 가만히 서서 나무 위를 바라보니 다른 나무들은 가만히 있는데 잘 생긴 도토리나무만이 온 몸으로 우는 듯 가지들을 비벼대고 있었다.

 

무슨 일일까? 잠 못 이루는 남모를 슬픔 아니면 기쁨이 있는 것일까? 그런데 왜 슬픔이 먼저 떠오르는 것일까. 고요하기 그지없는 숲에서의 나무의 유별한 모습이 내내 궁금하기 짝이 없었고 오늘 지금까지도 그 궁금함을 떨치지 못했다. 그 다음날, 나무는 내가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한 몸짓으로 시치미 떼고 있으니 나만 거짓말쟁이가 되고 말았다.

 

나무는 我無, 내가 없음이다. 나무들이 모여 숲을 이룬다. 모든 나무들은 자신을 비우고 없는 존재로 살고 있기에 숲을 이룬다고 나는 믿는다. 그렇다면 그날 새벽의 상수리나무는 아무래도 자신을 한 번 내세우고 싶었을까. 자신의 잘남과 가장 우뚝한 모습을 표현하고 싶었을까. 모두가 잠든 고요함 속에서 그렇게라도 자신을 활개치고 싶었는데 나한테 들켜버렸을까.

 

사회생활을 하면서 내가 최고라 믿는 우쭐함은 단번에 차등을 내세워 줄 세우기 마련이다. 그에 앞서기 위해 경쟁을 해야 함은 물론 다른 사람과의 위화감을 낳는다. 서로 간에 설 땅을 양보하지 않고 내 모습에 우쭐거리는 나무들이라며 숲을 이룰 수 없는 일이다. 도토리나무도 줄곧 그렇게 자신을 버리고 살아왔음은 당연한 일 일 것이다. 그날 그 시간, 한 순간 무엇에 마음 흔들렸지만 오늘은 다시 다소곳하다.

 

나뭇잎들이 무성할 땐 그 자리에 외로움이 앉아 있음을 몰랐다. 그날 나는 잎을 다 떨치고도 비우지 못하고 버리지 못해 몸부림을 치는 도토리나무의 지독한 외로움을 만났나 보다. 비움과 버림 없는 혼자만의 잘남은 숲을 채울 수 없고, 숲을 이루는 모든 것들과 나눔의 기쁨을 얻을 수 없음을 깨닫는 순간의 간절함이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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