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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따라 발길따라

겨울, 육지가 된 섬을 걷다

물소리~~^ 2014. 12. 14. 23:30

 

 

 

 

 

▲ 완도 상황봉 능선의 눈꽃

 

 

간밤에 내린 눈으로 길 걱정을 했지만 약속된 장소에서 불을 밝히고 서있는 산악회 관광차를 보는 순간 마음이 스르르 녹아내린다. 일행을 모두 태운 버스는 7시 10분경부터 달리기 시작하였다. 추운 날씨에 어설픈 마음이기도 할 것 같지만 모두들 지체 없이 차에 오르는 밝은 표정을 보니 산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마음들의 밝음인 듯 정겹다.

   

3시간여를 달려 10시 5분에 완도 상황봉 산행들머리인 대구리에 도착했다. 팔을 뻗으면 바다에 잠길 것 같은 거리에 산이 있어 오른다는 묘한 기분의 설렘이 좋기만 하다. 군산은 지금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이 내린단다. 우리나라도 참 넓다. 이곳은 눈은커녕, 햇살이 은은히 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리 쾌청함은 아니었다. 어딘가 모르게 묵직함을 품고서 지형적인 기후를 애써 보여주고 있었다.

   

길섶에는 노오란 산국이 초라한 모습으로 여태 자리를 지키고 있다. 멀구슬나무라는 예쁜 이름의 나무는 열매만을 달고서 하늘을 수놓으며 우리를 환영하고 있다. 산은 늘 그 자리에 있을 뿐인데 찾아오는 객들의 마음은 천차만별이다. 오늘 완도의 상황봉에는 우리 팀만이 오르고 있다. 조용하던 산이 갑자기 활기를 띤다.

   

육지의 산들은 영원할 것 같은 푸르름을 진즉에 떠나보내고 빈 몸으로 서 있는데 이곳 나무들은 푸르디푸른 잎을 윤이 나도록 반짝이며 우리를 맞이한다. 오늘 유독 이곳에 따라나서고 싶었던 마음은 이곳에서 자라는 늘 푸른 난대성상록수림을 만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에누리 없는 고도 0m에서 최고봉인 644m에 이르는 길은 깔닥고개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터운 겉옷을 벗어야 했고 장갑마저 거추장스러운 후줄근함이 온 몸을 타고 흐른다. 그럼에도 산이 보여주는 상냥한 속내에 마음은 즐겁기만 하다. 눈은 내리지 않았지만 최근의 눈자취가 더욱 멋진 산길의 정취를 품어내고 있었다. 산은 이렇게 늘 먼저 마음을 열어주며 우리를 받아주는 포근함이 있어 자꾸 찾아오고 싶은가 보다.

   

산죽의 길게 늘어진 잎 위에 다소곳하게 내려앉은 눈들은 마치 꽃인 양 우리를 맞이하고 있다. 간간히 보이는 빠알간 동백꽃의 선명함은 마냥 애처롭기만 하다. 그새 땅 위로 떨어진 꽃송이들에 애잔함을 떨치지 못했지만 그 또한 어쩌지 못하고 지나쳐야 했다.

 

정상에 이르진 못했지만 곳곳의 탁 트인 넓은 바위위에서의 조망은 마음을 원 없이 트이게 해주었다. 바다 위에 점점이 떠 있는 섬들은 바다 길을 통해 그렇게, 그렇게 이어지고 있었다. 섬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구름들은 서로의 소식을 나르는 하늘의 우체부가 아닐까. 참 예쁜 구름들이다. 날씨가 좋은 날은 제주도까지 보인다는데…

  

산죽이 도열한 사이를 으스대며 걷고, 길이 된 바위 위를 걷고, 너럭바위에 올라 섬들을 바라보기도 하면서 능선을 따라 봉우리들을 올랐다. 날씨가 점점 차가워진다. 벗었던 옷들을 다시 챙겨 입었다. 멀리 보이는 상황봉 아래의 산 능선에는 눈꽃을 피운 나무들이 하얗게 서 있었다. 이제 해도 숨었다. 등산로에는 엷은 눈들이 쌓여있어 미끄러웠다.

  

문득문득 눈앞에 나타나는 바위들의 기묘한 모습과 바위가 품은 질감들이 추위를 녹여주고 있다. 마치 이 산의 풍경의 감초처럼 서있는 바위들의 아기자기한 모습들이 재밌기도 하다. 드디어 상황봉에 도착! 하지만 하늘은 더욱 짙게 내려앉았고 바람이 심하다. 오늘의 최고봉에 올라 내가 지나온 길과 앞으로 가야할 산 능선을 바라본다. 서로 다른 이름으로 길게 이어진 능선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산이지만 봉우리마다의 표정은 저마다 다르다.

  

정상에서 점심식사를 하기로 했지만 바람을 피할 자리를 찾지 못해 그냥 내처 걸었다. 드디어 눈발이 흩날리기 시작한다. 바람이 차갑다. 차에 두고 온 목도리가 생각나지만 이쯤을 이겨내지 못한다면 말이 안 된다.

  

눈발이 점점 짙어지니 전망대에서도 앞이 캄캄했다. 하지만 오히려 겨울산행의 묘미를 느낄 수 있으니 마음은 참으로 천진함으로 변한다. 신이 난다. 상록수 잎 위에 내려앉은 소복한 눈들이 더없이 예쁘다. 빈 가지들이 설핏 눈꽃을 피운 것 같아 사진을 찍었지만 그 모습을 잡아낼 수는 없었다. 앞서는 일행들의 모습이 그대로 꽃이 되어 참 예쁘다.

  

눈이 잦아드는가 싶었는데 그것은 잘 자란 붉가시나무 덕분이었다. 쭉쭉 뻗은 몸이 하늘로 치솟으며 하늘을 가려주고 있었다. 마치 시베리아벌판의 자작나무 행렬들을 보는 듯싶은 이국적인 풍경이 정말 아름다웠다. 그들의 예쁨에 취해 걷는 행위조차 잊었나보다. 문득 나타난 임도에 이르렀다. 하지만 우리는 임도를 가로질러 다시 건너편 숲으로 들어서야한다.

  

여전이 짙푸름이 울창하다. 아마도 이 근방이 완도수목원인 듯싶다. 수목원을 따로 조성한 것이 아니라 산 일부를 그냥 묶어 수목원으로 지정한 것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식물들의 특이성을 본다면 충분히 그럴 만 하다는 생각이다.

  

세 번째 봉우리인 백운봉 곁에 이르렀다. 일행들은 그 복잡한 길을 마다했지만 나는 일부러 표지석을 보러 바위 위를 올랐다. 백운봉(601m)의 표시석은 자연 그대로의 돌에 새겨 놓은 것이라 했다. 마치 잘 고르고 다듬은 것처럼 반듯한 커다란 바위였는데 자연석이라 한다. 과연 그곳에는 사람이 서서 사진 찍을 수 있는 공간은 없었다. 간신히 표시석만 담아 내려왔다. 눈길이 미끄러웠다.

 

눈길은 점점 더 미끄러워진다. 앞에 보이는 숙승봉의 높이는 별반 높지 않은데 거대한 바위덩어리 자체가 봉우리인지라 까마득 높아 보인다. 멀리서보면 스님이 잠든 모습 같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데, 숙승봉, 업진봉, 백운봉 등 이름에서 종교적인 상통함이 느껴진다. 일행들이 우회하여 지나간다. 이곳까지 왔는데 봉우리를 오르지 못하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은 아쉬움이 나를 휩싼다. 나 혼자 그냥 끝까지 올랐다. 봉우리 아래 도로가 가깝게 보이니 거의 다 온 것 같다.

   

한참을 내려오니 멀리 해신 촬영장세트가 보인다. 완도와 장보고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장보고는 신라시대의 민초들의 희망이었다. 해상의 왕이라 배웠던 장보고는 누구였던가? 통일신라 말기 무렵, 죄 없이 당나라에 끌려가 노예로 살거나 굶주림으로 살아가는 동포 신라인들을 위해 헌신한 사람이었다. 헐벗고 쫓기는 동족들의 아우성을 해결해준 우상이었다. 비록 천민 출신의 장보고였지만 민초들은 그가 나라를 이끌어 주어 좀 더 편안하게 살고 싶은 욕망을 희구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래서일까 장보고는 신라의 주요관직에 들어가게 되었다. 욕심이었을까. 자신의 딸을 왕비를 삼고자 했으나 신하들이 반대했고, 그에 반란을 일으키려 했다는 죄목으로 죽임을 당한다. 그가 죽은 후, 완도에 거주하는 사람 모두를 전북 김제로 강제 이주시켰으며 500년 후, 고려 공민왕때부터 사람들이 다시 들어와 살았다고 한다. 그 오랜 동안 비워둔 관계로 숲이 울창해졌으며 오늘날까지 그 울창함이 이어져 오고 있다니 한 사람의 화도 복도 모두 이 섬을 이롭게 하였음이다.

   

수련원 가까이 내려오니 동백 숲이 더욱 울창하다. 주차장에 도착! 오늘의 산행을 마무리한다. 덩치 큰 빨간 차가 참 반갑다.

 

 

 

▲ 붉가시나무의 울창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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