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서 빌려옴
오늘이 9월 마지막일, 일 년도 어느새 9개월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이제 남은 날들은 3개월~ 아직도 3개월이나 남았다고 해야 긍정적인 사람이라 했는데… 얼른 말을 되돌려 보노라니 빙긋 웃음이 나온다. 하지만 그 웃음 속에 깃드는 계절의 쓸쓸함마저 어쩌지 못하는 마음이다. 늘 같은 시간의 퇴근길이지만 이제는 어스름의 농도도 제법 짙어졌다. 사무실 소등을 하고 문을 잠그는 반복적인 행위에도 어스름이 내려앉았는지 잡히지 않는 허전함에 뒤가 켕긴다.
차의 시동을 걸고 큰 길로 나오니 퇴근 시간대의 차량들이 밀려든다. 많은 차량들이 전조등을 밝게 켜고 달리고 있다. 정말 이제는 전조등을 켜야만 하는 시기임을 여실히 증명해주는 불빛이 아니던가. 내 손도 어느새 미등 스위치를 돌리고 있었다.
반대편 차선의 차량들은 밝은 주황빛의 전조등이었고 나와 나란히 달리는 앞선 차들의 후미 등은 빨간 빛을 발하고 있다. 문득 명절전후 고속도로 상황을 알려주는 교통방송의 화면이 떠오른다. 유독 심한 정체로 밀리는 차선의 차들이 보여주는 빨간 후미 등을 클로즈업 화면으로 보여주곤 했던 것이다. 주황과 빨간 빛. 서로 반대 방향의 차선에서 말없이 쏟아내는 빛들의 차이점에서 묘한 조화로움을 느끼기도 하였다. 두 빛은 모두 차들의 위치와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으니, 불빛이 전해주는 시간의 흐름과 차 안의 사람들의 답답함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내 멋대로 생각을 하며 화면을 주시하곤 했었다.
신호대기가 끝나고 사거리를 벗어나면 곧장 한적한 길로 들어서는 나의 주행구간, 반대편 차들이 전조등을 켜고 씩씩하게 달려온다. 문득 저 차도 내 차의 불빛을 보았을까? 보았겠지 하며 혼자만의 생각을 하다가 문득 자동차의 전조등 불빛은 내가 가야할 길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상대방들에게 나의 위치를 알려주는 빛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후딱 스쳐간다.
맞아! 내가 잘 지나가기 위함이 아닌 상대방에게 내 위치를 알려주며 주의를 요하는 표시일 것이다. 참 좋은 의미의 불빛이다. 하지만 만약 내가 나아가기 위함만으로 비추는 지나친 눈부심의 불빛이라면 때론 상대방에게 방해를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아무리 좋은 의미의 불빛이라도 상대방이 불편하지 않아야 함을 먼저 생각해주는 예의도 지녀야 할 것이다.
나의 이른 새벽 산책의 산길도 요즈음부터는 제법 어둑하다. 하지만 나는 아주 많이 어두워도 랜턴을 들고 다니지 않는다. 고요한 숲 속의 살아있는 모든 개체들은 아직도 곤히 자고 있을 텐데 내가 길을 잘못 디뎌 넘어지지 않으려는 마음만으로 불빛을 비추고 다니면 그들은 자못 짜증스럽게 불빛만이 아닌 나까지도 밀쳐낼 것이다. 내 발자국 소리도 조심해야 하는데 거침없는 불빛으로 사위를 소란스럽게 한다는 것은 참으로 잘못된 일이라고 믿는 마음이기에 그저 조심조심 다녀오는 시간인 것이다.
이런 나의 행위들은 내 경험에서 빚어진 것들이다. 그러기에 저들을 내 입장으로 바꿔 놓으면 충분히 무엇이 좋고 나쁨을 구분할 수 있는 마음이 생긴다. 이런 마음은 어디까지나 결국 나를 위한 마음임이 분명하다. 역지사지(易地思之)라 했다.
부자는 가난한 사람이 되어보고, 젊은 사람은 노인의 입장을 헤아려 보아야한다. 힘들고 어려운 사람을 만나면 나의 지난날들 중 힘들었던 날을 생각해 보아야한다.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해 주지 않고 나의 주장만 내세운다면 그 어느 것도 이룰 수 없는 갈등의 골만 깊어갈 뿐이다. 이런 평범한 말을 내 것인 양 말 할 수 있음은 나에게도 참 아픈 기억이 있어서이다.
우리 큰 아이는 공부를 제법 잘 하였다. 누구 어릴 때 공부 못한 사람 없었겠지만 유독 엄마인 나의 욕심은 자꾸만 커져만 갔다. 매번 일등하기만을 바라면서 아이의 마음을 나 몰라라 하며 다그치곤 했던 것이다. 잘하고 열심히 하는 것 보다는, 어느 정도 하면서 쉬고 놀고 싶어 했던 마음이 더 많은 아이였는데 순전히 내 욕심대로 아이를 몰아 세웠다. 아이의 착한 성품은 나에게 반항은 하지 않았지만 엄마의 손이 멀어지게 될 때 공부를 손에서 놓아버렸던 것이다.
그럼에도 지금은 제 몫을 잘하고 있는 아이를 바라보면 나는 순간적으로 내 마음을 쓸어내리곤 한다. 내 진즉 아이의 마음자리에 서 보았더라면 아이나 나는 덜 힘들었을 것이 자명한 사실이다. 이렇듯 한 걸음 물러서서 바라보며 서로 간에 원하는 것을 요구했다면 더 없이 좋았을 시간이었을 것이다. 남을 아끼는 마음이 바로 자신을 아끼는 마음이라고 했던가.
내 차의 불빛이 내 위치를 알려주어 상대편의 차로 하여금 주의를 가지게 한다면 사고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니 이는 결국 나를 위한 일인 것이다. 상대방을 먼저 헤아려주고 베푸는 일이 지금 당장은 나에게 손해인 듯싶지만 결국은 다 나에게로 돌아오는 덕목인 것이다. 내가 소중하기에 남을 먼저 생각하며 아껴주는 것이라고, 일찍 내려앉은 어스름을 가르는 긴 자동차의 아련한 불빛에 빚어지는 쓸쓸한 내 생각을 저장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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