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청대피소에 내려왔지만 그 많던 꽃들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가을은 간다는 의미일까? 이 높은 곳에 사는 자유분방한 꽃들이었지만 그들은 자연의 일정한 법칙에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순응하며 살아가고 있는데 우리는 늘 뒷북을 치며 따라 나선다. 멋진 낭만적인 마음으로 엽서를 챙겼던 고즈넉함도 사라졌다. 겨우 의자 한 귀퉁이를 잡고 앉아 사과 한 개를 먹었다.
오늘 우리 일행이 걷는 코스는 세 방향이기에 이제 조금 내려서는 곳 소청에서 각자 정한 코스로 향해야 했지만 이미 행렬을 서로가 벗어났기에 확인 할 필요는 없었다. 나와 내 짝은 서로 사진도 찍어주며 설악의 풍경을 마음껏 음미하며 소청대피소를 지나 봉정암으로 향했다.
소청에서 바라보는 용아장성과 공룡능선의 풍경이 그야말로 장관이지만 오늘은 바라볼 수 없다. 구름들이 딱 막아서서 차지하고 저희들의 멋진 폼을 마음대로 펴 보이며 놀고 있다. 하늘의 지샌달도 그 풍경이 좋은지 갈 길 잃은 것처럼 얌전히 떠 있다. 소청대피소에서 바라보이는 용아장성은 구름에 가려 한 움큼만 보이니 마치 진짜 용의 이빨처럼 보인다. 정말 이름 그대로 용아장성이 맞구나! 후후, 대피소 아래 산기슭의 마가목의 빨간 열매들이 눈길을 끌어간다.
봉정암까지는 계속 내리막이다. 이 길도 난 코스다. 지난 봄 이곳에서 얼레지 꽃을 많이 만났는데 보이지 않는다. 조금 해찰을 하며 그 씨앗이라도 찾아보고 싶지만 나 혼자만의 길이 아닌지라 그 틀을 벗어나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대신 나무들이 점점 울긋불긋 치장하며 나를 반긴다. 아래로 내려올수록 단풍들이 곱다.
봉정암 지붕이 보인다. 언제 보아도 봉정암을 감싸며 호위하고 있는 듯싶은 우람한 바위 형상이 예사롭지 않다. 그래서인지 봉정암은 평안한 느낌이 들었다. 조용히 조심스럽게 경내로 들어서 약수터로 향했다. 앞서가신 일행 분이 약수터에서 기다리겠노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도 없었을뿐더러 약수도 잠겨 있었다.
가뭄일까? 식수부족으로 잠가두었으니 물이 필요하면 공양실의 물을 이용하라는 안내문이 있었다. 하기야 여기까지 워낙 느리게 왔으니 일행들도 기다리다 지쳐서 먼저 출발을 했을 거란 믿음으로 우리는 그곳에서 준비해간 도시락으로 이른 점심을 먹었다. 약간의 쉬는 시간을 가진 후, 사리탑으로 향했다. 긴 세월 동안 묵묵함으로 지켜온 자리, 그저 있는 듯, 없는 듯 서있는 단아한 마음결을 흠뻑 받고 싶은 마음으로 바라보고 내려왔다. 언제 다시 꼭 찾아와 저 단아함에 내 간절함을 걸어두고 싶다.
▼ 봉정암에서 내려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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