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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따라 발길따라

우금암을 찾아서

물소리~~^ 2014. 10. 27. 08:58

 

 

 

 

 

개암사 대웅전과 우금암

 

   

유홍준님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문화유적 일 번지를 전남의 강진과 전북의 부안을 꼽았다. 두 곳 우위를 가늠할 수 없는 문화적 깊이와 무게를 지니고 있다 하였다. 그에 부안의 경우 변산, 곰소, 내소사, 개암사, 인물로는 반계 유형원과 시인 신석정을 말할 수 있다고 했으며 또한 상감청자, 분청사기. 그 외, 나무들까지도 일일이 열거하며 그 아름다움을 말하였다. 화려하고 빛나는 문화가 아닌 조용하면서 평온함을 안겨주는 소중한 아름다움이라 하였다.

 

내소사를 거쳐 개암사에 답사 온 유홍준님은 회원에게 짓궂은 질문을 하였다.

“개암사가 좋으니? 내소사가 좋으니?”

대답이 없자 재차 묻기를

“둘 중 한군데서 살라고 하면 개암사에서 살래 내소사에서 살래?”

그의 대답은

“ 나는 개암사에서 살면서 내소사에 놀러 다닐래요” 라고 했단다.

 

아마도 두 곳 사찰의 풍경과 위치. 그리고 건물이 주는 아름다움을 은연 중 표현하는 의미가 아닐까 하면서 나는 이 두 곳을 두 어 번씩 다녀왔다는 뿌듯함과 자랑스러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 나의 온 신경을 빼앗아가는 새로운 사실 하나를 알았다. 조선시대 문인화가인 표암 강세황의 그림 우금암도를 박물관 전시회에서 만났던 것이다. 이 그림은 부안을 배경으로 남긴 유일한 실경산수화인데 개암사 뒤편에 우람하게 솟은 바위를 그린 그림이었다. 이 귀한 그림이 그마저 미국 카운터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다하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다.

 

 

강세황의 우금암도

 

 

전시회에서 그림을 만나고 온 후, 우금암을 꼭 찾아보고 싶었다. 여태는 개암사를 호위하듯 서있는 바위 모습을 멀리 바라보며 그저 위엄이 있음을 느껴왔을 뿐 이었는데, 300년 전의 화가의 눈길을 벗어나지 못한 모습이었다니… 긴 세월을 지켜온 모습도, 그에 품은 역사적 이야기도 어느새 살아있는 오늘이 되어 내게 다가오니 꼭 가까이서 바라보고픈 마음을 억제하지 못했다.

 

일요일마다 치러야하는 집안일을 대폭 간소화하고 오전 10시 36분 개암사를 향해 달렸다. 차의 속도 따라 달려왔다 멀어지며 스치는 풍경에는 가을로 가득하였다. 맑은 하늘 아래의 황금벌판은 참으로 평화로웠다. 울긋불긋 물들어가는 낙엽들,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찢어지고 말라비틀어진 형편없는 모습들일 뿐인데 가을햇살을 받아내며 자신의 모습을 최상의 미로 승화시키고 있었다. 가을은 그런 것이다. 겨울을 나기위해 스스로 양분을 섭취하지 않는 숙살(肅殺)을 자행하고 있는 것들에 외롭지 않도록 동행해주는 선함과 낭만의 서정이 가득한 계절이다.

 

개암사를 품고 있는 산은 능가산이다. 내소사 역시 능가산이 품고 있다. 능가란 ‘그곳에 이르기 어렵다.’ 라는 의미라 한다. 정말 어렵게 찾아온 내 마음 아니던가. 개암저수지를 돌아 도착한 개암사 주차장은 이미 꽉 차있었다. 행여 남은 자리 있을까 천천히 들어가는데 딱 내 앞에서 차 한 대가 빠져 나간다. 웬 횡재람~~간신히 비좁은 사이에 주차를 하고 나서니 아, 우람한 우금암이 하늘을 향해 치솟아 있다. 목적이 있어서일까. 새롭게 만나는 듯 기분이 좋아진다.

 

일주문을 지나 걷는 길은 청량함으로 길손을 맞이한다. 이제 막 물들어가는 나무들, 푸르름을 지니고 있는 전나무 그리고 개암사의 가지런한 차 밭~ 풍경을 이루는 요소요소들은 얼마만이냐는 듯 반가움을 보내준다. 다리를 건너 맞닥트린 석축 앞에 이르니 대웅전의 지붕과 우금암이 나를 굽어보고 있다. 조심조심 돌계단을 오르니 아, 아담한 대웅전과 우금암은 서로가 서로를 보완해주는 필요충분조건의 요소처럼 하나의 어울림이 되어 그림이 되었다. 얼핏 달마산 미황사의 대웅전 모습이 떠오른다, 참 단아하고 고즈넉한 모습이다.

 

개암사는 변한의 왕궁 터였다고 한다. 그 후 백제 묘련왕사가 궁전을 고쳐 개암사를 지으니 궁터가 절터로 바뀌었으나 후에 백제가 멸망 후, 백제 부흥운동의 최후 항쟁지였다는 설이 있지만 확실함은 없다고 한다. 왕궁이 절터, 또 항쟁지~~ 운명의 부침이 심했음에도 의연함으로 버티어 온 개암사는 부안 기생 매창도 품어주었다.

 

황진이와 함께 조선 4대 여류시인이자 예술가였던 매창은 이곳 개암사에서 시를 짓곤 했다고 한다. 매창의 사후, 그녀가 지은 한시집 58수를 이곳 개암사에서 목판본으로 간행하였다하니 새삼 하나의 사찰이었다기보다는 민중을 품어온 역사적 현장이었다는 사실이 피부로 느껴진다.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대웅전 처마를 받쳐주는 활주(받침목)가 이채롭다. 아마도 최근에 단청을 새로이 했을까. 유난히 짙은 붉은색의 활주가 있어 처마가 더욱 가냘프게 보이며 금방이라도 비상을 할 듯싶은 자세다. 경내는 단정하다. 자잘한 자갈 마당이 걸음을 더욱 조심스럽게 한다. 부처님께 인사하고 개암사 우측의 등산로로 접어들었다. 우금암으로 올라가기 위해서다.

 

주차장은 만원인데 산길을 걷는 사람은 두세 명밖에 없다. 호젓한 가을 길, 참 좋다. 떨어지는 낙엽들을 동영상으로 보여주며 제멋을 자랑하는 숲길, 가파름이다. 절 아래에서는 온전한 모습을 보여주던 우금암은 나무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걷는 일에 집중하라는 뜻일까. 묵묵히 20여분을 계속 오르다 거대한 바위와 맞닥트린다. 우금암이다.

 

아, 정말 큰 바위다! 멀리서 바라볼 때는 잘 다듬어진 바위였는데 가까이 보이는 모습은 거친 바위결이었다. 고개를 젖히고 한참을 올려다보았지만 바위 끝은 보이지 않았다. 이곳 어디 바위 위에 오르는 길이 있다했는데 오직 하나의 길만 통행 시키고 있었다. 등산로 아닌 길에 들어서면 벌금 30만원이라는 현수막이 여기저기 붙어 있었다. 아마도 무분별하게 바위 정상을 오르내리는 경우를 방지하기 위함일 것이다.

 

등산로를 따라 막 돌아서니 커다란 굴이 나온다. 이 굴은 백제부흥운동의 스님 복신의 굴이라고도하고 원효대사가 참선한 굴, 원효방이라고도 한다. 시기적으로 다른 사람이니 두 설 모두 설득력이 있어 보이지만 바위가 지닌 굴은 참 여러모로 좋은 장소가 되고 있음에 예사롭지 않다. 굴의 지붕쯤 되는 곳에 나무 하나가 거꾸로 자라고 있었다. 바위에 뿌리를 두고 아래를 향해 자라고 있으니 어쩌면 저 나무가 바로 부처님이 아닐까.

 

복신굴을 나와 그냥 지나오기 아쉬워 바위를 따라 한 바퀴 돌았다. 물론 길이 나 있었지만 바위 위에는 오를 수 없었다. 뒤편에서 또 하나의 굴을 만났는데 그 굴이 원효방일까? 확실하지 않음을 무언가로 확정짓지 않고 그냥 전해오는 설만을 남겨두는 일도 어쩌면 더욱 호기심을 자극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도대체 얼마만큼의 세월을 지니고 살아온 바위일까. 300년 전 화가의 그림에 매료되어 찾아오긴 했지만, 그 300년 이란 세월도 어쩌면 바위로서는 한 찰나의 시간밖에 되지 않을 것만 같다. 나로서는 300년 이란 시간도 참으로 억겁의 시간 같이만 느껴질 뿐인데… 내가 오늘 여기 온 마음을 남길 수 있을까. 그럼 300년 후 사람은 600년의 세월을 바라 볼 것인데. 아휴, 아서라! 꿈일망정 지나치게 당차지 않더냐.

 

표암의 우금암도는 멀리 바라보고 그린 그림으로 추정하는데, 아마도 이곳까지 올라온 소감은 아닐 것이다. 단순한 바위모습이었다면 그림으로 그릴 마음은 없었을 것이다. 우뚝한 모습으로 절을 호위하며 서로 어우러져 빚어낸 일체감으로 뭇사람들의 시선을 받아내고 있으니... 문득 세상은 홀로 살아감이 아니라는 것을 일러주는 듯싶다. 세월을 지녀온 그림 한 점에서 느꼈던 것은 동질감이었을 것이란 생각이 퍼뜩 지나간다.

 

만나고 싶었던 우금암을 만났으니 이제는 내려가야겠다. 산 능선을 따라 걷는 마음이 한결 가볍다. 푹신한 낙엽을 밟노라니 괜한 마음으로 우쭐거려진다. 우금암을 돌아보고 또 돌아보며 두 시간여를 걸었다. 발밑을 바라보지 않고도 걸을 수 있는 편안한 산길이다. 그런데 갑자기 발이 쭉 미끌어진다. 깜짝 놀라 아래를 바라보니 아, 그곳에 용담이 피어있었다. 아, 나를 불렀구나! 아마도 우금암이 꽃을 불러 나를 배웅하라 일렀나 보다.

 

 

 

 

 

용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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