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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맘의 글방

보금자리, 공간을 색칠하며....

물소리~~^ 2014. 7. 19. 21:13

 

 

 

 

 

▲ 동국사 대웅전

 

 

   사람은 누구나 일정한 공간에 대한 소유욕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한번 자리 잡으면 쉽게 떠나지 못하는 생활근거지가 그렇고, 내가 머무를 집 한 채를 갖고파하는 것처럼 나만의 공간을 소유하고자하는 근원은 어머니의 자궁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 머물렀던 자궁이라는 공간의 아늑함과 따듯함을 잊지 못하는데서 기인한다고 하니 참으로 놀라운 집착이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구석진 곳이나, 빈 박스 안에 들어가 있는 것을 좋아하는 까닭도 그러한 연유라 한다. 나에게도 공간에 대한 묘한 습관이 있다. 어느 곳이든 단 하루라도 내가 머물러야하는 공간을 만나면 나는 걸레질이라도 한 번 하고 나서야 조금 안심이 된다. 일종의 영역표시인지도 모른다. 이런 내가 지금 이곳에 생활근거지를 잡고 나서는 걸레질 한 번도 안하고 앉은 듯 마음 두지 못하고 살아온 세월이 근 20여 년이 되었다.

 

이곳 군산은 남편의 고향이다. 하지만 우리는 서울에서 각자 직장생활을 하며 만나고 결혼하였다. 하여 서울에서 계속 살 것이라 믿었지 이곳으로 내려올 것이라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하지만 운명의 신은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길을 잡았는지 뜻하지 않은 경제적 어려움을 만나 남편도 나도 직장을 포기하고 이곳, 남편의 고향으로 내려온 것이다.

 

나에게는 완전한 타향이었다. 친구도 친정의 친척도 없는 그야말로 나에게는 외로운 섬 같은 곳이었다. 더구나 어려움을 안고 내려온 처지이기에 그 어느 곳도 마음 둘 데 없었다. 누군가 아무런 말도 해 주지 않았는데도 나는 언젠가는 떠나야할 곳이라는 막연한 의식을 안고 살아가고 있었다.

 

이런 나의 입장을 이해했던 남편은 이곳 지방대의 평생대학을 다니도록 해주었고, 나는 그저 조용히 단 하루도 빠짐없이 다니며 수료를 했다. 이를 기화로 차츰 사람들과의 어울리는 시간도 늘어나곤 했지만 마음 한 곳 허전함은 여전했다. 내 마음 깊이 새겨진 부정적인 인식들을 걷어 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지던 어느 날, 문득 아, 이곳은 우리 아이들 고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느릿하게 퍼질러 있던 내 생각들이 발딱 고개를 쳐들고 일어났다. 맞아! 아이들에게는 소중한 장소인 것을… 나로 인하여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된다면? 아이들은 무엇에 마음의 근거를 둘 수 있겠는가.

   

한번 마음 방향의 키를 잡고 조정을 하니 눈에 보이는 것들에 다른 시선이 꽂히고 있었다. 어쩌면 생활기반이 안정적으로 잡혀가고 있음도 연유가 될 수 있었겠지만, 나는 그렇게 차츰 마음의 문을 열게 되었고 지금은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바쁘게 살아가고 있다. 내 주변의 환경들을 소중함으로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도 지니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뒷산도 그러하고, 두루 산재해 있는 여러 문학적, 역사적 사실들이 나의 작은 호기심을 새롭게 충족시켜주는 곳이기에 시나브로 젖어드는 만족함으로 지내는 요즈음이다.

 

군산은 역사적으로 조금 암울한 지역이다. 넓은 평야를 끼고 있는 항구도시라는 지리적 여건으로 일제강점기시절 수탈의 현장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연유로 이곳은 아직도 일제강점기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 많이 있다. 일본사람들이 살았던 가옥이 남아 있으며, 일본사람들이 거주하던 마을길이 열댓자나 되었었다는 설에서 지어진 열대자라는 이름의 마을도 있다. 그 중 하나가 동국사(東國寺)라는 절이다.

   

동국사는 일제 강점기였던 1913년에 일본인 승려가 지어 지금까지 남아있는 일본식 사찰로 한국 전통 사찰과 달리 지붕이 높고 실내 또한 일본 고유 건축 양식으로 지어졌다. 해방 후 일본 사찰을 전부 불태운 가운데서도, 이 사찰만은 원형 그대로 보존됐다고 한다. 깊은 산 속이 아닌 도심 가운데 있음도 그렇지만 절을 바라보면 지붕에서 빚어지는 경박스러운 낯선 모습에 도무지 정이 가지 않는다. 하여 나는 단 한 번 가 보았을 뿐, 무심하게 지나치곤 하였다.

   

이처럼 일제 침략의 역사를 간직한 동국사에서 최근 일제 강점기시대에 겪어야했던 조선인들의 아픔을 알리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씁쓸한 기억, 신사와 무단통치, 조선의 명당엔 신사가 있었다.' 라는 주제의 전시회다. 장맛비가 오락가락하는 토요일에 전시회를 찾아갔다.

  

전시장은 대웅전의 부처님 앞 좁은 공간을 따라 진열되어 있었다. 문득 저기 앉아 계시는 부처님도 일본사람? 하는 불경스러운 마음이 들었으니 나도 참 별종이다. 전시물에는 일제 무단 통치의 실상을 잘 보여주는 군사· 신사· 경찰 관련 유물, 문서, 일본군이 조선인을 폭행하던 총·칼 등 무기, 일본 신사 사진 등이 있었다.

   

내 눈길을 확 잡아간 유물은 조선인 위안부에게 지급했던 군용수표 이였으니… 어찌 그들은 이런 참혹상을 자꾸만 비켜가려 하는지 참으로 얄밉다. 뻔뻔스럽게도 청일전쟁 종군일기도 기록을 했었는지 스스로의 만행을 보여주고 있었다. 일본인들에게 고초를 겪었던 독립운동가들의 편지가 있는가 하면 또한 친일파의 대표적 인물인 이완용의 글도 있으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감정을 지울 수 없었다.

   

이런 참상들을 저질러 놓고도 일본은 아니라 하고 있지만 역사는 이처럼 생생히 살아있다. 비록 수치의 역사지만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아니 된다. 그 아픈 현장을 우리의 채만식선생은 탁류라는 소설로 그려내지 않았는가. 몸으로 대들 수 없었지만 정신으로 맞섰던 흔적들이 우리를 더욱 결속의 힘으로 묶어주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아프지만 살아있는 역사의 이야기는 새삼 사람들을 끌어 모으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전시회를 둘러보고 있음이 참으로 대견하다.

 

아픔을 교훈으로 만들 수 있는 이곳, 내가 살아가는 이곳을 내 마음의 프레임에 담아 나만의 공간으로 예쁘게 색칠하며 가꾸어 가야겠다. 이제 이 공간을 더욱 애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볼 것이니 아마도 그 눈빛은 우리 두 아이들에게 향하는 것일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나를 치켜 세워보았다.

 

 

 

 

 

 

▲ 동국사 담장

 

 

#. 전시회 포스팅은 다음페이지에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