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제목에서 호감을 가졌다. 투명인간~ 추리적 이미지를 강하게 떠올리며 읽고 싶다는 호기심으로 장바구니에 담아두었는데 맞춤하게 지인께서 보내주셨다. 여기서 말하는 투명인간은 과학적이거나 추리적이지 않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소설의 주인공이 바로 투명인간이다. 소설 초기에는 그 당시의 시대적환경의 세세한 묘사에 감탄을 하면서, 후반기에는 주인공 만수의 삶을 지켜보면서 깊은 동감으로 읽었다. 이 소설의 처음부터 끝까지의 배경이 되는 시기는 아마도 1960년대에서 2000년대쯤일 것이다.
할아버지, 아버지, 나(만수), 삼대에 걸친 일가족의 살아간 이야기는 그대로 나의 이야기도 되면서 우리 근대사의 한 면을 채우고 있는, 어찌할 수 없는 엄연한 현실이기에 읽기를 멈출 수 없었다. 소설속의 시기에 나를 대입해보며 읽노라니 어쩜 그리도 시대적 상황을 세세히 묘사해 놓았는지 절로 고개가 주억거린다. 또한 주인공의 모습은 내 주변 어딘가에 있었던 사람처럼 여겨지니 마치 그가 누구였던가 라는 의문을 풀어줄 것처럼 나를 끌어간다.
주인공 김만수는 3남3녀 중 넷째이다. 위로 형과, 두 누나가 있고 아래로 남동생과 여동생이 있다. 가난한 집안의 자손들이지만 형은 천재소리를 들으며 공부를 잘 했다. 누나와 두 동생들도 똑똑하고 야무지다. 하지만 태어날 때부터 부진하게 태어난 만수는 형제 중 가장 못났다. 말이 늦고 매사에 이해가 더뎠다.
비록 못난이처럼 살아가는 만수였지만 할아버지는 늘 만수를 북돋아주셨다.
“만수야, 나는 점쟁이들을 믿지 않고 관상을 보지도 못한다만 그래도 네 얼굴이 유난히 크고 훤해서 멀리서도 잘 보이기는 한다는 건 알겠다. 그러니 너는 웃어라. 소문만복래, 네가 웃음만 잃지 않으면 평생 없는 복도 받아가며 살리라” -p24 -
" 만수야, 너는 아직 재주가 다 드러나지 않은 망아지, 덜 벼려진 칼과 같구나. 천리마는 하루에 천리를 가지만 돈 끼호테의 로시난테처럼 비루먹고 약한 말도 열흘을 부지런히 가면 천리를 간다고 했다." -p40 -
이런 할아버지의 가르침은 만수의 삶의 근간을 이루는 삶의 지표가 된다. 불행으로 치닫는 가족사에 연연하지 않고 끝까지 어려운 시기의 가난한 살림을 꾸려가며 긍정적으로 임하는 삶의 태도는 그를 투명인간으로 만들어 놓았던 것이다.
베트남전쟁으로 그 똑똑하던, 집안의 기대주였던 형이 죽었고, 연탄가스 중독으로 평생을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막내 여동생, 사생아를 낳게 해 놓고 행방불명이 된 남동생, 이런 가족사에서 비켜나지 못한 삶을 사는 만수는 불만 하나 없이 오로지 모든 것을 떠맡아 살아간다. 엄연한 존재로 살아가면서 스스로 자기를 낮추고, 자신의 존재를 내 세우지 않고 철저히 남을 위한 삶을 살아가는 투명인간, 그는 바로 만수였던 것이다.
혼분식 장려시책에 따른 도시락검사와 기생충 검사, 최루탄 가스에 눈물을 흘리면서도 멈추지 못했던 80년대 학생운동, 그리고 산업화에 따른 구조조정과 대량 실직 사태 등 에서는 나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지만 이 모두는 내가 살아온 시대적 풍경이었다. 이 모든 것을 글로 써 낼 수 있는 작가의 기억력은 마치 사진을 찍어 놓은 듯 선명하게 펼쳐지니…
그 속에서 나를 돌아보며, 시대적 삶을 충분히 공감하며, 나도 함께 했었다고 인정해보며 안도하는 마음이기에 작가의 말을 인용하며 어설픈, 두서없는 읽기를 마친다.
‘소설은 위안을 줄 수 없다. 함께 있다고 말 할 수 있을 뿐, 함께 느끼고 있다고, 함께 존재하고 있다고 써서 보여줄 뿐’ - 작가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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