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그리는 일, 나는 참 못한다. 아니 못한다는 표현조차 나에게는 과분하다. 학창시절에도 실기점수는 최하위였던 것을 늘 이론점수로 만회를 하며 그나마 내 성적의 평균을 유지하곤 했던 부끄러운 기억이 지금도 선연하다. 손으로 이룰 수 없는 예술의 경지를, 눈으로 보고 배우고 익힌 논리로 따따부따 할 수 있음은 ‘못 한다’의 의식을 상쇄시킬 수 있다는 심리적 현상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렇게 이론상으로 그림의 특성을 외우곤 했던 습성이 있어서일까? 그림전시를 관람한다든지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찾아가는 일을 즐겨한다. 어떻게 기회가 닿으면 놓치지 않고 발길을 하곤 했다.
그런 곳 중에서 가장 가보고 싶은 곳이 간송미술관이다. 하지만 그곳의 벽은 높았다. 1년에 딱 두 번만 일반에게 공개를 한다는 미술관은 간송 전형필 선생이 평생에 걸쳐 수집한 문화재와 유물 5천여 점을 보유한 국내 최고의 사립박물관이다. 그야말로 보물창고다. 그러기에 봄 가을 딱 두 번, 공개하는 시기가 되면 보물들을 보기위한 사람들의 행렬이 끝없이 이어지곤 하는 것이다. 안에 들어서기 위해 한두 시간쯤은 거뜬히 기다려야할 인내심 없이는 보물들을 만날 수 없는 곳이다.
그러기에 간송미술관은 신비스러움이다. 아마도 나뿐만이 아니라 그곳에 보관되어 있는 보물들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누구나 그런 느낌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런 뭇 사람들의 관심을 알기라도 하듯 그곳 연구원으로 있는 탁현규님은 우리의 궁금증을 풀어주며 미술관의 그림들을 읽어주는 책을 지었다.
<그림소담>이란 제목으로 간송미술관의 아름다운 그림이라는 부제로 펴 낸 책이다. 7개의 주제로 30점의 그림을 선정하여 작가의 탁월한 지식과 혜안을 지닌 마음으로 읽어주는 책이다. 그림 속에 그려진 한 획의 붓질도 놓치지 아니하며 설명해주고, 그 의미를 이야기 해준다. 이야기에 골몰하며 그 내용을 찾아보며 책을, 아니 그림을 읽어가노라니 한 여름에 사계절을 느끼며 앉아서 피서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작가는 한 시대의 미술은 그 시대 문화의 꽃이라 했다. 당대의 미감과 창의성이 고스란히 담긴 옛 그림에서 세월의 명화를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이에 내 개인적인 견해를 곁들인다면 그 시대에 그들은 무엇을 배우고 익혔던가를 살펴보고서 그림을 바라본다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해 본다.
먼 훗날 우리가 살았던 시절의 그림들을 대하는 후손들 역시 우리 시대의 문화적 배경을 알아야 이해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에서다. 한 예로 나는 지금도 비디오예술가인 백남준씨의 작품을 난해하다 여긴다. 하물며 시대적 배경을 모르는 후손들은 더 할 나위가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후손들은 우리시대의 티비와 컴퓨터를 이해하고 알아야 어느 정도 백남준씨의 예술세계를 알지 않을까 하는 어쭙잖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하여 지금 간송미술관의 그림들을 읽기 전, 시와 그림을 동일 시 했던 그 시절의 환경을 조금이나마 알고 있다면 쉽게 빨리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나만의 느낌을 조심스레 피력해 본다.
1 주제 : 꽃
글 읽다 남은 겨를
정선
비단에 채색, 24.0*16.8cm
노년의 선비가 청화백자 화분에 활짝 핀 연보랏빛 작약 한 송이에 마음을 빼앗겼단다.
꽃으로 5월 하순임을 알 수 있고
선비들은 글과 그림과 함께 노닐어도 언제나 현실을 알았단다.
우리 선조들은 글 읽다 바라보는 꽃 한 송이에서도 우주를 보았으며 이는
이성과 감성이 조화를 이루는 독서인이 걷는 삶이고 걸어야 할 삶이다 라고
작가는 그림을 읽어준다.
2 주제 : 보름달
어부 노인이 취해 잠들다.
김득신
종이에 담채, 22.4*26.6cm
두 어부가 고기잡이 나섰다가 술잔을 나누었다.
한 사람은 잠이 들고, 말 상대를 잃은 한 사람은 풍경에 마음을 맡긴듯 하단다.
청풍명월과 함께하는 안빈낙도의 삶!
어부들은 술 취했다 말하지 않았지만
그림 속의 달이 있어 달밤인줄 알고,
술병을 보고 취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단다.
3 주제 : 해돋이
문암에서 일출을 보다
정선
비단에 담채, 33.0*25.5cm
이 그림을 보고 나는 그만 혼자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실제로 있는 풍경이지만 지금은 이북에 속한 땅이라니 더욱 궁금한데...
문처럼 세워진 돌문 앞 너럭바위 위에
갓 쓴 선비들이 앉아 있다. 일출을 보기 위함이다.
어쩜, 예나 지금이나 일출을 보기위한 간절함은 변하지 않은 듯싶다
저 위쪽 봉우리의 바위들도 사람형상을 하고서 해를 바라보고 있다
문득 지난 5월 설악산 대청봉에서의 일출을 생각나게 한다.
4 주제 : 봄바람
소년이 꽃을 꺾다.
신윤복
종이에 담채, 28.2*35.6cm
이 주제에서 신윤복의 그림이 빠질 수 없다.
기암괴석과 기화요초로 마당을 장식한 거부의 저택을 거닐던
주인과 시녀는 우연히 만난다.
어색한 척 몸을 빼려는 시녀와 주인님 사이에 흐르는 춘정이 그림 안에 가득하단다.
우람한 바위와 연분홍 꽃을 피운 나무, 여인과 남성
이에 음과 양의 조화를 읽어내는 작가다.
또한 혜원 신윤복의 화폭은 언제나 박진감이 넘친다고 일러준다.
5 주제 : 푸른솔
선동이 약을 달이다.
이인문
종이에 담채, 30.8*41.5cm
그림속의 소나무는 참으로 위엄이 서려 있다.
화가는 활달한 솜씨로 긋고 찍고 물들여
수 백 년 풍상을 겪은 노송의 정신까지 그렸다고 읽어준다.
솔가지 뒤의 여백은 지나가는 바람에 솔향이 퍼지듯 하다고 하면서
이 그림안에 솔향기 약탕향기가 하나로 스며있다고 한다.
나는 그저 코를 한번 길게 들여마셔보지만...
내가 소나무를 그리는 기법은 무식하게도 “우산형” 이다.
6 주제 : 독락
척재가 시를 짓다.
정선
비단에 채색, 28.5*33.0cm
“천지 사이에 다시 어떠한 즐거움이 이것을(혼자 노는 즐거움)을
대신할 만한 것이 있는지 모르겠다” 라고 했듯
세상 사람 모두는 혼자 있을 때의 편안함을 추구하고, 즐기나 보다.
혼자 조용히 지내는 선비에게
임금님께만 바치는 웅어 열 마리를 꿰어 들고 찾아온 이는 누구의 심부름일까.
소재의 아름다움, 우정, 일상생활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이런 그림이 나올 수 있었던 시대를 문화의 절정기라 작가는 일러준다.
7 주제 : 풍류
<9280>
맑은 강에서 뱃놀이하다
신윤복
종이에 담채, 28.2*35.6cm
작은 배에 여덟 명이나 올랐지만 배가 좁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니
이것이야말로 완벽한 구성이구나! 라고 작가는 말하였다.
또한 여덟 명 모두 자세, 표정이 다 다르니 심심하지 않다고 읽어준다.
화선지 위에서 바위 위에 글씨를 썼지만
실제 바위에 글씨를 새긴 듯 여겨지며 시와 그림의 혼연일체임을 일깨워 준다.
여인들의 웃음소리. 악기소리, 물소리, 갈매기 울음소리까지 함께
가슴으로 들어오는 그림을 마주하면
100년 후 사람들도 이 그림으로 더위를 이기리라고 읽어준다.
책 내용의 주제별 그림 한 점씩만 발췌하여, 내가 또 다시 대신하여 읽어보았다.
그림은 모두 인터넷 검색에서 차용 한 것임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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