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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따라 발길따라

정자를 따라 선비문화를 엿보다

물소리~~^ 2014. 8. 12. 12:33

 

 

 

 

 

용추계곡을 벗어나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일부러 고속도로가 아닌 26번 국도를 택했다. 안의면에서 육십령으로 가는 국도를 따라 가노라면 화림계곡이 빚어내는 풍광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해발 1,508m의 국립공원 남덕유산에서 발원한 금천(남강상류)은 깊게 혹은 넓은 계곡을 자유자재로 흘러내리며 함양을 지나 낙동강으로 합류한다. 그에 기이한 바위를 만나 담 . 소를 이루는 풍경을 옛 선비들이 가만 놓아두질 않았다. 풍경 좋은 곳에 정자를 지어 친구들을 초대하여 시를 짓기도, 낚시를 즐기며 시대의 문화를 꽃 피운 현장이다.

 

 

▲ 집으로 돌아가는 길, 빨간색 길을 따라 육십령을 넘는다.

 

 

▲ 화림동 계곡을 따라 가노라니 멀리 황석산 줄기가 선연히 보인다.

 

 

 

 

<농월정(弄月亭)>

처음 닿은 곳이 농월정이었다. 하지만 정자는 없고 자리만 남았다. 2003년에 방화로 인해 소실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자가 없다하여 그 자리를 지나칠 수 없는 법, 이제는 유원지가 되어 각종 음식점과 사람들로 난리를 치루고 있었다.

 

흐르는 물이 달을 희롱한다는 농월정(弄月亭)의 주변은 온통 너럭바위들로 가득 차 있다. 어느 곳에 앉아도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물을 희롱(?)할 수 있음으로 절로 어린아이 마음이 될 것이니 그 누구도 나무랄 수 없는, 이곳을 차지하고 놀아야하는 공범이 되기도 한다.

 

농월정이 세워졌던 2,000평이 넘는 암반은 ‘달바위’라는 이름으로 불렀단다. 소나무숲을 등지고 있는 이 달바위는 예조참판을 지낸, 임진왜란 때 진주대첩에서 전사한 이 고장 출신 박명부가 즐겨 찾았던 곳으로 이곳에 그의 후손들이 세운 정자가 농월정이다. 달을 희롱한다! 얼마나 멋진 풍류인가. 자리만 남았지만 그 풍류는 영원히 전해지니 먼 길을 찾아온 나를 희롱하는 그 무엇은 무엇일까.

 

 

▲ 농월정교에서 바라본 계곡

 

 

▲ 선비들의 풍류를 알고 있는 소나무들도 멋지게 자라고 있다.

 

 

 

 

▲ 현수막 앞의 너럭바위가 달바위, 농월정이 있던 자리라는데...

 

▲ 펜화가 김영택님이 펜으로 그린 농월정

불 타기 전에 정자를 그린 그림

내가 지니고 있는 책 펜화그림기행에서 참고함

 

 

<동호정(東湖亭)>

농월정을 뒤로하고 자동차로 막 걸음을 뗐나 싶은 거리쯤에 동호정의 안내판이 보인다. 차를 멈추고 안내판을 따라 내려서니 우선은 계곡을 거의 다 차지하다시피 한 어마어마한 암반이 눈에 들어온다. ‘차일암’ 이라는 이름을 가졌단다. 눈을 둘러보니 동호정 정자가 눈에 들어온다. 어쩜 고색창연한 정자다. 누각에 오르는 계단은 통나무를 깎아 계단을 만들었다. 병산서원의 만세루를 오르는 계단형식이다. 살금살금 계단을 올라 누각에 드니 차일암을 에워싸고 도는 물빛이 시심을 일으키기에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신비하다.

 

동호정은 조선 선조 때의 성리학자인 동호 장만리(章萬里)의 공을 추모하여 1890년경 후손들이 중심이 되어 건립한 정자라 한다. 선생은 조선시대 임진왜란 당시 선조임금을 등에 업고 신의주까지 피란시킨 공을 세웠으며 관직에서 물러난 뒤, 이곳에서 유영하던 곳이란다. 동호정은 호반의 자연 암반위에 건립된 정자로 화림동 계곡의 정자 중 가장 크고 화려하다.

 

 

 

 

▲ 동호정, 그리고 정자 아래로 보이는 차일암

 

 

▲ 과연 몇 십명은 족히 앉아서 놀 수 있겠다.

 

 

▲ 동호정 측면

 

 

 

▲ 동호정 누각 천장 내부

 

 

▲ 동호정 오르는 계단

거대한 코끼리의 발 같다.

 

 

<군자정(君子亭)>

또다시 길을 따라 달린다. 이곳은 차가 아닌 천천히 걸으면서 계곡 가에 세워진 정자를 하나씩 만나는 재미를 누려야 하는 곳인 것 같다. 빗방울 한 두 방울씩 떨어지더니 금세 굵은 빗줄기로 변한다. 또 하나의 정자 군자정이 눈에 들어온다. 거센 빗줄기였지만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우산을 받쳐 들고 내렸다.

 

계곡 물살이 빨라진다. 피서 온 사람들이 급히 계곡에서 올라오더니 정자 안으로 올라간다. 작은 정자지만 오랜 세월동안 지치지 않는 마음으로 사람들을 수용하고 있다. 군자정은 암반위에 지으면서 주춧돌을 사용하지 않고 지은 정자란다. 화림동 계곡에 남아 있는 정자 세 곳(동호정, 군자정, 거연정) 중에서 가장 낡았지만 건축물 자체의 비례로는 가장 예쁜 정자라고 한다.

 

군자정은 1802년 조선 초기의 성리학자 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 1450~1504) 선생을 기념하기 위해 세웠다. 정여창 선생은 김굉필, 정여창, 조광조, 이언적, 이황 등과 함께 조선 성리학의 5현이라 불리는 분이다. 군자정이 있는 새들(봉전)마을은 정여창 선생의 처가가 있던 마을로, 정여창이 처가에 왔을 때에는 현재 군자정이 세워진 유영대에 자주 들렀다 한다.

 

 

 

▲ 영귀대

저 위쪽에 영귀정이라는 정자가 있으며

정여창선생이 자주 머물렀던 곳이란다.

 

 

▲ 물살이 빨라진다.

 

▲ 군자정 역시 암반위에 세운 정자로 주춧돌이 없이 지은 정자

 

 

▲ 군자정 천정에 걸린 시구 

 

 

▲ 군자정으로 비를 피해 사람들이 오르고 있다.

 

 

 

<거연정(居然亭)>

동호정을 뒤로하고 거연정을 찾아 나섰다. 비가 많이 내려 차에 올라타 내비에게 안내요청을 하니 우리를 좁은 이차선 도로에서 빙빙 돌게 한다. 왜 이러지? 하는 의문은 금방 풀렸다. 군자정에서 올라와 예쁜 다리를 건너니 거연정을 마주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아~ 예전 우리 아이들 어렸을 적에 육십령을 넘어와 이곳에 왔었던 기억이 그제야 화들짝 깨어난다. 그 때에는 뜻 모른 채 거연정에 앉아 놀다 갔던 것이다.

 

거연정은 1613년에 중추부사를 지낸 전시숙의 공적을 기리기 위하여 후손들이 건립한 정자로 지금 수리 중인 듯, 어지럽게 공사막들이 올라 있다. 2년 전 태풍 루사 때 불어난 계곡물이 마루까지 차올랐지만 다행히 유실되지 않았단다. 그 이유는 정자 주위의 바위들이 거센 물살을 막아주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라는데.. 과연 바위들의 우람함이 예사롭지 않다 이름처럼 자연 속에서 살고 싶어 하는 옛 선비의 마음들이 빗줄기를 타고 내리며 내 마음을 적신다.

 

◆ 공사중인 거연정

 

 

 

빗줄기가 사정없이 굵어진다. 화림계곡을 뒤로하고 육십령을 향해 달리는데 앞이 보이지 않는다. 육십령에서 잠깐 쉬며 전망대에 오르니 비구름 저 너머는 비가 내리지 않는 듯싶다. 가만히 서서 바라보노라니 마음이 차분해진다. 지금 이 순간 나 역시 빗속에 갇힌 자연에 머물고 있음이니 풍류를 읊을 만하건만 멍한 마음만이 그득하다. 부족한 생활 속에서도 자연을 벗하며 내실을 채우는데 부족함이 없었던 우리의 훌륭한 선조들의 정신을 기리고 싶다.

 

 

▲육십령 전망대에서 바라보다

 

 

▲ 백두대간 육십령이라는 글씨도 비를 맞는다

저 고개를 경계로 경상남도와 전라북도가 나누어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