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책읽기
정역 : - 한말의 종교사상가 김항(金恒)이 제시한 역사상(易思想) -
이상하게도 난 한여름에 집안을 뒤집는 청소를 한번씩 하곤 한다. 아마도 정리정돈이 잘 되어야 더위를 비킬 수 있다는 나만의 신념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지난 일요일 그렇게 집안 정리를 하던 중, 책꽂이에서 아주 묵은 책을 발견했다. 2000년? 그즈음 한창 역사소설에 빠져 지낸 시절이었나 보다. 정약용, 한명회, 세종대왕, 토정비결, 열하일기, 등 많은 책을 읽었고 또 읽으려고 구입해 놓은 책들이 다수 있었다. 그 후 집 리모델링하면서 많은 책을 버리기도 하고, 기증을 하기도 했다. 그 와중에 읽지 않았다고 챙겨 둔 책 ‘정역’을 발견하였던 것이다.
집안 정리를 마치고 주중 틈틈이 읽기 시작했다. 책을 구입한 시기에 읽었다면 아마도 신비스러움에 깊이 빠져 들었을 것인데, 이제 읽으려니 조금은 과장된 이야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인터넷이라는 문명에 길들여져 많은 정보를 접하기도 하였지만, 내 의식은 좀 더 어른스러워졌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역사를 돌아보는 이야기이기에 몰두하여 읽은 것 같다.
정역은 한말의 종교사상가 김항(金恒)이 제시한 역사상(易思想)이다. 김항은 정역이라는 사상을 통하여 사회적 위기상황에서 한민족 중심의 종교사상을 마련하여 질곡(桎梏) 속에 빠져 있는 민중들에게 사회변혁의 당위성에 대한 이론적 기반을 제공함으로써 구원의 희망을 안겨주려 완성한 민족 고유의 역학 책이다. - 인터넷인용 -
작가 이재운은 정역을 소설의 중심주제로 잡아 그 의의를 실천함으로 위태한 나라와 민족을 구원하고자하는 내용으로 펼쳐나간다.
정역의 저자 김항은 이 소설 속에서도 정역을 짓고, 그를 깨우쳐주고자 하는 선사로 나온다. 그에 주인공인 무사는 조선말의 혼탁한 사회와 하늘과 땅을 개벽할 수 있는, 정역을 전달 받을 수 있는 신인(神人)을 찾아 나선다. 무사는 그 신인을 보호하고 지키는 의무를 지닌 신장이기 때문이다. 책 말미에 비범한 사람으로 드러나는 강사옥이라는 선비가 신인임이 밝혀진다. 김항, 무사, 강사옥의 중심인물을 두고, 무사가 사랑한 여진족 여인 ‘나모하린’ 과 구한말 혼란을 틈타 조선을 유린하고자하는 일본인 첩자들이 등장한다.
참으로 답답한 조선정국, 그에 날뛰는 탐관오리들의 등살에 무참히 짓밟히는 농민들을 살리고자 일어나는 동학혁명의 대단원도 이 소설에서 읽혀진다. 얼마 전 추월산의 보리암 절벽에서 순절한 의병 김덕령장군의 부인 비를 보고난 후, 동학의 의미를 새롭게 깊이 각인하고 있던 터, 동학에 대한 문장 하나에도 깊은 관심을 놓지 못하고 읽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그 당시 우리나라의 국운의 비참함에 속상하였고, 이런 틈을 타 침략의 속셈을 가지고 주도면밀하게 접근해오는 일본인들의 잔인함에 울분을 참지 못했다. 조선의 혈기를 누르고자 명산 곳곳에 철심을 박고, 신인이 나타나서 정역대로 실천하려한다는 소문에 정역과 신인을 찾아 나서며 무참히 사람들을 헤치는 그들의 간악함에 새삼 분노로 치닫는다.
그 첩자의 우두머리인 이시다! 무사의 스승으로 나타나 교묘히 무사를 이용하지만 결국 무사의 손에 죽임을 당하니 얼마나 통쾌하던지… 그곳도 우리지방 모악산에서다. 아마도 전주가 동학혁명의 집결지로서 혁명의 불꽃을 찬란하게 피운 곳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부각시켰음을 새삼 느껴보았다. 신인이 나타나시어 새 세상을 열어주신다는 신념만으로 일본군과 맨몸으로 맞섰던 순진한 우리의 조상님들~~ 동학농민군이 쓰러진 후 조선은 일제식민지로 전락했지만 이 책에서는 그저 신인이 나타나심으로 끝을 맺는다. 희망을 남기고 있다.
단순히 역사의 한 페이지에 꽂혀 있을 이야기를 정역이라는 신비감으로 펼쳐가는 이야기 속에서 많은 역사적 사실들을 새롭게 인식한 책읽기였다. 작가는 소설이 끝났다하여 새로운 세계가 열림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했다. 이제 시작되는 것이라 했다. 2000년대는 새 하늘이 열리는 상생의 시대라 했다. 그 비밀이 정역에 있다하였다. 어쩌면 요즈음의 정국에 역사인식의 중요성과 정역의 의미를 대입해 보고 싶기도 하였으니 이는 나 하나만의 바람은 아닐 것이다. 무더위를 잊어가며 한번쯤 읽을 만한 책이라 감히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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