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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맘의 글방

비워낸다는 것은 나누는 것이다.

물소리~~^ 2014. 7. 14. 22:59

 

 

 

 

예쁜 길의 변신

 

 

장마라 하기도 하고, 너구리라는 태풍이 지나가는 길을 알려주는 기상캐스터들의 톤 높은 목소리를 며칠째 들으며 보냈지만 정작 비다운 비는 내리지 않고 지났다. 가뭄이라고들 하니 비가 더 내렸으면... 하는 마음 간절했는데 간밤에 비가 내렸다. 잠결에 들리는 빗소리가 어찌나 좋은지 행여 내가 눈을 뜨면 비가 개일까 봐 눈을 감고 빗소리를 들었다. 새벽 산행을 하지 못해도 좋으니 많이 내렸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잠결에서도 되 뇌였다.

 

산행시간에 맞추어 눈을 뜨니 비는 그쳐 있었다. 비 맞은 산길을 만나고 싶어 얼른 차림을 하고 나섰다. 산 초입에 이르니 풀냄새가 훅! 끼쳐온다. 비를 맞아서일까? 코를 벌름거리며 오솔길을 걷는데 이상하게도 오솔길이 더 넓어진 것 같은 낯설음이다. 아! 하루 사이에 오솔길가의 잡풀들을 말끔히 정리해 놓았던 것이다.

 

왕성하게 자라는 잡목과 풀들로 인하여 오솔길은 점점 좁아지고, 오가는 사람들의 옷깃을, 또는 살갗을 스치기도 하니 불편하기도한 요즈음이다. 市에서는 이런 불편을 덜어주기 위해 공공요원들을 동원하여 간벌과 잡초제거를 해 주었던 것이다. 그렇게 상처를 받은 풀들이 비에 젖으며 아프다고 하소연이라도 하는 양 진한 향을 뿜어내고 있었다. 아까웠다.

 

고마리, 주름조개풀, 닭의장풀들이 조금 있으면 제 모습들을 여한 없이 보여줄 텐데 그냥 꺾여 졌다. 터널을 이룰 듯 자라던 국수나무도 오솔길 안쪽 깊숙이까지 머리 깎이듯 깎여 나갔다. 며칠 전 간간이 산등성의 잡목들은 베어진지 오래인지 바짝 마른 채 누워있음을 보았는데, 오늘 이렇게 내 옷깃을 스치던 잡풀들의 스러짐이 비 온 후의 산길을 더욱 애상스럽게 한다.

 

문득 서로를 위해 잘한 일이지 싶다. 말 못하는 식물들도 자신들이 살아가기 위해 치열한 자리다툼을 하고 있단다. 그 와중에 조금 못나고 덜 자란 나무나 풀들은 제 뜻을 펴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었을 것이니 이 틈에 어쩌면 제 자리를 조금 차지할 수도 있겠다. 빽빽하게 웃자람을 비록 사람의 힘을 빌려 베어내면서 자신이 지녔던 것들을 비워내었다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진다. 비워줌으로 나약했던 것들에 희망을 나누어주고 스스로도 더 튼실하게 자랄 수 있을 것이다. 비워야 채울 수 있다는 이치를 챙겨보는 내 마음도 흡족하다.

 

넓어진 오솔길의 모습을 폰카로 한방 찍고 나니 메시지 도착음이 울린다. 기본제공 데이터를 모두 사용하였으니 이후부터는 요금이 부과된다고 친절히도 알려준다. 어쩌나, 내 전화기도 그동안 겁 없이 보는 대로 사진을 찍으며 욕심을 부리니 넘치려 하나보다. 하여 폰에 저장된 사진들을 살펴보니 참 많기도 하다. 근 2,000여장이 저장되어 있었던 것이다. 오래된 것, 찍고 나서 별 도움이 안 되었던 사진들을 지워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쓱쓱 지워버리는 용기보다도 사진을 바라보며 이런 모습 다시 보기 어렵지 않을까? 언제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손길이 자꾸만 더뎌진다. 그러면서도 또 까맣게 잊고 지낼 것이 뻔하다. 그런데도 버리고 지우는 것에 조바심을 내고 있다. 그나마 버릴 수 있는 용기를 부추기는 것은 지워도 금전적인 낭비가 없다는 사실이다.

 

예전의 필름카메라는 일단 현상을 해 보고나서야 사진의 좋고 나쁨을 선별할 수 있었으니 얼마나 속상해하고 아까워했던가. 그나마 다행이다 라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삭제버튼을 누르는 내 손길이 빨라지고 있다. 사진저장 공간은 점점 넓어지고 있다. 비우고 버림으로 공간이 많아지니 괜히 마음이 든든해진다. 앞으로 채우고 싶은 것을 더 많이 채울 수 있을 테니까. 텅 빈 공간에서 충만함을 얻는다는 역설은 쉽게 삭제할 수 없는 진리인가 보다.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관악기들도 속이 텅 비어있다. 산 초입에서 곧게 자라는 대나무들도 속은 비어있으면서도 곧게 자람은 뭇 사람들에게 본이 되고 있다. 악기는 아름다운 소리를 나누어주고 대나무는 곧은 마음을 나누어준다. 무성하게 잘 자라던 잡풀들의 없어짐에 서운함 보다 다가올 계절에 무언가 다른 더 예쁜 모습을 채워줄 나눔의 빈자리이기에 촉촉하게 넓어진 길이 마냥 좋기만 하다. 나도 참 속없는 사람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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