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난다. 본인이 충분히 할 수 있는 시간의 일인데도 나보고 하라한다. 시간을 쪼개야 하는 상황이지만 거절도 못하고 내 속만 부글부글 끓는다. 속으로 투덜대면서도 일을 마치고 나니 조금은 허탈해진다. 이왕 이렇게 할 것인데 속을 끓이며 투덜댄 내가 속 좁아 보이기도 하다. 일 때문에 퇴근 시간이 늦어졌지만 어차피 늦은 것, 순리대로 따라 하자며 저녁준비를 위해 싱크대 앞에 섰다.
수도꼭지를 틀면서 무심코 작은 창 너머를 바라보니 아, 뒷산의 풍경이 창을 밀치며 나에게 달려든다. 푸르름으로 치장한 야트막한 산이 정겨워보이니 마음이 스르르 녹아내린다. 얼마나 평화스러운 풍경인가. 내 날마다 저기 보이는 나무 곁을 지나는데… 저 나무는 속 좁게 투덜댄 내 마음을 읽었을까. 하여 나를 달래주려고 저리도 늠름한 모습으로 내 창을 기웃거리고 있는 것 아닐까. 나는 어느새 새벽길을 따라 걸으며 저들과 함께하고 있다.
내 부엌의 작은 창은 내 마음의 곳간이다. 겨울날의 이른 시간대 유리창은 어둠으로 스스로를 칠하여 거울이 된다. 그 거울에 내 모습을 비춰 보기를 좋아하는 나이다. 거울답지 않은 거울은 내 모습을 조금 흐릿하게 보여준다. 그 흐릿함은 나를 더 예쁘게 보여준다. 봄이면 잎보다 꽃을 먼저 피우는 나무들의 자태를 볼 수 있어 반갑다. 여름이면 짙은 초록의 나뭇잎들을 바람에 나부끼며 흔들리는 모습에 발장단을 맞추기도 한다. 가을이면 서서히 물들어가는 나무들에게서 자연의 순리를 읽기도 한다.
가끔은 그 창가에 작은 화병을 놓고 꼭 한 두 송이 꽃을 꽂기도 한다. 작은 창은 요란스러움보다는 소박함을 더 좋아하는 것 같으니 많이 꽂을 수가 없다. 이런 나의 생각이 작은 창의 진짜 마음일까. 나 혼자만의 생각이 행여 창의 마음에 거슬리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이 작은 창을 통해 무수한 생각들을 엮어 나가곤 한다. 싱크대 앞에서 마주한 창이 이보다 더 크고 요란스러웠다면 나는 이런 아늑함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작고 소담하기에 아기자기함으로 꾸며 놓고 싶고 창 크기만큼만 밖을 바라볼 수 있는 다감함에 더욱 정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작은 공간에서 무한함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은 진실이다. 고택이나 옛 성인들이 살았던 집의 방들을 만나노라면 제일 먼저 드는 느낌은 참 작다 라는 것이다. 이렇게 작은 곳에서 그런 훌륭한 책들을 짓고 발명을 하고 글을 쓸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르면 그저 놀랍기만 하다.
혼자만의 상상으로 온 우주를 만드는 일, 꼭 거대하고 화려한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더 좁은 공간에서 거대한 공간을 꿈꾸는 상상력으로 실제보다 훨씬 더 아름답고 훌륭한 공간을 지어내듯, 내 생각의 틀을 쉽게 뛰어 넘을 수 있음은 작은 공간이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작은 창을 통해 보이는 풍경에 내 속 좁은 분한 마음을 털어냈다. 저들은 나에게 분함을 누그러뜨리라고 말하지 않았다. 다만 제 빛으로 내 마음을 온화하게 해 주었을 뿐이다. 작은 창을 통해 들어온 풍경은 내 온 마음을 차지할 만큼 컸다. 내 분수만큼의 작은 곳일망정 내 분수를 뛰어넘는 큰 역량을 발휘하는 큰 공간으로 만들어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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