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의 촉촉한 기운이 느껴졌지만 비가 내리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창문을 드르륵 열었다. 유난히 큰 드르륵 소리가 잔잔함 봄 새벽을 방해하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든다. 제법 굵은 비가 대지를 적시고 있으니 얼른 우산을 챙겨들고 나섰다. 언제나 그렇지만 집안을 나서자마자 훅 끼쳐오는 상큼한 바람은 폐부 깊숙이 스며들며 정신을 바짝 치켜 세워준다. 참 기분 좋은 느낌이다.
봄비가 내리니 이제 완연한 봄이겠다. 비 내리는 날이 좋아, 마다않고 나서는 나를 반기기라도 하듯 호랑지빠귀새가 긴 울음을 보내온다. 저 새도 나와 같이 봄비가 좋은가 보다. 맨 몸으로 비를 흠뻑 맞으면서 저렇게 노래 부르고 있으니 조심조심 다가가 친구해 줘야겠다. 오솔길에 들어서니 부풀대로 부푼 발밑의 흙들도 마냥 부드러움으로 내 발을 받아준다.
곳곳의 진달래가 새벽어둠에 희뿌옇게 빛을 발한다. 어쩜! 어제까지만 해도 저리 환한 빛은 아닌데 벌써 저렇게 꽃잎을 피웠나 보다. 이 비가 멈추면 더욱 예쁜 모습으로 활짝 피겠지. 이 봄을 살아가는 모든 생명들은 자신을 내 보이는데 주저함이 없다. 긴 겨울동안 무엇에 힘입어 저토록 야무진 모습들을 잃지 않고 지켜낼 수 있었을까.
한없는 고요함속에서 움틀 거리는 봄기운을 마음껏 느끼며 발맘발맘 걷다보니 어느새 회귀점이다. 늘 하던 대로 곧게 잘 자란 소나무에 기대어 내 몸을 풀어 본다. 오늘은 우산을 내려 놓아야만 손이 자유롭다. 무심코 산등성에 우산을 내려놓고 나니 아, 내 우산이 낙엽들에게 비를 가려주는 것이었다. 그 모습이 한 편의 스냅사진처럼 정다워 보인다. 밤 새 비에 젖은 낙엽들에 측은함이 여겨진다.
얼마나 추웠을까. 그렇구나. 자신은 저토록 비와 눈에 추웠지만 자신의 몸으로 온 산의 이불이 되어주며 긴 겨울을 지냈구나. 온갖 싹들과 나무의 발을 따듯하게 감싸주며 다가올 봄에 대비해 엄마처럼 그들을 모두 감싸 준 낙엽의 초라함에 마음이 찡해 온다. 낙엽이 있었기에 지금 제비꽃, 양지꽃, 노루귀, 봄까치꽃, 광대나물도.. 꽃을 피울 수 있었나 보다. 나무들은 낙엽이 이불 되어 따뜻함으로 덥혀진 땅 속에 뿌리를 박고 겨울을 지탱해 낼 수 있었나 보다.
바람에 힘없이 떨어지는 낙엽을 부정적인 의미로 풍자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낙엽은 당당하다. 설령 실의에 빠진 낙엽신세가 되었다 해도 낙담하지 않는다고 일러준다. 자신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흔들림 없이 새로움을 찾아 나서야 한다고 일러 준다. 낙엽은 그렇게 비록 떨어진 몸이지만 온 산의 생명들에게 겨울을 나는 힘을 길러주고 있었다.
새싹의 올라옴도, 꽃을 피우는 일도, 나무들이 부지런히 물올림을 할 수 있음도 긴 겨울을 온전하게 보낼 수 있어야 가능한 일이라고, 자신의 체온을 나눠 주었나 보다. 바람 앞에 낙엽처럼 처량한 신세였지만 새로움을 찾아 자신을 지켜 나갈 수 있었다고 젖은 목소리로 일러준다.
고요함 가득한 봄비 내리는 봄 산의 낙엽은 차분하게 젖어들며 나를 깨우치게 한다. 차마 우산을 들어내기 어려웠지만 낙엽은 얼른 나의 새로움을 찾아 따듯함으로 보살펴 주라며 등 떠민다. 그렇다. 봄비 속으로 빨려 들어간 나에게도 슬며시 봄이 피어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봄을 맞아 새롭게 내가 해야 하는 일과 나에게 엮어진 모든 것들에 따듯한 마음으로 임해야겠다.
청솔모도 봄 숲의 기운을 즐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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