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주어진 모든 것을 사랑으로!!

내맘의 글방

드라마를 보며

물소리~~^ 2014. 3. 11. 22:35

 

 

 

 

옹기종기 정다운 노루귀

 

 

 

   나는 TV 드라마를 거의 시청하지 않는다. 내 나름의 일을 가지고 있기에 집에 있을 때는 집안일에 시간을 할애하느라 오랜 시간 앉아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끼리끼리 모여 대화를 나눌 때에도 공통적으로 드라마 이야기를 하곤 하는데 나는 그저 가만히 듣기만 할 뿐이다. 하지만 딱히 불편하다거나 불만을 가진 적은 없었다.

 

어느 토요일 늦은 시간에 우연히 TV 앞에 앉았고 무심히 리모콘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한 드라마에 채널을 고정시키고 보게 되었다. 무엇 때문인지 여자주인공과 그녀의 남편이 어디 별장 같은 곳으로 피신해 갔던 장면이었다. 내용도 모른 채 여자가 남편에게 퍽이나 시큰둥하게 대하는 모습을 보면서 관심을 기울였던 것 같다.

 

‘세 번 결혼하는 여자’ 라는 드라마의 제목도 후에서야 알게 되었다. 중독성이 있는 것일까. 한 번 보게 되니 다음이 궁금해지면서 계속 그 시간대에 TV앞에 앉아 있곤 하는 나를 보고 남편은 웬일이냐며 일부러 시간을 챙겨주기도 한다. 몇 번을 거듭해서 보다보니 드라마의 구성이 나름대로 그려진다.

 

여자주인공의 현재 시댁은 굉장한 부잣집이다. 으리으리한 저택과 주인에 충성하는 집사들의 판에 박은 듯싶은 행동들에는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거리감을 느꼈다. 큰 저택에는 적막함만 가득하니 집안을 채우고 있는 공기마저도 긴장감에 팽팽하게 부풀어지면서 답답함에 금방이라도 터질듯 싶었다.

 

꼬마주인공 슬기네 집은 아마도 신흥부자인 듯싶었다. 물불 가리지 않고 내 것 챙기기는 마치 고성으로만 해야 이룰 수 있었나 보다.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면서 내지르는 소리에 내 방의 TV가 쭉쭉 찢어져 나갈 것 만 같다.

 

여자주인공의 친정이자 슬기의 외갓집의 장면을 대 할 때면 난 이상하게도 티티카카 호수의 섬위에 갈대 집을 짓고 사는 원주민들이 떠오르곤 한다. 물에 잠긴 갈대들이 썩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매년 새로운 갈대를 깔아주며 살아가는 집. 물 위에서 출렁이지만도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편안한 표정들이 참 마음 진한 인상으로 남아 있었는데 슬기의 외갓집이 나오면 자꾸 그곳이 오버랩 되면서 마음을 짠하게 한다.

 

여자주인공은 어쩌면 자신을 찌르는, 사랑이란 미명의 포장지에 싸인 날카로운 창끝을 이리저리 피해 살아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날카로움 속에서도 마음을 걸어 둘 곳은 있었다. 드라마를 보면서 조마조마한 마음을 나도 모르게 풀어지게 하는 요소들이다.

 

늘 염주알을 굴리며 나긋나긋한 말로 여주인공을 감싸주는 으리으리한 집의 시이모님, 밥 먹는 것을 최고로 여기며 궁시렁궁시렁 할 말 다하는 슬기네의 임실댁, 어딘가 모자란 듯 실실 웃어가며 오냐오냐하는 친정집의 어머니… 드라마의 묘미이자 진수라 여겨지는 이들의 둥금이 없었다면 아마도 자꾸 보고 싶게 하는 드라마의 유혹은 없었을 것이다.

 

특히나 임실댁의 능청스러움은 이 드라마의 백미다. 금방이라도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아 내 마음은 바짝 긴장을 하건만 그녀는 거침없이 기어이 제 할 말 다 하고 만다. 어눌하지만 결코 그릇되지 않은 진솔함이 있는 그녀의 말을 들을 때면 한 순간씩 후련해짐을 느끼곤 한다.

 

하지만 이들이 지닌 둥금은 어찌 하루 이틀에 이루어졌을까. 바닷가의 몽돌이 셀 수없이 많은 시간 동안 거친 파도에 씻기어 만들어 졌듯, 긴 삶의 여정 속에서 수없이 채인 날카로움을 마음의 정으로 쪼고쪼으며 터득한 지혜의 소산이었을 것이라 믿는다.

 

주역은 아니지만 주역이상의 역할로 드라마의 흥미를 유발하는 주역 같은 조연들은 어쩜 우리 삶 속의 주인공들이지 싶다. 내 비록 주역이 아닌 조역의 삶을 살아간다 해도 나의 역할로 내 주위의 모든 것들이 더욱 빛나 보인다면 얼마나 보람된 일일까.

 

작가는 미리 이런 복선을 만들어 놓고 글을 써 나가는 것일까. 작가의 의중을 읽어 내는 일도 책을 읽는 참된 의미일 텐데… 작가의 의중과는 전혀 다른 나의 이 어설픈 드라마 읽기가 망상이 아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