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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맘의 글방

달빛에 마음을 물들이는 길

물소리~~^ 2014. 2. 16. 22:01

 

 

 

 

 

 

 

   보름을 하루 넘겼을 뿐인 새벽달은 여전히 부푼 몸을 겨워하며 서쪽하늘에 기우 듯 떠있다. 스스로 지닌 밝음이 부담스러웠을까. 짙게 드리운 구름사이로 제 빛을 가리고 있었다. 구름은 숨겨든 달빛을 제 몸에 뿌린 듯 부서지고 있으니 참으로 은은한 새벽길이다.

 

환함으로 눈이 부신 달빛보다는 오늘처럼 은은함으로 빛나는 달빛이 더욱 정겹다. 한지로 만든 갓을 씌운 전등불빛처럼 안온함을 안겨준다. 은은함과 안온함을 안겨주는 달빛은 뭇 사람들에게 시심을 불러내게 하기도 하고, 아무것도 아닌 일에도 괜한 낭만적 마음을 갖게 하기도 한다.

 

새벽에 달을 만날 수 있는 보름부터 그믐까지의 산책길은 그야말로 문탠(Moontan Road) 길이다. 태양으로 피부를 태우는 것이 아닌 달빛으로 마음을 물들이는 길인 것이다. 어디 나 뿐일까. 이 숲의 모든 나무들과 풀 그리고 새와 미물 들, 그들 곁을 스치는 바람 한 줄기, 그 무엇이라도 마음껏 문탠을 하며 마음을 살찌우고 있을 것이다.

 

아직은 웅크리고 싶은 새벽공기에 소나무들은 조용히 옹송거리며 서있고 그 사이를 지나는 바람은 마냥 조심스럽다. 달빛으로 부드러워진 바람결이 스칠 때 소나무들은 살짝 흔들리며 소리를 낸다. 음악처럼 들리는 소리는 악보에 옮길 수 없는 가락이다. 옮길 수 없어 알 수 없는 가락이지만 참으로 듣기 좋은 소리이다. 이 또한 문탠한 마음만이 알 수 있는 가락이다.

 

내 인기척에 놀라 잠에서 깨어난 작은 새 한 마리의 날개 짓이 조심스럽다. 내 저를 방해할 마음이 없음을 알았을까. 낮게 지저귀는 소리가 나를 향해 말 하는 것 같다. 하지만 난 그 말을 알아들을 수 없다. 저들과 나는 남남일 뿐이니 그들의 남남지성(喃喃之聲)을 알아들을 수 없다. 그래도 지금 순간만큼은 새와 나는 똑같은 달빛을 누리고 있지 않은가. 모르는 것도 서로 아는 척 할 수 있는 그런 공범의 우리다.

 

지금 발아래 땅 밑에서는 봄이 되면 싹 틔울 새싹들이 새벽잠을 깨어 달빛을 바라보며 제 몸을 키우고 있을 것이다. 언제쯤 나가면 되겠느냐고 아마도 달에게 말 걸어보고 있을 것이다. 달은 그윽한 눈길로 그들을 내려다보며 조금 더 기다리라고 한다. 아마도 이번 그믐이 지나면 살짝 내밀어도 될 것 같다며 동안 열심히 문탠을 하라며 여한 없이 빛을 내려주고 있다.

 

문탠으로 튼실한 몸을 만들어 돋아나는 새싹들은 얼마나 야무진 모습일까. 달빛아래 목청 가다듬은 새들은 얼마나 고운 목소리로 지저귈까. 달빛 물들은 바람결에 작곡한 가락을 머금은 무성한 소나무 잎들은 한여름의 폭우에도 멋지게 연주하며 이겨내겠지.

 

온 마음을 달빛에 물들이며 걷는 나의 문탠 길, 이 시간이 참으로 소중하다. 이 길에 서는 순간, 오늘 같은 달빛을 만나면 내 마음은 금세 달빛으로 물들고 만다. 온 몸을 달빛으로 샤워하며 걷노라면 내 마음은 한지 갓을 씌운 불빛처럼 한없이 여려져 있다. 여린 마음 안으로 쇄락한 정신을 안고 돌아올 수 있는 이 길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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