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가야산에서 내려왔지만 곱게 물든 단풍을 만나지 못했다. 산행의 충만함으로 서운함을 조금 덜 수 있었지만 막바지 단풍을 불사르고 있을 두륜산으로 선회했다. 대흥사 주변에서 일박을 한 후, 일요일 이른 시간부터 대흥사로 향했다. 간밤에 살짝 내린 비로인한 촉촉한 기운이 더 없는 가을 분위기를 안겨주었다. 그에 물든 나뭇잎들이 더욱 차분히 제 색을 띠고 있으니 참으로 아름다웠다.
대부분 오래된 나무들일까. 멋진 자태가 연륜을 말해주고 있다. 동백이 유명하다 했는데 과연 길옆의 동백나무들을 가지치기를 하고 있는지, 싱싱한 가지들이 숲을 이루며 널브러져 있기도 하였다. 아까웠다. 하지만 지나친 몸 부피는 자칫 영양 빈곤으로 이어져 꽃이 튼실하지 않을 수 있으니 저렇게 정리를 해 주어야 좋을 것이다.
정말 대흥사 일주문(해탈문)까지의 숲길은 막바지 가을 의식을 치르느라 여염이 없었다. 눈길 한 번 돌리지 않고 제 일에 열심인 모습만큼 예쁜 모습을 없을 것이다. 지금 이 대흥사의 나무들이 그러하다. 이제 이곳을 지나면 바다로 가야하는 단풍, 바다까지 물들일 수는 없지 않은가. 그에 마지막 정열을 다하는 단풍을 바라보노라니 모두들 나를 위해 기다려 준 것 같아 참으로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