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록담
나는 지금 일어났다 앉았다 할 적마다 아이고 하는 비명소리를 시도 때도 없이 지르고 있다. 대퇴부와 종아리 부근의 근육이 당기며 너무 아프기 때문이다. 한라산이 나에게 준 선물이다. 결혼기념일을 기하여 우리는 한라산등반을 계획하였다. 토요일과 일요일을 틈타 다녀와야 하는 빡빡한 일정으로 토요일 아침 6시에 출발하여 월요일 새벽 2시에 돌아오는 일정 이였다. e 코레일 에서 테마여행으로 기획한 등반으로 우리 일행은 64명 이었다.
한라산 산행은 해발 750m 고지에 위치한 성판악휴게소부터 시작하였다. 우리가 가는 코스는 성판악에서 백록담까지 9.6km, 다시 백록담에서 관음사주차장까지 8.7km의 코스라고 한다. 남편은 관음사코스가 난코스라 하며 굉장히 걱정을 하는데 선택의 순간은 이미 지나버렸으니 우리는 묵묵히 따라야만 했다. 출발시간은 오전 6시 40분 아직은 컴컴한 시간이라 헤드랜턴 등의 불빛을 비추며 우리는 한라산 품속으로 들어갔다. 우리가 일찍 출발한 이유는 배를 타고 다시 돌아와야 하는 시간에 맞추어야 하기도 하지만 진달래대피소에 도착시간이 12시 30분을 넘기면 정상으로 들어갈 수 없고 다시 되 돌아 내려와야 한다고 한다. 그만큼 높은 산이라 하산 시 쉬 어두워지는 겨울에는 길을 잃기 쉽기 때문이란다. 어둠 속에 우뚝 서있는 나무들의 울창함이 끝없이 이어진다. 간혹 들리는 까마귀 울음소리에 등골이 오싹해진다.
사라악 약수
어제 오후에 제주에 도착하니 멀리 눈을 하얗게 쓰고 있는 한라산의 위용이 보인다. 이렇게 날씨가 좋은 일도 드물다고 한다. 구름보다도 위에 솟은 한라산의 백록담을 금방이라도 만날 듯 설레는 마음이었는데 정상을 오르는 길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기침감기가 거의 끝날 무렵이어서 다시 재발하지 않을까하는 염려도 있었지만 목안이 건조해질 때마다 축이려 준비한 물이 부족하였다. 얼마를 걸었을까 한라산에 오직 하나밖에 없다는 사라악 약수터를 만났다. 반가운 마음이었으나 다시는 물을 만날 수 없다하니 걱정이다. 앞으로 걸어야 할 길이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사라악 약수터를 지나면서부터 경사가 가파르게 이어지면서 구상나무숲이 보인다. 이 구상나무는 오직 우리 한국에서만 자생하는 희귀종으로 해발 1,000m 이상에서만 자란다고 하니 그 기개가 대단하다. 그들의 숨결이 내 목을 훨씬 부드럽게 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진달래대피소 (하늘이 너무 맑아 눈이 부셨다)
갑자기 평평한 들판처럼 보이는 곳이 나타난다. 키 큰 나무숲을 벗어나서인지 넓은 평원의 흰 눈 속에 푹 묻혀있는 진달래나무들의 키 작은 모습이 참 앙증맞게 보인다. 일명 진달래대피소에 우리는 도착했다. 해발 1,500m라는 표지를 보았다. 봄에 진달래 필 무렵 이곳의 정경이 상상되어 황홀하다. 먼저 도착한 등산객들은 컵라면 등을 먹으며 잠시 다리를 쉼 하기도 한다. 백록담에 이르는 길을 바라보니 아담한 오솔길 같다. 바로 손에 잡힐 듯 보이는 눈 쌓인 정상이 이곳에서 거의 두 시간을 또 걸어야 한단다.
백록담능선
점점 숨이 가빨라지니 힘들다. 나보다 더 힘들어하는 남편은 자꾸 쉬어가자고도 하고 나보고 먼저 올라가라고도 하지만 나는 앞서가다 서서 기다리다 천천히 걷기도 하는 리듬이 내 페이스가 아닌 고로 자꾸 더 힘들어진다. 드디어 1,900m에 이른다. 그 지점부터는 나무도 없는 완전한 돌산이다. 용암이 분출되어 흘러내린 것이 그대로 굳어 버렸기에 나무가 살 수 없는 곳 이란다. 그 위를 눈이 하얗게 덮고 있으니 그 곡선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르겠다.
한라산 아래에 떠있는 구름
잠깐 눈을 들어보니 아!! 구름이 내 발 아래로 펼쳐져 있다. 그야말로 사바가 발아래에 있었다. 한라산이 거닐고 있는 크고 작은 오름(기생화산)들이 정상을 에워싸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정상의 백록담을 만나기 전 주위의 풍경들이 먼저 우리를 붙잡으며 놓아주지 않는다. 길게 이어진 나무계단을 올라 드디어 정상에 발을 딛자말자 남편을 앞질러 나는 백록담을 바라보려고 뛰어갔다. 눈 덮인 백록담! 참으로 고요하다. 신선이 타고 다녔다는 백록이 살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그래서일까 흰 눈에 덮인 백록담이 참으로 멋스러워 보임과 동시에 저 안에는 아직도 끓고 있는 용암이 감추어져 있을지도 모른다는 느낌에 순간 마음이 경건해 진다. 그 모든 것을 텅 비워버린 듯 고요한 모습 내 마음을 그곳에 풍덩 빠뜨렸다 건져내 보고 싶었다.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은 정확히 1,933m라고 한다. 저쪽 조금 높은 곳의 서쪽능이 1,950m라 하는데 분화구를 두르는 그쪽을 자연휴식제로 묶어 놓았기에 이쪽 동능에서 만족할 수밖에 없다 한다
한라산 정상 표지목(뒤는 백록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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