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주어진 모든 것을 사랑으로!!

마음따라 발길따라

문화답사기(도솔암 마애불)

물소리~~^ 2009. 9. 21. 20:02

 

 

 

 

도솔암 마애불

 

 

   간밤 내내 빗방울이 베란다 창을 두드린다. 마치 내 마음을 두드리고 있는 양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새벽녘에 눈을 뜨자마자 밖을 내다보았다.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빗줄기는 많이 가늘어진 것 같다. 갈 수 있을까? 7시면 출발을 해야 하는데 일정이 취소된다고 연락이라도 온다면 나갔다 되돌아와야 하는 상황이기에 두서없이 망설여지는 마음이다.


식구들에게는 진즉 양해를 구해 놓았기에 커피포트에 끓는 물을 담아 챙긴 후, 조용히 집을 나섰다. 늘 짜여진 일상을 돌아야하는 내 모습을 위안이라도 해 주는 듯 날이 개이면서 더 없이 좋은 날로 변해지고 있으니 나는 참 축복받은 사람이라는 기분이 충천된다. 벗을 만나기로 한 장소에 도착하여 벗과 함께 박물관을 향해 달렸다.


얼마 전, 전주국립박물관에서 문화유산다시보기라는 테마로 우리지역의 유적지답사를 실시하고 있으며 9월의 답사지역은 고창이라는 기사를 보았다. 가까이 있으면서도 심드렁한 관심을 가졌던 곳이었는데 2007년 6월에 미국에 거주하시는 좋은세상님께서 한국에 오셨을 때 고인돌군을 같이 방문했던 이유로 나에게는 더없이 각별한 장소로 기억에 남아 있는 곳이다. 그래서일까 와락 반가움에 벗과 함께 참가신청을 했고 오늘이 바로 그 날이다.


고창지역은 서해안 고속도로를 뚫는 과정에서 많은 유물과 유적이 발견되면서부터 학계에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고 한다. 은희경의 소설을 읽으면서 이 지역을 비산비야라 일컫는다는 것을 알았다. 즉 산도 아니고 들도 아닌 지역에 분포된 낮은 구릉들은 실제로 거대한 봉분임을 발견하였다고 한다. 지금 발굴 작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는 고분도 오늘 방문코스에 들어있었다. 우리의 답사지역은 무장읍성→읍내오거리당산→고창읍성, 신재효고택→고인돌박물관, 김정회고택→봉덕리 고분군→도솔암 마애불의 코스로 모두 6곳이었다.


오늘 답사 코스 중 나의 가장 깊은 관심이 가는 곳은 도솔암 마애불 코스였다. 내 들뜸을 잠재우기라도 하듯 마지막 코스에 있었으니 참 다행한 마음이었다. 선운사에는 종종 찾아왔었지만 도솔암은 여태 가지 못한 곳이었고 풍문으로 들은 마애불에 대한 호기심은 늘 마음 한쪽에 자리하고 있었던 터였다. 선운사 매표소에서 4km를 걸어 올라야 하는, 걷는 데에만 왕복 2시간여 코스의 오름길을 우리는 박물관답사팀이라는 명분에 탑승하여 차로 오를 수 있었다.


쉽게 오를 수 있는 편안함은, 바쁠 것 없는 걸음을 옮기며 이제 막 피어나는 꽃무릇의 환상적인 모습과 함께 할 수 없음을 아쉽게 하였다. 울창한 나무아래 피어나는 꽃무릇들이 더없이 반가웠다. 나무사이로 뚫고 들어온 햇살에 보이는 꽃의 자태가 참으로 처연하다. 꽃무릇이 사찰주변에 많이 피는 까닭은 꽃무릇의 성분을 이용하여 절에 그려지는 탱화의 질감을 보존하고 변질을 막는데 사용하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도솔암을 찾아가는 길은 숲 속의 길이었다. 갖가지 나무들이 피어낸 잎들은 하늘을 덮었고 그 그늘아래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평화로움으로 고즈넉하였다. 수령 600년이 되었다는 장사송(長沙松)이라 부르는 소나무를 만났고 신라 진흥왕이 와서 수도를 했다는 설화가 얽힌 진흥굴을 지났다. 우리는 점점 도솔암으로 가까이 다가가고 있었다. 작은 주차장에 도착하여 처음 맞닥뜨린 거대한 암벽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감흥을 절로 일으키는 비경이었다.


해설자를 따라 오르면서 이곳인가 저곳인가 기웃거리던 어느 순간 숨이 멎었다. 칠송대라 부르는 거대한 절벽 한 면에 결가부좌한 마애불이 놀랍도록 큰 모습으로 조각되어 있었다. 나도 모르게 심호흡을 하며 합장을 하였다. 마애불을 대면하는 순간 놀라움과 신비로움이 교차하면서 또 한편 자랑스러운 마음이 일었다. 해설자의 설명에 따르면 이 절벽의 높이가 아파트 10층 높이이며 마애불은 지상 6m의 위치에서 위로 약 16m 높이로 조각되어 있다고 하였다. 우리는 설명을 들으며 그 모습을 바라보기 위해 고개를 젖혀야만 했다.


각이 진 얼굴과 앙다문 입은 그 어떤 불의를 용서하지 않을 것 같은 단호함이 있었고 처음 대면하는 순간과 달리 바라볼수록 극도로 절제된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이 마애불을 더욱 신비롭게 하는 것은 마애불의 배꼽근처에 있는 네모난 구멍으로 인한 것이다. 그 안에는 선운사를 창건한 검단선사의 비결이 숨겨져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었다고 한다. 이에 조선시대 관찰사 이서구가 이 구멍을 처음 여는 순간 벼락이 쳐서 그대로 닫았는데 거기에는 “이서구가 열었다.” 라는 글이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


그 후 동학도 손화중이 그 비결을 꺼내자 그가 왕이 될 것이라느니,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이라니 등의 소문이 무성해지면서 손화중 주변에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졌으니 비결은 비결인 모양이다. 이 비결 탈취 사건은 암울했던 시대를 극복하고 새로운 시대를 개척하기를 꿈꾸었던 민중들이 현실과 미륵에 얽힌 설화를 엮어 꾸며 냈으며 이러한 사상이 농민전쟁의 발단이 되었다고 설하는 학자들도 있다. 그 안에 무엇이 있었거나, 아니면 아무것도 없을 수 있었겠지만 그 비결 하나로 우리나라 민중의 역사에 커다란 획을 그었다고 볼 수 있는 사건이 아니었을까. 종교적인 의미보다도 역사적인 의미를 더 담고 있는 마애불! 이건 단순한 내 생각일 뿐이지만 나로서는 그런 의미가 자랑스럽다는 이유 중 하나이다.


천 년의 세월을 지켜오며 우리의 역사를 간직한 마애불은 우리들의 우왕좌왕 발걸음 속에서도 침묵으로 미소를 짓고 계실 뿐이다. 오늘 우리의 만남은 수많은 세월 속 한 점일 뿐이니 내게 주어진 일상에 충실하라고 이르시는 듯하다. 울창한 나무와 우람한 절벽사이로 하루의 해가 무심히 넘어가고 있다. 오늘 하루에도, 사람의 일생에도, 한나라의 국운에도 흥망성쇠가 점철됨을 볼 때,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음은 참으로 보람된 일임에 틀림없다. 오늘의 나를 비추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알 수 없는 비결 하나가 내 안을 흐르는 듯싶은 충만함으로 가득한 하루였다. (답사일 2009년 9월 12일)

 

 

 

 

마애불의 설명을 들으며 우리는 모두 하늘(?)을 바라보았다.

'마음따라 발길따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선비의 꽃, 산청 삼매(三梅)를 찾아서   (0) 2011.04.11
가을빛 따라 만난 백제  (0) 2010.10.12
한라산을 오르다(2)   (0) 2008.12.30
한라산을 오르다(1)   (0) 2008.12.30
태백산의 가을   (0) 2008.0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