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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따라 발길따라

배롱나무, 서원을 물들이다

물소리~~^ 2012. 8. 31. 05:42

 

 

 

병산서원을 다녀오다

 

 

 

 

그렇게 만대루를 뒤로하고 돌아서니 건물이 좌우에 동재, 서재가 있다. 학생들의 숙식소다. 그 끝 중앙에 아담한 병산서원이 있었다. 즉, 만대루, 동재, 서재, 병산서원이 사각형의 형태를 이루며 자리하고 있는 형상이었다.

 

 

 

 

병산서원은 자체에 마루와 동서 양쪽에 방을 가지고 있었고 뒷면을 향한 문 3개가 있었으니 창문으로 들어오는 뒤뜰의 풍경이 그대로 액자화 되어 마치 벽에 걸어 놓은 듯싶다. 참으로 아기자기한 공간 분할이었다. 동쪽의 방은 명성재라 하여 원장이 기거를 했고 서쪽은 경의재라 하여 교수와 유생이 기거했다고 한다.

 

 

 

 

이제 반대로 병산서원 마루에서 만대루를 바라보니 아! 그 풍경을 말해 무엇하리요. 만대루 지붕 끝으로 병산이 얹어져 있고 밑으로는 낙동강이 흐르고 있었다. 자연이 그대로 서원 안에 있음이다. 우리 조상들이 자랑스럽다. 어떤 규격화한 서원 양식이 있었겠지만 서원이 지어지는 곳의 자연을 충분히 이용한 그 안목이 존경스럽다.

 

 

 

 

전사청 출입문

 

서원은 선비정신이 깃드는 곳이기에 검소해야만 했단다. 그래서 건물에 단청을 하지 않았지만 제사를 모시는 전사청만은 단청을 하여 위상을 높였다고 한다. 병산서원 역시 전사청으로 통하는 내삼문에는 태극문양을 넣어 색칠을 해 두었다. 하지만 난 이 사원 전체가 단청을 했다고 지금 믿고 있다. 그 주인공은 배롱나무였다. 정원 곳곳에 심어진 배롱나무들은 연륜을 자랑하며 제 멋으로 꽃을 피우고 있었다. 화려한 색이면서도 소박함을 지닌 꽃이 핀 병산서원은 그대로 화원이 되고 있었다.

 

 

양반뒷간

 

 선조들의 안목에는 해학도 들어 있었다. 복례문을 따라 선 담에 작은 기와집은 무엇일까? 호기심으로 살금살금 다가가 본 나는 그만 실소를 머금고 말았다. 뒷간이었다. 양반 뒷간이란다. 한 조각의 가리개가 ‘나는 뒷간이요’ 하고 말해주고 있었다. 이 뒷간과 달리 서원 밖 인적 드문 텃밭에는 달팽이 뒷간이 있었다. 머슴뒷간이란다. 맨땅에 짚으로 지어놓고 하늘은 가리지 않았지만. 한번 휘돌려 안으로 들어간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양반은 하늘을 가렸지만 머슴은 하늘을 가리지 않았다. 어느 쪽이 더 자유로웠을까. 참 재미있는 모습이었다.

 

 

수령 380년 된 배롱나무

 

 

 

 

 

 

우연찮게 이곳을 찾았지만 진정 가장 좋은 시기에 이곳을 찾아왔음에 내심 얼마나 좋았는지… 배롱나무들은 꽃이 핀 제 가지들을 살짝살짝 치켜들고, 혹은 건물들을 감싸 안으며 단청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정말 옛것의 푸근함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모습이었다. 옛것을 새것으로, 지금의 모습으로 굳이 격상 시키지 않아도 그들의 우월성을 충분히 느낄 수 있게 해주는 배롱나무들이 오늘만큼은 일등 공신인 듯 예뻐 보인다. 사진기를 누르고 눌러도, 또 누르고 싶은 그들 모습을 뒤로하고 나오기에는 너무 아쉬움이 컸다.

 

 

서원~ 그 당시는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던 교육기관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에 교육의 내용도 좋겠지만 500여년이 지난 오늘날의 우리들은 그곳이 위치한 자리와 그 건물들의 건축미학 등을 귀감으로 삼으며 더 중요시 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이에 우리 선조들의 미적, 자연적 감각을 배우고 그들의 정신을 음미해 보는 장이 될 수 있음을 나는 기쁘게 생각한다. 언제 다시 찾아와도 지금 느껴본 옛것에 대한 푸근함, 이 벅찬 마음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2012년 8월 24일)   (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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