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문
나아가는 길의 문
정말 문 안으로 또 문이 보입니다.
한 걸음씩 나아가는 길이 진정한 학문의 길임을 현판은 말없이 말하고 있다.
광명실
진도문을 통과해 들어가면 곧바로 높다란 누각위의 건물 두 채가 좌우로 서 있다.
나는 좌우라 여겼는데 동서의 구분이란다.
이 안 건물들의 구분은 이렇게 동서로 구분하고 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책을 보관하는 서고로 선생의 친필로 쓰인 현판이라 하는데 사진을 보니
현판이 잘 보이지 않아 아쉬움이 크다.
높은 누각으로 지은 까닭은 건물의 멋짐을 위한 것이 아닌 습해를 막기 위함 이란다.
땅으로부터 올라오는 습기를 제거하기 위한 것이라니
또 한 번 경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광명실의 샛문을 타고 오른 담쟁이덩굴이 V자 모습으로 나를 환영하고 있다.
나는 이 행운을 내 것으로 가지지 않았다.
행운이 필요한 사람에게 이어지도록 속으로 기원해 보았다.
도산서원
광명실을 지나 또 하나의 문을 통과하니 드디어
도산서원이라는 현판이 크게 보이며 내 눈을 빼앗아간다.
이 현판에는 한 일화가 있다.
1575년 선조임금이 당대 최고 명필 한석봉(1543~1605)을 불렀다.
도산서원에 보낼 사액(賜額·임금이 직접 현판을 내림) 에 글씨를 쓰게 하기 위해서였다.
부르는 대로 받아만 쓰라고 했다. '원'-'서'-'산' 한석봉은 열심히 받아썼다.
마지막 글자는 '도'!
그제야 자신이 쓰는 것이 '도산서원', 퇴계 이황을 기린 서원의 현판임을 알았다.
선조는 '천하의 한석봉도 도산서원 현판이란 사실을 알면 붓이 떨려 현판을 망칠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 단어를 거꾸로 부른 것이었다.
도산서원 현판 글씨의 마지막 자가 오른쪽 위로 살짝 치켜 올라간 듯 보이는 유래라 한다.
저 글씨가 한석봉의 글씨란다.
전교당의 부속건물 동서재
도산서원의 유생들이 거처하면서 공부하던 건물
동편건물을 박약재, 서편건물의 홍의재라 하였다.
장판각
서원에서 찍어낸 목판본을 보관하던 장소
이곳에 보관된 책과 목판 등을 한국국학진흥원으로 이관하였다 한다.
도산서원상덕사부정문
이황을 모시는 사당으로 담장과 함께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전사청
향사를 지낼 때 제사를 마련해 두는 곳이다.
고직사
서원을 관리하는 수호인들의 살림집
아궁이며 문고리들 가장 서민적인 모습으로 정겨움을 자아낸 곳이다
역락서재
제자들이 세웠고 선생이 글씨를 썼다
서원의 조화로운 풍경들
옛 천원 지폐에 인쇄된 도산서원
아름답고 단아하면서도 품은 뜻이 깊은 서원은 화폐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모습이기도 하였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 서원은 오늘날의 기숙사를 겸비한 학원과 같은 곳일까? 선생을 존경하는 제자와, 제자를 양성하고자 했던 선생의 열정이 이루어낸 서원, 궁극적으로는 학문을 완성할 수 있는 서당을 원했던 서로간의 믿음에서 도출된 결과였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산길을 돌고 돌아야 만나는 서원의 위치였는데 그 당시에는 얼마나 한적하고 고요한 곳이었을까.
자연 속에서 저절로 이루어지는 학문을 완성 시킨 곳이라는 믿음이다.
선생은 이곳에서 10년을 지내며 조선 성리학의 수준을 끌어 올렸고 수많은 인재들을 길러냈다.
선생의 시후, 제자들은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서원을 세웠으니 선생의 깊은 학문과 인품을 짐작할 수 있음이다.
그런 훌륭하신 분들이 우리의 조상님이시기에 울릉도 대신 오늘 이곳을 찾은 나의 발걸음은 아주 보람된 것이었다.
'마음따라 발길따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연을 품은 병산서원 (0) | 2012.08.30 |
---|---|
청량산에서 퇴계선생을 만나다. (0) | 2012.08.28 |
도산서원! 그 깊은 아름다움 (0) | 2012.08.25 |
기이한 여행 (0) | 2012.08.25 |
언제나 맑은 자리 소쇄원이라네 (0) | 2012.08.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