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상의 여인들 / 박수근
올 가을 유난히 쓸쓸함을 많이 느낀다. 쓸쓸함은 자꾸만 말 수를 줄이고, 원래 말이 적은 나를 더욱 침잠케 하니 채워도 채운 만큼 빈 마음이 되는 공허함이 가득하다. 그렇다고 그 공허함을 누군가하고 나누고 싶지도 않다.
일요일에 습관처럼 해 내는 집안일들에 동동거리면서도 마음은 자꾸만 뒷산을 향한다. 얼른 일 마치고 이 계절 낮 산이 빚어낸 여백의 풍경을 만나고 싶어 서둘러 일을 마치니 남편은 그 틈새를 보기라도 한 듯, 불쑥 말을 꺼낸다. 전북도립미술관의 전시회에 다녀오자 한다. 처음엔 뒷산을 놓치는 것 같아 망설였지만 아, 미술관이 모악산 바로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는 생각에 얼른 튕기듯 대답하였다. 맨얼굴에 립스틱을 한 번 쓱 문지르고 가벼운 차림으로 나섰다. 바람이 제법 차갑다.
나는 예술가들을 천재라 생각해 왔다. 그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음악가들은 음악가대로 화가들은 화가대로 그들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표현함은 물론, 자신들의 생각까지도 음으로 그림으로 표현해 내고 있음은 참으로 경이롭다. 음악은 어쩌다 노래라도 따라 부르곤 하니 조금 더 앎이 있다고 할까? 하지만 나는 그림에는 애초부터 제로의 소질을 타고났기에 화가들의 그림이나,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들은 보면 경외감마저 든다. 그런 까닭으로 그림을 더 알고 싶어 하고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림, 아니 미술과 조금이라도 친해보고자 전시회도 다니고 책도 많이 보았다. 하지만 언제나 수박 겉핥기식 눈요기밖에 되지 않았다. 그나마 옛 그림 읽기의 책들을 통해 그림 속 이야기들을 하나 둘씩 알아가는 재미를 만났으니 그중 다행이랄까.
내가 이번 전시회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는 박수근화가의 그림이 전시된다 하였기 때문이다. 일찍이 박완서님의 등단작인 '나목' 에서 박수근화가에 대한 이야기를 알기시작하면서부터 조금 관심을 가지게 된 이래, 한 번씩 기회가 닿으면 그 관심의 끈을 놓치지 않곤 한다. 지지리도 가난하게 살아 온 그의 삶은 그대로 문학이 되고, 그림이 되어 우리에게 전달되는 듯싶으니 일종의 연민의 감정일 수도 있겠지만, 그의 독특한 마티에르화법의 질감은 짠한 정감을 불러주기 때문이다.
전시회의 제목을 도종환시인의 시에서 따왔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는 정말 화가들의 아픈 삶을 빗댄 적절한 표현이 아닐까. 그림에서 인생을 배우고 삶을 알아가기도 한다고 한다. 그림을 바라보며 꼭 작가의 의도를 읽지 못해도 좋을 것이다. 그림을 감상하면서 나만의 생각을 키울 수 있다면 창조적이지 않을까. 우리의 천재적 화가들이 역사상 시대적 격동, 혹은 그에서 빚어진 삶의 어려움의 흔들림 속에서도 이룩해낸 우리의 美術史!
더욱 꿋꿋한 꽃으로 피어나 누구나 쉽게 배우고 익힐 수 있다면 좋겠다는 작은 소망을 던져 본다.
전시회 표제
투계 / 김기창
풀은 마르고 / 김병기
항구 / 오지호
두 아이와 비둘기 / 이중섭
물방울 / 김창렬
백국 / 도상봉
소와 돼지 / 장욱진
시집가는 날 / 김기창
#. 이상 사진은 도록에 수록된 사진을 스캔한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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