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서핑을 하던 중 제목 하나에 눈길이 딱 멎는다. ‘노름마치’ 였다. 순 우리말 같기도 한데 뜻을 모르겠다. 강한 호기심으로 소개된 서문을 읽노라니 마음이 찡! 하니 울려온다. ‘놀다’의 놀음과 ‘마치다’의 마침이 결합된 말로 최고의 잽이(연주자)를 뜻하는 남사당패의 은어라고 하였다.
남사당패! 이 말을 들을 때면 난 언제나 눈이 퀭하고 야윌 대로 야윈 소녀가 눈앞에 그려지곤 한다. 무엇을 보았는지, 아니면 읽었는지의 기억은 확실치 않은데 왜 그런 모습이 떠오르는지 나도 모른다. 그냥 애잔함이 내 몸을 훑고 지나는 느낌이 드니 그 실체를 알 수 있을까하는 호기심에 바짝 몸을 당겨 앉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작가는 이 책에 실린 글들을 보도자료라 하였다. 사실에 준하여 있는 그대로를 남기는 글이기에 그럴 것이라 여긴다. 작가가 겸손을 다하여 쓴 서문이었기에 정말 그럴 것이라 여기며 읽어간 책, 이는 보물이었다. 낯설지만 어딘가 모르게 낯익은 용어들이 살갑게 다가오는 글, 작가의 해박함과 군더더기 없는 내용에 흠뻑 젖어들면서 읽었다. 이 책에 소개된 예인들도 예인들이지만 딴따라의 괴수인 작가를 만나 그들의 사무침이 절절하게 배어나오니 정말 젖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은 총 6장으로 구분하여 18명의 예인을 소개했다. 아니 소개가 아닌 우리가 몰랐던 예인들의 삶과 그분들이 지닌 예술세계를 적나라하게 보여 주고 있다. 혹자들은 우리 민족은 한과 시름의 정서를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 소개된 18명은 대부분 기녀, 무당, 광대라는 천한 삶을 살다간 사람들이었다. 이에 한 개인의 생활을 바탕으로 우리 민족의 근본적인 정서를 보여주고 있다. 예술이란 치장보다 ‘밥’에 대한 단순한 몰두가 이룬 순수한 ‘힘’ (p231)이라는 표현에 그 시대를 살아간 예인들의 모습이 저절로 그려지니 참으로 귀한 책이다.
예기(藝妓)에 장금도, 유금선, 심화영, 남무에(男舞) 문장원, 하용부, 김덕명, 득음(得音)에 정광수, 한승호, 한애순, 유랑(流浪)에 김운태, 공옥진, 강준섭, 강신(降神)에 김유갑, 이상순, 김금화, 풍류(風流)에 이윤석, 정영만, 김수악, 이렇게 18명의 예인들의 절절한 이야기지만 난 공옥진과 무녀 김금화라는 이름만 알고 있을 뿐 전혀 기억에 없는 사람들이었다.
이름 없이 살아간 사람들! 하지만 그들은 그들이 지닌 “끼”를 스스로의 몰입으로 풀어내면서도 명성에 연연해하지 않은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한 사람의 이야기를 읽고 또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읽노라면 앞사람의 이야기를 깡그리 잊어버리곤 했지만, 글 흐름의 맥은 전혀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 나가고 있었다. 그만큼 그들의 삶에는 가식이 없었고 오직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에 기쁨이 솟아나는 표현을 감추지 않았던 공통점이 있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의 가수들이 이들의 자손임을 알려주는 이야기에는 정말 피는 못 속인다는 말을 아니 할 수 없었다. 익히 알고 있어서일까. 공옥진의 이야기에 큰 감명을 받았고, 내 이름과 비슷한 무녀 김금화의 이야기를 먼저 찾아 읽기도 하였다.
과학적으로는 영(零)이지만 예술에서는 영원이 존재했다(p241)는 작가! 예인들의 삶을 찾아 그들의 정신을 이어가고자 노력하는 작가의 정신이 참 훌륭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힘은 작가의 문장력에 절로 끌려 들어감을 숨길 수 없었다. 절묘한 인용과 그 인용을 풀어내는 힘은 어쩌면 작가의 지독한 예인들에 대한 사랑의 힘이 아닐까 여긴다. 곁에 두고 자꾸 읽고 싶은 마음이 드는 책이다. 마지막 장에서까지도 책장을 덮을 수 없는 긴 여운을 안겨준 이야기책이다.
공연이 끝나고 선생의 버선을 만져보았다. 앞은 솜버선, 뒤꿈치 부분은 홑버선이었다. 순간 또 찌릿했다. 아! 이것이 고수의 비결이구나. 뒤꿈치로 딛고 설 때 살갗이 닿는지, 살이 닿는지, 뼈까지 닿는지 극히 예민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앞발은 솜버선을 신고 그 위에 겉버선을 꽉 끼게 신어 유선형의 외씨를 만들어야 한다. 치마 끝에 살짝 보여 보는 이의 마음을 흔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앞은 솜버선, 뒤는 홑버선이라는 자신만의 버선을 고안해 ‘유혹’과 ‘절제’를 한 켤레로 감당한 것이다.
마지막장, p434~435 「길속의 길, 남원 조갑녀」이야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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