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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따라 발길따라

선비의 꽃, 산청 삼매(三梅)를 찾아서

물소리~~^ 2011. 4. 11. 08:22

 

 

 

   남녘의 매화가 피었다는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꽃구름을 타고 앉은 듯 높은 톤이다. 봄이 오면 가장 먼저 꽃을 피우는 그 작은 꽃송이에서 무한한 힘을 느껴서 일까. 소박한 살림의 정갈함처럼 피어나는 매화 꽃송이들의 고요한 자태가 눈앞에서 어른거린다. 모든 나무들이 추위에 온 몸 감싸고 있을 때, 아마도 매화나무는 제 몸 안에 끈질기게 지켜 내려온 정열을 키우고 있었을 것이다. 그 깊은 정열이 추위를 아랑곳 했을까. 마음 놓고 환하게 붉고도 흰 모습으로 피어나는 모습에 선비들은 자신의 모든 기개를 걸어두고 싶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이른다. 매화를 사랑했던 시인묵객들의 마음과, 매화를 인격체로 대하며 마음 나누던 옛 선비들의 고상함을 훔쳐보고 싶음에 내 마음도 꽃구름을 타곤 한다.

 

매화의 아름다움은 늙음에 있다고 했던가. 고목위 새로 돋은 가지에서 한 두 송이 피어난 매화가 진정한 아름다움이라니… 수 백 년 전 옛 선비들이 심은 매화가 지금껏 살아 꽃피운다는 산청의 3매를 언제부터 찾아가고 싶었지만 이루지 못했다. 꽃피는 시기를 놓치거나 시간을 맞출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정 없이 주는 밥을 먹는 서자들은 늘 허기진다는 말이 있다. 고목으로 남은 매화 등걸은 얼마나 많은 정을 먹고 살았기에 그토록 오랜 세월을 견디어 냈을까.

 

지난 일요일 하루, 반복되는 일상에 반란을 일으켰다. 일상을 접고 그냥 막연하게 먼 길 따라 나선 마음을 매화의 그윽한 향으로 달래 본 하루였다. 지리산 자락을 끼고 있는 산청을 찾아가는 길은 조금은 삭막했다. 빠름을 따라 달리는 고속도로 주변은 휙휙 지나는 것들에는 아무것도 보여주기 싫다는 듯 아직은 냉랭한 분위기였다. 올 봄은 늦은 추위가 유난해서일 것이라고, 내 탓이 아닌 추위 탓으로 돌리니 저 아랫녘에서 나를 기다리는 매화는 눈 흘기며 토라진다. 고속도로를 벗어나 국도로 접어드니 풍경은 어느새 안온함으로 바뀌며 봄의 아늑함으로 맞아준다.

 

가장 먼저 원정매(元正梅)을 찾아 나섰다. 남사 예담마을의 주차장에 도착하니 고풍스런 가옥들과 정감 가득한 돌담길이 반겨준다. 담장 안 곳곳의 매화나무가 보였지만 어느 것인지 확인할 수가 없었다. 생활한복을 입고 사진기를 들고 서 있는 분이 예사롭지 않아 보여 쭈빗대며 원정매의 위치를 물었다. 아, 얼마나 친절하게 알려주시던지 이는 모두 매화 향이 건네는 그윽함 일거라는 믿음에 절로 마음이 환해진다.


 

원정매
(아래 사진은 직접 만나지 못한 원정매 사진을 인터넷에서 빌려왔습니다.)


그 집은 매화집이라는 명칭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도 진주 하씨 32대손이 살고 있다 한다. 이집은 원정공 하즙(1303 ~ 1380)이 살았던 집이다. 과거에 급제하여 높은 벼슬을 지낸 분으로 거처하던 사랑방 앞에 매화 한그루 심었는데 그 매화가 원정매라고 하였다. 벼슬이름을 붙여서 부르는 나무 이름이었다. 연륜이 700년이라 하는데 정확한 햇수는 아니고 어떠한 경우에도 650~700년 사이임은 틀림없다는 이야기다.

그 집을 찾아 나섰지만 대문이 굳게 잠겨 있었다. 아쉬움을 달랜 채 담장 밖에서 붉은 꽃을 피운 매화를 바라보다 줌으로 당겨 그 모습을 담았다. 그 시절을 이렇게 당겨서 같이 앉아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고목이 된 원줄기는 시멘트로 발라져 있었고 그 곁에서 피어난 작은 가지에 핀 붉은 매화는 마냥 싱그러워 보였다. 매화 앞 시비에는 시 한 수가 적혀 있다고 한다.


집 양지 일찍 심은 한 그루 매화

찬 겨울 꽃망울 나를 위해 열었네
밝은 창에 글 읽으며
향 피우고 앉았으니
한 점 티끌로 오는 것이 없어라

길고 긴 세월을 버텨오느라 자신의 몸을 시멘트로 발라가며 기다려 주었건만 난 짧은 일별만을 남기고 정당매를 찾아 가는 바쁜 마음을 보이고 말았다.

 


 

 

정당매

정당매(政當梅)는 지금은 석탑만 덩그러니 남아있는 신라시대의 절인 단속사터에 있는 매화나무란다. 순수한 백매화로는 우리나라의 가장 오래된 매화나무라 하였다. 고려 말 문신 통정공 강회백(1357 ~1402)은 문과에 급제 대사헌에 이르신 분이시라고 한다. 그분이 단속사에서 공부하던 시절에 심으셨다고 한다. 역시 벼슬이름을 가지고 있다. 수령 630년이라 전해진다. 뒤틀린 몸으로 힘겹게 피어난 꽃의 위엄에 그만 엄숙해지는 마음을 이기지 못하였다. 저리도 혼신의 힘을 다해 아름다움을 꽃피우고 있단 말인가. 순수한 색을 지닌 매화 꽃 잎 하나마다에 내 마음을 얹어 놓고 나를 달래고 싶은 마음이 한없다. 또한 그 분이 손수 심은 매화를 다시 찾아와 바라보며 지은 시 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우연히 옛 산을 찾아와 돌아보니
한 그루 매화향기 사원에 가득 하네
나무도 옛 주인을 능히 알아보고
은근히 눈 속에서 나를 향해 반기네

석탑 옆의 젊디나 젊은 붉은 매화의 모습이 더욱 앳돼 보이는 까닭은 고매한 나무 곁에서 자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괜히 젊은 매화에 마음 주는 척 정당매와 이별하였다.


 

 

남명매

 

다시 국도를 달리며 덕천강 줄기를 따라 가다 만난 산천재! 그곳에서 은은한 향을 뿜어내고 있는 남명매(南冥梅)를 만났다. 남명이라는 이름은 대학자이신 조식(1501 ~ 1572)선생의 호 남명을 따서 지은 이름이다. 연륜이 500년이라 한다. 평생 벼슬길에 나서지 않고 산천재를 지어놓고 후학을 가르치셨다고 하시니 그 맑은 인품이 저 매화와 닮았으리라. 산천재 앞마당에 심어진 매화를 바라보노라니 아득한 한 풍경이 눈앞을 스쳐 지난다. 방문 열어 놓고 공부를 가르치며 한 번씩 바라보는 매화의 은은함에 얼마나 정겨웠을까. 뜰 앞을 뛰노는 지금 저 아이들이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고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훈훈해지니 아이들이 더 없이 예뻐 보인다. 매화 사랑하신 조식선생님의 시 ‘설매’를 조용히 읊조려본다.

한 해가 저물어가니
홀로 지내기 어려운데
새벽부터 날 샐때까지
눈까지 내렸구나
선비집은 오래도록
외롭고 쓸쓸했는데
매화가 피어나니
다시 맑은 기운 솟아나네

매화 향을 그윽하고 은은하게 풍기는 향이라 하여 암향(暗香)이라 한다고 한다. 그 향기는 주위마저 고요함으로 잦아들게 함을 섬진강변 지리산 자락의 매화마을에 들어서서 알았다. 이토록 마음 깊이 고요함을 안겨주는 매화 향을 그 누군들 좋아하지 않을까. 아무렇게나 뻗은 가지에서 그윽한 향기를 슬쩍 품기는 모습이라니... 그를 아껴온 선비들의 굳고 맑은 정신을 함께 지니고 있어 더욱 아끼고 가까이 하고 싶은 매화임을 알겠다. 고요한 산자락에서 고독함을 즐기는 고매함은 세속의 나를 용납하지 않을 것 같다. 꽃이 아닌 적막한 아름다움을 사랑하고 기렸던 선비들을 만난 하루는 나를 다시 세워주는 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