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불재를 오르는 길목에서 산국을 만났다. 동구 밖에서 오는 사람들을 기다렸다는 듯 오솔길에 빼꼼히 얼굴 내밀고 있는 노오란 꽃이 참으로 앙증스럽다, 이 높은 곳에서 맑은 공기만으로 호흡을 해서인지 그들이 뿜어내는 향기가 더 없이 지극하다. 아, 이 내음, 900m 고지에 이르는 길 편히 가라고 향기로 우리의 피로를 풀어주는 국화, 무등산의 사절단이다. 그들의 맞이와 안내를 따라보니 어느새 장불재에 도착! 바람에 휘날리는 억새들의 춤사위가 환상적이다.
올라오면서, 지금 이글을 쓰면서 느껴오는 감정은 아마도 무등산을 정취로 따지면 장불재의 억새가 으뜸일 것 같다. 누군가가 사랑을 하다가 불이 난 곳이라 하였던가. 사랑의 열정을 품은 이곳의 억새는 가을의 정취를 느끼기에 더 없는 아름다움 이었다. 가쁜 숨을 몰고 올라온 우리들의 숨결이 바람 되어 억새를 부르니 그들이 하얗게 손짓으로 응답 하는 것 같다. 높은 곳의 억새에서는 무한한 쓸쓸함이 느껴진다. 하늘로 오르고 싶음을 이루지 못한 쓸쓸함으로 아래에서 올라오는 우리를 맞이하면서 그들은 몸짓으로 우리들의 마음 찌꺼기를 모두 뱉어 내라 이르는 듯싶다.
장불재에서 바라본 서석대(왼쪽)와 입석대(오른쪽)
너덜겅
아. 저 멀리 왼쪽의 서석대와 오른쪽의 입석대가 보인다. 우뚝한 바위기둥이었다. 우리 지나온 길에 거대한 바위를 만난 적이 없었는데 갑자기 나타나는 저 거대한 바위는?? 부드러운 흙산처럼 여겨지는데 문득 보이는 강인한 저 바위기둥은 어떤 존재란 말인가. 아니 지나오면서 충분히 예견할 수 있는 모습을 보았다. 너덜겅을 지나왔기 때문이다. 이산은 나에게 아름다운 우리말 너덜겅을 선사 했다. 너덜겅은 들판이나 산의 비탈진 계곡에 돌로 가득 차 있는 곳을 뜻하는 말이라 했다. 중간 중간 계곡을 이루고 있는 너덜겅은 저기 서 있는 입석대와 서석대를 충분히 암시해 주고 있었음에도 내 마음은 느닷없이 저들을 대하고 서 있었다. 부드러움에 강한 터치로 솟은 빼어난 암석미였다.
입석대
절묘함이었다. 어서 빨리 만나고 싶어 서둘러 오른 전망대에서 바라본 입석대! 웅장함에 표현할 수 없는 기개를 느껴본다. 무엇이 저토록 절묘함을 남겼을까. 어떤 신비함으로 저처럼 버티고 서 있는 것일까 이 산의 정기가 온통 몰려 있는 것 같았다. 실제로 바위는 철분성분을 포함하고 있다고 한다. 바위에 앉아서 수도하는 스님들의 경우, 바위가 전해주는 철분의 정기를 받으며 일체감을 이루는 마음으로 정진을 한다고 하였다. 분명 저 우람한 바위에도 알 수 없는 정기가 서려 있을 것 같다. 입석대 옆에서 자라는 참빗살나무의 빨간 열매마저 입석대의 정기를 받아 자라는 듯싶다. 전해오는 정기에 혼을 빼앗기고 좋은님들과 인증샷을 하고 서석대를 찾아 오른다.
바람이 장난이 아니다. 나는 서석대 표시석이 있는 곳이 마지막인 줄 알았다. 바람이 심해 우리 서로 말을 제대로 전 할 수 없음에 향님께서는 애달아하신다. 아래로 내려가면 서석대의 모두를 볼 수 있다 하신다. 길을 따라 내려가니 바람이 조금 잦아드는 듯싶었지만. 어림없단다. 이 좋은 비경을 그리 쉽게 만날 줄 알았더냐고 힐책하는 하늘의 꾸지람이실까. 그 강한 질책을 서석대는 병풍 되어 막아주며 우리를 맞이한다. 아, 여성적이었다. 물론 입석대와 비교해서이다. 강한 인상을 받은 입석대와 달리 부드럽게 펼쳐 놓은 인상을 받아서인지 순간적으로 여성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금방이라도 바스라 질것 같은 질감의 암석이었지만 웅장함에 한없는 든든함이 밀려온다. 바람이 심하다. 수 없는 세월을 지나오는 동안 그들 스스로 닦아온 모습에 지닌 숭고함을 가슴 가득 담아 본다. 찬바람 속에서 덜덜 떨면서 점심을 먹으며 내심 걱정했다. 누구 하나 탈이라도 나면 어떨까 싶기도 하면서 우선 나부터 먹는 것을 조심해야지 하면서 밥을 먹은 것 같았다. 우리 누구도 내려오는 동안 추위 속에서 먹은 밥으로 고생하지 않았다. 아마도 무등산이 보내주는 보이지 않는 정기가 우리를 보살펴 주었으리라 믿는다.
무등산은 어머니 산이라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우리의 어머니처럼 강함과 부드러움을 지닌 산이 있기에, 수많은 문인들과 예술인의 고장으로 거듭나고 있는 이곳이 아닌가 하는 생각은 누구나 쉽게 가져볼 수 있을 것이다. 오늘 하루 내 마음도 훨훨 날고 있었으니 나는 오늘 무등(無等)산에서 무동(舞童)을 타는 아이가 되었던 것 같다. 그것도 신나게 타고 놀았으니 재주꾼으로 변신이 될까. 작은 들뜸을 안고 내려오는 길 내내 아쉬움으로 뒤 돌아 본다. 내 처음 찾은 이 산! 내 언제 또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우리들의 아름다운 인연이 있어 아름다운 산을 만났으니 내 남은 생도 아름답게 이어지기를 간절함으로 빌어본다.
무등산에서 만난 꽃
용담꽃
정영엉겅퀴
천남성(열매)
산부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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