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을 기구하게 태어난 사람은 삶 또한 기구한 것 인지도 모르겠다.
바리는 북한의 청진에서 그나마 나은 가정환경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딸을 내리 여섯이나 낳은 어머니는 아들을 낳지 못한 죄책감으로
숲속에 버리는데 어머니를 따라 왔던 집에서 키우던 풍산개 흰둥이가
갓난아이를 데려와 품고 있는 것을 할머니가 발견하여 거두게 되었는데
버린 아이라고 '바리'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바리의 첫 세상을 만나는 일은 이렇게 버려짐부터 시작하지만
그럭저럭 넉넉한 환경과 화목함으로 그려진다.
유난히 할머니의 옛날이야기를 많이 듣게 되는데
그 이야기의 전부는 무속신화인 바리공주의 이야기였다.
유년 시절 어느 날 심하게 장질부사를 앓고 난 바리는
영혼, 귀신등과 소통하는 능력을 지니게 된다.
그런 어느 날
바리 집에 외삼촌이 찾아오면서부터 불행은 시작되는데
외삼촌의 탈남으로 당국의 멸시를 받는 식구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두만강을 건너 중국으로 건너와 오직 생존만을 위한 처절함 속에서
백두산 한 기슭에 움막을 짓고 함께 살던 중
칠성이(흰둥이 새끼), 할머니, 현이 언니의 죽음을 차례로 맞이한 후
혼자의 삶을 시작한다. 먼 친척의 도움으로 중국에서 발 마사지를 배운 후,
마사지 일을 하는데 그녀는 손님들의 발을 만지면서
그 손님의 이력을 함께 읽어내는 신통함으로 차츰 안정적 생활을 하나
주인집의 보증관계로 파산 후, 빚쟁이한테 팔려 런던으로 간다.
그 곳 런던까지의 여정은 짐승처럼 대우받으면서
이승과 저승을 넘나드는 한 달간의 배 밑바닥 생활이었다.
영국에서의 바리의 삶은
그녀의 성품과 샤먼적 역량으로 이국땅에 정착을 할 수 있었다.
18살 어린 나이로 결혼을 한 후, 아이까지 낳으나
남편의 실종과 아이의 죽음을 견뎌야 하는 고통은
또다시 그녀를 무속의 세계로 끌어 들이며 환상을 빌려 구원을 실현하려 한다.
바리는 어렸을 때부터 들어왔던 바리공주 이야기에 나오는 생명수를 찾기 위해
그녀는 온갖 고초와 고통을 몸으로 받아내며 겪어낸다.
어쩌면 그 모든 것은 지금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를 위한 것인지도 모르는 일...
작가는 생명수를 찾는 장면까지는 보여 주지 않았지만
생명수를 찾는 과정의 고통은, 생명수 한 방울씩을 주워 모으는 고통이었다.
주워 모으며 없어지고, 없어지는 생명수... 그 생명수는 진정 구원을 실현할까..
이 작품을 통해 작가는 여러 가지를 시사하고 있다.
북한사회 폐쇄성으로 인한 주민들의 고통,
있을 수 없는 국가간의 성매매와
약소국과 강대국의 양극화에 따른 무차별한 테러의 여러 시대 현상을 내려다보며
인류를 위한 생명수를 찾는 것임을 말해주고 있지만 결국 보여 주지 못한다.
작가는 어떠한 고통에 닥치더라도 세상에 대한 희망을 버려서는 안 된다며
타인을 위한 마음으로 우리 스스로의 구원이 있을 뿐이다고 암시한다.
자신의 고통으로 얻는 생명수야 말로 정말 진정한 구원을 실현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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