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주어진 모든 것을 사랑으로!!

감상문

쌍둥이별

물소리~~^ 2009. 2. 27. 08:47

 

 

 

 

 

나는 아주 특수한 목적으로 태어났다. 나는 값싼 포도주나 보름달이나 순간의 흥분에 따른 결과물이 아니었다. 어떤 과학자가 귀중한 유전 물질의 특수한 조합을 만들어내기 위해 엄마의 난자와 아빠의 정자를 연결해서 태어난 것이다. 부모님이 작은 태아인 날 선택하게 된 것은 엄밀하게 말하면 내가 케이트 언니를 살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설명했다. (p.9)

 

쌍둥이별, 이 책을 접하는 순간 555페이지에 달하는 책의 두께에 놀란다. 행간 사이사이 나를 끌어 넣으며 우리의 영원한 숙제의 답을 얻기 위해 나는 책장을 자연스럽게 넘겨 나갔다.


소방관으로 근무하는 브라이언과 전직 변호사였던 사라는 가정을 이루고 아들 제시와 딸 케이트를 둔다. 행복했던 가정은 케이티가 세 살이 되던 해에 몸의 멍 자국을 발견한 후 병원에서 백혈병이라는 진단을 받고나서 엉망이 되어버린다.


케이트를 점령하고 있는 백혈병은 백혈병 중에서도 희귀병에 속하는 전골수구백혈병이었다. 이 병은 생존율이 2 ~ 30%에 불과했다. 케이트의 오빠 제시는 조직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검사 결과를 받는다. 케이트의 부모는 그녀를 치료하기위해 완벽하게 유전자일치를 맞춤하여 안나를 낳는다. 안나는 태어나자마자 제대혈을 언니 케이트에게 이식 했는가하면 시도 때도 없이 아픈 언니를 위해 공여자림프구채취, 과립구기증, 골수기증, 말초혈액 줄기세포를 기증하였지만 그 모든 것은 당연한 것처럼 시행되었다.


안나의 개인적인 일정은 늘 언니의 급박한 상황에 취소되거나 미루어지곤 한다. 늘 병원의 호출에 대기하여야 하는 안나는 캠프도 갈 수 없으며 하고 싶은 발레도 배울 수 없다. 오빠인 제시 또한 병으로 고통 받는 동생과 그 고통을 함께 나누는 또 다른 동생을 바라보며 자신은 아무런 도움이 될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로 부모의 관심을 받을 수 없음에 그만 빈 건물에 불지르기, 마약, 담배를 아무렇지 않게 하는 비행청소년이 된다. 소방수인 아빠는 아무것도 모른 체 불을 끄기 위해 출동을 하고 제시는 멀리서 지켜보곤 한다.


이제 안나는 13살이 되었고 16살인 언니 케이트는 여러 부작용으로 인한 신장의 부실함으로 또 다시 안나의 신장을 이식 받으려 한다. 하지만 안나는 여섯 살 때 언니에게 골수이식을 해주고 아빠에게서 선물로 받은 로켓모양의 14k 목걸이를 전당포에 팔고 모아놓은 돈을 합해 136달러 87센트를 가지고 변호사사무실을 찾아간다. 안나는 이제 “내 몸의 권리를 찾기 위해 부모님을 고소하고 싶어요.”라고 변호사에게 말한다. 이제 겨우 13살인 안나는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이 책은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가족 내에 아픈 사람이 있을 경우 그 한 사람을 위해 희생되는 또 다른 가족이 있음을 알려줌과 동시에 그 상황에서 가족 간의 오해를 아이러니하게 펼쳐가고 있다. 언니를 통해서만 자신을 나타낼 수 있는 안나의 자신을 찾기 위한 아픔을 엄마인 사라가 몰랐을까? 내가 사라의 입장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딸의 고소를 맡은 변호사와 대응하기위해 엄마 사라는 전직변호사임을 상기시키면서 스스로의 변호사가 된다. 법원은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엄마의 압력을 받지 않게 하기 위해 안나와 잠시 떨어져 지내라는 명령을 사라에게 내리고 아빠 브라이언은 딸 안나를 소방서 내 사무실로 데려간다. 의외의 상황에서 가족은 이분 되고 말았다. 하지만 그들 마음속에는 가족이라는 깊은 사랑이 소리 없이 흐르고 있었다.


도덕과 윤리의 정확한 구분이 있을까? 부모라면 죽어가는 자식을 살려내고 싶은 급박한 마음의 상태에 이른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 또 다른 자식이 고통을 받는다면 부모의 마음은 어떨까? 아~~ 여기에는 정답이 있을 수 없다.


등장인물 각자 자신의 입장에서 서술하는 형식으로 전개되며 각자의 마음만을 이야기한다. 이 소설은 우리들에게 “어떻게” 라는 물음을 던져주면서 답은 아마도 각자가 찾으라고 암시하고 있는 까닭은 이 가족이 힘든 상황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그 누구의 편에서 이야기 할 수 없는 까닭이리라.


재판 마지막 날 안나는 갑자기 이 소송은 자기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라고 말한다. 언니 케이트가 죽여 달라는 부탁을 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건 안나 자신도 원한 것 이었다고 말한다. 사실 케이트는 “죽기도 싫지만 사는 것은 더욱 싫다. " 고 말하였다. 이 순간 우리는 13살 어린이에게서 환한 빛을 만난다. 안나는 단순히 자기의 이기심에서 비롯한 소송을 했던 것이 아니었다. 안나는 아픈 언니 케이트의 존엄성을 지켜주고 싶었던 것이다.


판사는 안나에게 부모와 함께 지내라고 판결한다. 단 의료처치에 대해서는 개인의 의사대로 하라는 조건이었다. 안나는 본인이 얻고자 했던 만큼 얻어 내었다. 재판을 마치고 변호사와 함게 돌아오는 길 안나는 어처구니없게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뇌사상태에 빠지고 결국 언니에게 신장이식을 하지만 그 이식은 성공적이지 못했다. 하지만 케이트는 기적적으로 회복을 하며 이것은 늘 안나가 함께하고 있음이라 생각한다. 오빠 제시 역시 탈바꿈되어 이제 오히려 마약단속반이 되어 활동한다.


과연 우리는 가족이라는 이름하에 서로 간에 얼마만큼 무거움을 떠넘기며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가족이라는 명분하에 모든 것을 감수해야한다는 묵시 속에 희생을 감수해야하는 또 다른 가족의 마음은 어떻게 헤아려야 할까… 후반부에 들어서면서 무의미한 결론으로 끝내는 책의 결말에 조금 실망했지만 소설도 어쩌면 정답을 알 수 없는 어려운 문제의 해답을 얼버무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가끔 우리 아이들에게 자신에게 부당하다고 생각되는 일을 만나거든 당당하게 네 권리를 주장하라고 말해주곤 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의미에 자꾸 저울질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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