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의 소설 개밥바라기별은 그의 자전적 성장소설이다. 작가는 자신이 겪은 사춘기 시절부터 스물한 살 무렵까지의 방황을 썼다고 하였다. 소설에서 작가는 준이로 변신한다.
준이는 군대에서 월남파병에 차출된 후 얻은 휴가를 이용해 잠시 집에 다녀가는 길에 지난 날을 회상한다. 첫사랑에게 전화를 하여 만날 약속을 하지만 눈이 많이 내려 교통 혼잡을 빚으면서 서로 어긋나 만나지 못하고 군에 복귀하는 쓸쓸한 모습으로 시작하는 글이다.
개밥바라기는 금성의 다른 이름이다. 새벽에 보면 샛별, 저녁 어스름에 보는 별은 개밥바라기별 인데 이는 식구들이 저녁밥을 다 먹고 개가 밥을 주었으면 하고 바랄 즈음에 서쪽하늘에 나타난다고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는 해질녘에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서로의 외로움을 나눌 수 있는 마음 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이런 뜻으로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 준이의 친구들은 서로에게 개밥바라기별이 되어주고 있음에 참 마음이 훈훈해 지곤 하였다.
읽는 내내 어딘가 참 많이 익숙한 풍경들에 마음이 끌리어 어느 시대인가를 유추해 본다. 준이는 한일회담 반대시위를 하다 붙잡혀 유치장 생활을 한다는 대목에서 그 시대를 짐작할 수 있었다. 한일협정을 1965년으로 기억한다면 난 초등학교 시절 일 텐데 그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준이의 학교생활이 내가 조금 후에 중고교를 다닐 시기와 별반 다름이 없었음은 그 기간 동안 우리가 살아야 했던 환경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결론이다.
준이는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가출, 무전여행, 선원생활, 일용직 노동자의 생활을 전전한다. 4.19 현장에서 총에 맞아 죽은 친구를 안고 울기도 했다. 시위의 현장에서 연행되어 들어간 유치장에서 만난 노동자를 따라 전국을 떠돌았지만 그가 채우고자하는 생에 대한 궁금증은 채울 수 없었다. 그는 “목마르고 굶주린 자의 식사처럼 맛있고 매순간이 소중한 그런 삶은 어디에 있는가.” 라고 길을 나설 때마다 묻는다고 하였다.
준이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기위해 부모들이 바라고 사회가 틀을 마련하여 교육시키는 안일한 길을 가지 않고 끊임없이 세상을 향해 나아간다. 지금 시대의 십대들이 이런 준이를 만났더라면 어쩌면 더 강한 자의식을 가지고 성장하는 계기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준이를 데리고 떠났던 노동자의 입에서 “사람은 누구나 오늘을 사는 거야” 라는 자조적인 말에 난 큰 감동을 받는다. 내가 늘 좌우명처럼 생각하는 말이 ‘오늘 하루를 열심히 살자. 오늘이 있기에 어제가 있고 내일이 있다.’ 라는 말과 통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 책을 읽은 청소년들이 준이가 한 행동들을 따라 실행할지도 모른다면서 그런 이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은 “하고 싶은 대로 하되 그 책임감을 깊이 있게 새겨야하며 즐거움 역시 동반해야한다.” 고 말한다.
작가가 그려낸 그 시절의 생활상들을 느낄 수 있어 참 아릿한 감성에 젖기도 하는 작품이다. 그 시절 누구에게나 한번쯤 방황하고 괴로워하고 상처받은 일들을 보여줌으로써 한 사람이 어떻게 성장하는지, 그리고 사람이 살아가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알려준다. 지나고 보면 참 아프고 힘들었던 시간들을 떠올리면서 웃을 수 있다는 것은 그 모든 것이 추억으로 남아있다는 것일 것이다. 유년시절의 추억들은 훗날의 삶에 큰 주춧돌이 된다는 사실을 작가는 충분히 증명해 주고 있다. 그런 추억들을 되새기면서 우리는 오늘을 살아간다. 어스름저녁에 나타나는 별이 어둠을 밝혀주는 것처럼 우리의 지난 추억은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을 비춰주는 별이다. 외로움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개밥바라기별이다.
나는 이 글을 읽는 내내 우리 아이들을 대입(代入)시키는 경험을 한다. 우리 아이 둘은 이미 제대를 했고 복학을 하여 큰 아이는 올해 마무리 단계에 들었고 작은 아이는 적응하느라 힘든 한 학기를 보내고 있는 터이다. 우리 아이들도 소설 속 준이처럼 자의식이 형성된 어른(?)일까 하는 의문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다. 우리 아이들이 잘 되기를 바란다는 명목 하에 얼마만큼 그들을 구속하고 있었던 것일까를 책을 읽는 동안 끊임없이 자문하였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했던 것은 아니고 주관을 가지고 방황하며 자신을 세워 나간 시간도 있었다고 믿는다. 그 기간 알게 모르게 눈물을 흘리며 바라본 적도 있었던 시간이 참 소중하게 생각된다. 어려운 시절의 살아가는 모습들을 떠올리며 오늘의 나를 돌아보는 참 행복한 책읽기의 시간들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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