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주어진 모든 것을 사랑으로!!

감상문

리큐에게 물어라

물소리~~^ 2010. 4. 2. 12:48

 

 

 

 

 

 

 

 

   봄비가 잔잔히 내리는 날의 공기는, 잡을 수는 없지만 느낄 수 있는 아취를 사뭇 뿜어낸다. 가늘게 느껴지는 바람결이지만, 마냥 사납게 느껴짐은 아픈 마음들에 어떠한 힘도 되어 줄 수 없는 안타까움 때문이리라. 며칠 째 읽고 있던 책을 오늘은 마무리 하리라 하는 마음으로 책을 펴고 앉았다.

 

‘리큐에게 물어라’에서 리큐(利休)는 사람이름이다. 일본의 다도(茶道) 명인을 일컫는다. 이 책에서 자주 나오는‘와비차’라고 하는 고담하면서 한가로운 정취를 느끼며 마시는 차의 정신을 정립한 인물로 알려지고 있다.

 

이야기의 시작은 당대 최대의 다인 리큐가 당대 최고의 권력자인 히데요시로부터 할복하라는 죽음을 하사 받는 날부터 시작한다. 다른 책의 전개방식과 다르게 이 날부터 과거로 되짚어 나가면서 리큐의 이야기, 히데요시와의 관계 등을 조명하며 진정한 다도는 무엇인가를 알려주고 있다.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히데요시라는 등장인물을 보고 깜짝 놀랐다. 우리의 역사와 무관하지 않는 인물이기 때문이었다. 풍신수길이라 하였던가. 우리나라를 침범한 탐욕적인 권력자였기에 내심 관심이 배가 되었다. 이 책은 분명 일본인이 쓴 소설이지만 이 권력자를 낮게 평가한다는 점이 이채로웠다. 또한 우리 조선의 여인이 연루되어 있기에 더욱 관심이 깊었다.

 

리큐가 추구했던 다도는 매우 독창적이고 절대적인 아름다움이었다. 다도의 진수는 깊은 산골 눈 속에 돋아난 풀, 그에 깃든 생명의 빛에 있다고 믿었다. 작고 동그란 동백꽃봉오리에 깃든 생명의 힘에 있다고 했다. 그 밝음과 강인한 생명력에 음미해야 할 미의 원천이 있다고 했다. 리큐는 어떻게든 그것을 형태로 나타내려고 노력해 왔다고 했다.(P163)

 

히데요시는 천하를 통일하는데 이런 리큐의 심미안으로 도움을 많이 받기도 했다. 그런데 리큐는 왜 히데요시의 미움을 받고 죽음을 명령받았는가. 히데요시는 천하를 다 잡았지만 리큐의 미의 대한 집착만큼은 따를 수 없고 잡을 수 없는 것에 늘 패배를 느끼고 있었다.

 

어느 날, 리큐의 정원에 피어있는 나팔꽃이 아름답다는 이야기를 듣고 히데요시가 찾아가자 리큐는 모든 나팔꽃을 꺾어 버리고 단 한 송이만을 남겨 놓는다. 오직 한송이 나팔꽃에 아름다움이 집중되길 원하는 마음에서이다. 또한 리큐가 애지중지하는 늘 가슴에 품고 다니는 조선제 녹유향합이 있다. 히데요시는 그걸 탐 내지만 리큐는 그것만은 안 된다며 향합에 대한 설명이나 보여주기조차 꺼려한다. 리큐의 이러한 미적 다도의 근원은 무엇인가.

 

리큐는 한 여자를 깊이 사랑하고 있었다. 조선여인이었다. 조선양가의 규수가 일본으로 팔려왔는데 그 여인을 구출하기 위해 같이 탈출을 했지만 성공하지 못해 그 여인에게 죽음을 선택하게 만들었다. 그 여인은 무궁화를 사랑했고 ‘무궁화는 하루뿐이나 스스로 영화를 이룬다' 라는 시로 답하고 죽음에 이른다.

 

리큐는 그 여인을 잊을 수 없었다. 그 여인에게 차를 한잔 마시게 하고 싶다는 일념으로 다도에 임해왔지만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다. 다만 그의 경지를 부러워 할 뿐이었다. 그 여인이 남긴 유품 조선제 녹유향합을 늘 가슴에 품고 다닌다.

 

이 책의 전체적인 주제는 다도였다. 다도라는 행위에 다소 과장된 면이 거슬리기는 했지만, 다도를 즐기기 위해 곁들어지는 공간의 장식과 다구에 진행초(眞行草)의 격을 주어 살아있는 생생함으로 찾아온 손님을 맞이하는 정신이 깃들어 있다. 진은 정격이요 초는 파격이며 행은 중간이라 하였다.

 

반듯함도 좋지만 때론 멀쩡한 다기를 깨트려 놓는 행동이 고품격이 되었다. 이 모든 행위는 마음속 깊이 살아있는 열정이 있었기에 미를 바라보는 마음의 눈이 뛰어난 것이리라. 소설속의 이야기가 다분히 픽션이랄 수 있다. 하지만 주인공이 지닌 열정과 진실한 사랑의 결과는 아름답다는 것을 충분히 알게 해 준 책이다.

 

나는 다도라는 것을 잘 알지 못한다. 다만 매일같이 커피나 차 한 잔을 분위기에 이끌려 마시면서 마음의 평온함을 느껴보는 정도이다. 어쩌면 나만의 다도일 것이다. 비록 나만의 방식으로 차를 마시지만 최소한의 정성으로 임한다면 아름다움으로 보일까. 앞으로 살아가야 할 날들에 진실과 정성을 다하는 마음을 지니고 싶다.


리큐가 지녔던 그런 아름다운 열정으로 산화한 한 사람을 뜨겁게 생각하며 잔잔한 마음으로 읽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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