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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문

팀파니 협연 - 연주회 -

물소리~~^ 2009. 11. 16. 12:24

 

 

 

 

이미지 출처 / 인터넷 검색

 

 

 

   퇴근시간이 가까워지면서 나의 망설임도 빈번해지고 있다. 강풍과 함께 닥쳐온 급작스러운 추위는 집으로 가는 길 외의 일들에 할까 말까를 저울질을 하게 만들었다. 남편은 저녁식사를 하고 온다고 기별해 주었다. 연주회에 참석하여 느긋하게 앉아 있을 수 있는 필요충분조건이 완벽하였다. 안내문을 바라보며 망설이는 이유는 연주곡에 전혀 생소한 작곡자와 곡명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자주 듣고 귀에 익숙한 곡에는 어느 정도의 내 감정을 실어 곡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낯 설은 곡에는 지루함이 앞서 선뜻 다가가기에는 용기가 필요한 것이 클래식이다. 나름, 낯선 곡들을 접하는 기회가 오면 피하지 않고 반복해서 들어보리라는 의지가 있었기에 안내문에 선곡된 곡의 내용을 보면서 더욱 망설이고 있었던 것이다.

 

전화벨이 울려 받아보니 남편이다. 저녁식사자리가 술자리가 될 것 같아 차를 시민문화회관에 주차해 놓을 테니 가져가라한다. 주차 장소가 엉뚱해서 어디냐고 재차 물었다. 남편은 이미 내가 연주회에 갈 것이라는 예상을 하고 그곳에 주차를 해 놓았으니 연주회가 끝나면 그 차를 가지고 집에 가라 한다. 내 원 참, 나의 망설임에 확실하게 종지부를 찍어주었으니 더 이상 미적거릴 수가 없었다.

 

오늘 나에게 낯설음으로 관심을 가지게 된 곡은 2번째로 연주하는 테리헨의 ‘팀파니 협주곡 34’ 이다. 5개의 팀파니가 사용된다는 곡인데 타악기 연주자 최경환교수의 협연이라고 하였다. 팀파니의 모습은 우리의 장고를 가운데를 잘라 세워놓은 모습이다. 음의 강약을 조절하는 다른 타악기와는 달리 유일하게 음의 고저를 조절할 수 있는 타악기이다. 인간의 영혼을 울리는 팀파니의 소리는 남성다움과 박력을 느끼게 한다. 뛰어난 팀파니 주자가 없으면 훌륭한 오케스트라가 될 수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중요한 악기라 한다.

 

팀파니에 대한 일화가 있다. 놀람교향곡은 하이든이 작곡하였다. 그 당시에는 사롱음악회라고 하였던가? 귀족들이 모여 있는 싸롱에 찾아가 소수의 사람들을 앉혀놓고 연주회를 하곤 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연주를 감상하는 우아한 귀족부인들이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졸고 있으니 그들을 놀라게 하여 잠을 깨우기 위해 하이든은 강렬한 팀파니소리를 동원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오늘 팀파니는 나에게 어떻게 다가올지 사뭇 기대가 된다.

 

첫 번째 연주곡이 끝나자 단 위가 약간 소란스럽다. 두 번째 연주를 위한 팀파니 5개를 배치하기 위해서였다. 한 사람이 어떻게 5개를 왕복하며 연주를 할까 몹시 궁금해지는 마음이다. 곧 연주가 시작됨을 알림과 동시에 지휘자와 나이 지긋한 백발의 연주자가 박수를 받으며 등장하였다. 팀파니 사이에 서서 북채를 들고 잠깐 음을 고른 후, 지휘자에게 사인을 보내자 연주가 시작되었다. 알 수 없는 곡의 흐름이기에 팀파니 연주자의 모습만을 지켜보았다. 시종일관 연주를 하는 것은 아니었다. 아마도 팀파니악기가 연주되어야 하는 곳에서만 북채를 들고 팀파니를 두들기는 것 같다.

 

북채를 3개 혹은 5개를 들고 높고 낮게, 빠르고 느리게 움직이면서 발로는 어느새 페달을 밟으며 완벽한 음으로 교향악단과 조화를 이루어 내고 있었다. 노련한 연주자의 모습에서 화려한 경력만큼이나 다양한 몸짓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어느 한 순간 나의 눈길을 잡아끄는 모습이 있었으니 팀파니를 연주하다 끝내야 할 경우, 연주자는 팀파니 테 부분을 문지르거나 살짝 눌러주는 것이었다. 연주자의 모습만을 눈여겨 바라보아서인지 그 행위가 무엇인지를 금방 알아 차렸다. 팀파니의 여음(餘音)을 없애주기 위한 동작이었던 것이다.

 

북은 울림이 있는 음을 낸다. 팀파니 역시 북의 일종이기에 울리면 여음이 남아 잔잔히 퍼지기 마련이다. 물론 여음도 충분히 아름답고 음미해볼 수 있는 귀한 음이다. 하지만 여러 악기가 함께 연주되어야 할 경우 자신의 음을 지키는 순간은 짧고 여음은 불필요하다. 팀파니의 경우 여음이 4분 음표 길이만큼을 가진다 한다. 이미 다른 악기들이 연주를 시작했는데 팀파니의 여음이 계속 남아있다면 전체적인 음악의 효과는 전혀 다르게 나올 수 있을 것이다. 그 방해적인 요소를 없애주기 위해 연주자는 얼른 팀파니를 살짝 눌러주었고 그러면 팀파니는 음을 뚝 멈추곤 했던 것이다. 내 마음은 어느새 팀파니의 울음과 울음을 멈추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때론 내 마음의 팀파니연주자가 되고 싶다. 어느 순간 격하게 흐르는 감정을 꾹 눌러 잡아주고 싶다. 알 수 없는 마음의 흐름을 지그시 눌러 조절해 주고 싶다. 여러 감정들이 어울려야 할 경우, 내 불필요한 마음의 찌꺼기를 살짝 자를 수 있는 그런 아름다운 행동을 할 수 있다면 좋겠다. 어쩌면 우리의 삶에는 이런 변주의 테크닉이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지켜 나가야 할 삶의 주제는 변함없이 지키며, 그 삶을 이렇게도 저렇게도 치장하여 최고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면 행복한 삶이 될 수 있지 않겠는가.

 

연주회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직도 내 귀에는 팀파니의 여음이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사거리 교차로에서 신호대기를 하던 중 갑자기 핸들이 팀파니로 보인다. 브레이크 페달을 밟고 있는 발이 팀파니 페달을 밟은 모습으로 바꾸니 난 영락없는 팀파니 연주자가 되었다. 내 마음의 여음을 없애보고 싶었다. 난 핸들을 손바닥으로 지그시 눌러 한 바퀴를 돌렸다. 갑자기 빵~~ 하는 경적소리에 난 그만 놀라고 말았으니! 조용히 신호대기하던 옆 차량들에게 그만 놀람교향곡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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