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주어진 모든 것을 사랑으로!!

감상문

촐라체

물소리~~^ 2010. 12. 21. 08:47

 

 

 

 

 

 

 

   매일 뒷산을 산책 겸 오르면서 좋아하게 된 산, 아무리 작은 산일지라도 무수한 생명을 품고 있으면서도 언제나 묵묵히 침묵을 지키는 존재라고 생각해 왔다. 이 작은, 한정된 경험은 언제나 산이 주는 신비함에 관심을 갖게 하였기에 이 책의 내용이 어떻게 전개되는지 궁금하였다. 촐라체, 촐라체, 지금 무엇을 생각하시는지요?

 

산, 아니 봉우리 이름이었다. 히말라야 에베레스트에 있는 6440m 설산 봉우리 이름이다. 촐라체는 '호수에 비친 검은 산'이라는 뜻이라 한다. 이 촐라체 북벽은 수직고만 2천여 미터에 달하는 고난도 빙벽으로 지금까지 등정에 성공한 팀은 1995년 프링스 팀이 유일하다고 한다.

 

몇 년 전, 실제로 촐라체 북벽에 올랐던 인물 박정헌과 최강식을 모델로 하여 두 사람이 그곳을 오르면서 겪은 조난과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다. 읽기 시작한 초반에는 알 수 없는 산악용어를 확인하느라 뒤 부록을 열어보는 수고로움이 있었지만, 중반부터는 술술 넘어 가면서 토요일 한 나절 만에 읽기를 마쳤다. 그만큼 어렵고 위험한 산의 등반에 따른 혹독함에 긴장감을 늦출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마지막 장을 덮고 눈을 드니 비스듬하게 유리창 안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노랗게 보였다. 긴장감에 따른 안도감에서 오는 나른함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촐라체는 어쩌면 우리 인생의 그 모든 것인지도 모른다. 그냥 바라볼 적에는 위엄이 있고 멋져 보임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동경이 된다. 하지만 그 산은 호락호락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 정상을 밟기까지의 걸어가야 하는 험난함과 어려움, 보이지 않는 복병들이 곳곳에 숨어 있음을 상기시켜 준다고 믿었다. 그것은 곧 인간이 걸어가야 하는 삶의 험난한 길임을 암시한다. 인생여정이 6박 7일간이라는 제한된 시간 속에서 강렬하게 전개된다.

 

등반을 같이하는 두 형제 상민과 영교 중, 형 상민은 일찍이 어머니를 잃는다. 그와 아버지를 남겨두고 어머니가 다른 남자와 (영교의 아버지) 삶을 살면서 형 상민의 내면에 그늘을 던져 주었다. 그 둘은 아버지가 다른 형제로 깊은 애증을 주고받는다. 그들은 보이지 않는 인연의 고리가 내려준 내면의 그늘을 잊고자, 또는 이겨 내고자 그 어려운 등반을 결정했다. 함께 등반하면서도 서로는 어머니에 대한 생각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그들은 하나의 밧줄에 연결하여 등반을 한다. 사람인연이란 결국은 다 스쳐 지나가는 것이면서도 하나의 밧줄처럼 이어져 오고 있음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사투 끝에 정상에 올랐지만 보이는 것은 허공 밖에 없었다. 정상은 모든 것의 시작점이고 귀결점이라고 단정한다. 허공밖에 없는 정상을 뒤로하고 오르기보다 더 어려운 하산 길에서 동생이 그만 크레바스에 추락하고 만다. 그 찰라, 형은 자신이 살기 위해 둘이 연결한 밧줄을 끊어야만 한다는 것을 안다. 끊어야 할 것인가 아닌가 하는 갈등 끝에 칼을 던지고 밧줄을 끊지 않는다. 하지만 우연한 일치일까. 얼음벽에 닳아 약해진 밧줄은 스스로 끊어지고 만다. 깊고 깊은 크레바스에 추락한 동생은 형이 살기 위해 밧줄을 끊었다고 생각한다.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된 동생은 그 안에서 한 사람의 죽음을 만난다. 자신처럼 그곳에 추락하여 죽음을 맞이한 사람이다. 우연이겠지만 그 죽은 사람은 두 형제에게 살아날 수 있는 희망을 안겨준다. 보이지 않지만 이어지는 인연이었다.

 

촐라체에 오르내리면서 그들은 끊임없이 자신과 싸웠다. 직접 대면하는 삶과 죽음은 일체의 양보가 없었다. 그들에게 촐라체는 등반하고자 하는 산이라기보다 자기 자신의 내면을 극복하고자 하는 실험 대상이었다. 크레바스에 추락은 삶의 추락이었고 그곳에서 탈출하고자 죽음과 싸우는 일은 삶의 어두움을 이겨내기 위한 처절함이었다.

 

사실 동생이 크레바스에 추락하면서 두 형제는 서로의 존재에 깊은 애정을 느낀다. 그래서 인간으로서는 삶의 난관을 버릴 수도 없고 취할 수도 없는 아름다움으로 귀결되는지도 모르겠다. 눈으로 보이는 사물에서 자신의 내면에 자리한 그늘진 것들을 찾아내고 치유할 수 있는 것은 자연밖에 없다는 믿음을 더욱 확인시켜주는 일이었다.

 

작가는 말한다. 우리 인간의 욕망에 따른 성취가 아니라 이룰 수 없을지라도 가슴속에 촐라체 하나 품고 사는 일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책을 읽고 난 후, 긴장감을 풀어 버리기에는 아쉬운 점이 많았다. 나만의 촐라체는 과연 무엇일까 라는 물음이 가득 찼기 때문이다.

 

 

#. 작가 박범신은 그의 작품 
     <촐라체> <고산자> <은교>를 '갈망 3부작'이라고 말했다.
  
   수직으로 서있는 거대한 벽을 넘어서고픈 꿈에 대한 갈망,(촐라체)

   조국과 땅을 알고자 하는 치열한 역사에 대한 갈망,(고산자)
   허위의식을 벗어버리고 나타내고 싶은 본능, 사랑에 대한 갈망 의(은교)
   3부작이라고 하였다.
 

     우선 이 3권을 다 읽었다는데 뿌듯함을 느끼며
   그 어느 것에나마
     작가의 갈망에 조금이라도 근접할 수 있었다는데 자부심을 가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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