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파트는 산을 끼고도는 자리에 위치하였다.
산자락을 깎아 내리기라도 하였을까.
유난히 높은 옹벽이 곳곳에 올려있고
그 옹벽을 타고 오르는 담쟁이덩굴은 계절별로 운치를 더해주고 있으니
삭막함을 멋지게 변화시키는 마법사다.
담쟁이의 푸른 잎이 무성하거나 요즈음처럼 붉게 물들 즈음이 되면
친구들은 우리아파트로 이사 오고 싶다는 말을 재미삼아 하곤 한다.
탐정소설에서 사건의 중심인 집은 언제나 담쟁이덩굴로 덮여 있었고
교과서에서는 마지막 잎새의 주인공으로 배운 친숙함으로 익히 알고 있었으나
가까이서 자주 바라보며 세세한 모습을 관찰하게 된 경우는
이곳 아파트에서 살고부터이다.
담쟁이에 흡반이 있기에 높은 담을 오른다는 것도,
담쟁이의 열매가 열린다는 것도 새롭게 알았다.
그에 관심을 더하여 담쟁이가 식물이 아닌 나무라는 것도 새롭게 알게 되었다.
덩굴성이라 하여 식물로 알기 쉬운데
담쟁이는 커 감에 따라 줄기가 굵어지는 특성으로 나무로 분류한다고 한다.
잘 자란 담쟁이 줄기는 어른 팔뚝크기만큼의 굵음을 지니기도 한다니 놀랍다.
담쟁이덩굴의 꽃말은 ‘공생’ 이다. 어쩜 그리도 어울리는 말일까.
담쟁이는 벽에 오르기 위해 흡반(붙음뿌리)을 내민다.
높다란 담벼락과 함께 지내기 위해 먼저 악수를 청하는 모습이 아닐까?
그에 담은 흔쾌히 자신의 자리를 내주고 있으니 어쩜 서로 공생하고 있는 모습이다.
서로 어울리기 위해 먼저 손 내미는 일!
글을 읽고 글을 쓸 수 있는 우리보다도
훨씬 더 빨리 정확히 그 이치를 깨닫고 실천하는 모습이 아닌가.
담쟁이는 흡반으로 먼저 손 내미는 단순한 진리를 수용함으로서
함께 어울리며 살아가는 진정한 지혜를 지닌 참 멋진 나무이다.
이토록 진정한 지혜란 학문을 배우고 익히는 지성을 통해 얻어지는 게 아니라
자연의 단순한 이치를 깨닫는 능력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다.
부지런히 자연에게 손 내밀어 공생을 청해보아야겠다.
▲ 잎자루가 길어서 멋진 모습일까?
▲ 담쟁이의 흡반(붙음뿌리)
▲ 담쟁이 열매
▲ 오래된 담쟁이의 줄기가 정말 어른 팔뚝만 하다
▲ 덮을 것 다 덮어주며 한껏 멋스러움을 자아낸다.
'단상(短想)'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른 아침의 메시지 (0) | 2013.11.08 |
---|---|
열매 풍성한 팥배나무 (0) | 2013.11.06 |
제 자리에 있음이 아름답다 (0) | 2013.11.01 |
길섶에서 (0) | 2013.10.25 |
마음은 언제나 (0) | 2013.10.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