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한 출근 준비의 집 안을 벗어나니
11월 첫 날의 상큼함이 와락 반겨합니다.
초라한 아파트 화단의 한 귀퉁이에 몸짓 아무렇게 서 있으면서도,
제 각각의 의태를 지니고
있는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는 국화꽃이 참 예쁩니다.
제법 서늘해진 날씨이지만
주어진 제 삶을 살고 있는 듯싶은 모습이 참 의연합니다.
꽃향기를 맡아보려고 허리를 구부려 꽃 가까이 얼굴을 들이대는 순간,
아! 알싸한 그 향기가 얼마나 좋은지요.
이 좋은 향기가 내 몸 구석구석에 자리하면 좋겠어요.
누군가가, 나에게서 국화꽃 향기가 난다고…
나만큼 국화꽃 향기를 좋아하는 누군가가,
나를 향해 코를 킁킁 거린다면
나는 호들갑을 떨며 내 향을, 국화 향을 나누어 주렵니다.
산다는 것이 무언지,
좀처럼 시간의 여유를 느끼지 못하는 날들의 연속!!
내 안의 차분함이 사라지는 듯, 내 안의 감성이 사라지는 듯,
자꾸 조바심이 납니다. 이 조바심에 제동을 거는 국화꽃!
모퉁이를 돌아서면 부딪치는 낯선 새로움 들은
꺾어지는 모서리를 살펴보라는 제동장치입니다.
삶의 속도에도 제동이 있다면 이런 국화 향 같은 것이 아닐 런지요.
국화 향 같은 맑은 고요함이 가슴 가득 흘렀으면 싶다는 욕망이
가득할 즈음에 언니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텃밭에 심은 무와,
잘 여물었지만 못생긴 호박이 많이 있으니 가져가라 합니다.
얼마나 좋은지요.
일상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시간이,
점처럼 먹어야하는 점심을 건너뛰고 달려가노라니
쓸쓸함 가득한 가을 들녘의 차분함이 마음 가득 스며듭니다.
언니의 마음과 가을을 가득 싣고
금강의 철새조망대를 지날 즈음, 갑자기
둑 건너의 풍경이 궁금해져 차를 주차하고 혼자 달음질로 둑 위에 오르니
지나던 차 한대가 뒤따라 멈추면서 한 사람이 따라 오릅니다.
아마 내가 달음질하니 무슨 풍경이 있는 줄 알았나 봅니다.
그냥 쓱 내려가는 모습이 머쓱합니다.
햇빛을 반사하는 물위에 떠있는 청둥오리의 모습이
한가롭게 느껴지며, 그들의 또 다른 삶의 방식을 느껴 봅니다.
그래요 저 철새들도 분명 생의 한 가운데서
자기의 삶을 살아가고 있을 뿐인데
우리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며 참 아름답다고 합니다.
물은 물대로 있고, 청둥오리는 청둥오리대로 있고,
산은 산대로, 들녘은 들녘대로, 나무는 나무대로
그 자리에 있음이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이 되듯
우리 사람도 그렇게 제자리에 있을 수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
서로가 짐 질수 없는 각자의 삶이 될 수밖에 없기에
더 이상 타인에게 짐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며
내 안의 생각들이 잦아 들 즈음 둑 위를 내려오니
차 뒷좌석에 실린 누런 호박들이 자기는 자기 몫을 다 했다고
나를 향해 노란 웃음을 지어 보입니다. 못난이 웃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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