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는 동안 내 몸이 자꾸만 스멀거린다. 책 속에서 창궐하는 인수공통전염병에 전염되지 않았는지 하는 기분이 들어서다. 몇 번이고 일어나 손을 씻곤 하였다. 그만큼 책의 내용이 사실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비전문적이면서 최고의 전문적인 문장을 구사하는 작가의 힘은 어디서 비롯될까. 28을 읽으면서 내내 떠나지 않는 의문이었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순간의 느낌만을 적어내는 일이 아님을 새삼 깨닫는다. 작가는 글 속의 주인공뿐만 아니라 글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의사가 되어 전문적인 용어를 거침없이 사용하여야 하며, 수의사가 되어 짐승들의 내면까지도 읽어야 한다. 또 119대원이 되어 잠긴 문을 열 줄도 알아야 하며 응급처치법도 잘 해야 한다. 자기의 느낌을 지식과 상식, 경험을 동원해 풀어나가는 글쓰기는 모든 사람에게 사실적으로 느껴질 것이기에 작가들의 그 노력과 소질, 재주를 늘 동경한다.
재형은 11년 전 알래스카에서 개썰매 경주에 참가한다. 하지만 화이트아웃에 갇혀 그만 썰매에서 낙오한다. 화이트아웃은 백색어둠이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자연의 현상일까. 그 와중에 늑대의 침입을 받았고 재형은 살기위해 개와 연결된 밧줄을 끊어 버린다. 썰매를 끌던 개들은 무참히 늑대에게 죽임을 당한다. 사고 후 19시간 만에 구조된 재형은 재활 치료를 받은 후, 고국에 돌아온다. 경기도 화양시 백운산 기슭에 드림랜드를 운영하는 재형은 유기견을 돌보며 지난날 자기 때문에 희생당한 개들에게 보답의 시간을 갖고 지낸다. 개들을 치료하며 지난날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던 개들을 죽였다는 죄책감을 덜어내기도 하는 삶의 목적이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화양시에는 “빨간눈” 이라는 괴질이 발생한다. 원인불명의 괴질은 사람과 개에 무차별적으로 전염되며 치사율이 100%라는 것밖에 모른다. 살아있는 개들을 생매장하고, 도시 전체를 고립시켜 사람들의 왕래를 막으며 전염병과 전쟁을 치루는 28일 간의 이야기다. 그 과정에 일어나는 개와 또 사람간의 살고자하는 욕망 앞에서 나타나는 인간의 본질을 극한적으로, 리얼하게 그려 나가는 소설이었다.
용케도 주인공들은 전염병에 걸리지 않고 살아남는다. 그들은 죽은 자들의 몫까지 합해 열 배, 백배의 활동을 하면서 글의 활력을 실어 나른다. 그들 역시 가족을, 애인을 잃고 남은 사람들~ 그들이 그 위험한 순간에도 남아 있는 까닭은 도망치기 위함이라고 말한다. 일상을 빼앗긴 허탈감에서, 사랑하는 이를 잃었다는 외로움에서 도망치기 위해 더 악착같이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열심이었다.
또한 한 인간이 받은 깊은 상처는, 부모일지라도 얼마나 깊은 원한을 갖는지, 그 원한이 개인이 아닌 다수에게 불행을 안겨줄 수 있다는 내면의 세계를 읽을 땐 무서웠다. 전염병보다도 더 무서운 인간 내면에서 움트는 증오심이었다.
전염병을 옮긴다는 이유로 무참히 생매장하고, 때론 총으로 동료들을 죽인 인간에게 끝까지 대항하는 성난 늑대개 링고!! 더 이상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도록 자신이 사랑했던 개, 성난 링고를 붙잡고서 링고에게 물려 죽는 재형~ 이 책에서 개와 함께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는 개와 인간의 고리를 왕래하며 인간이 절실하게 살아야 할 의미를 전달한다. 우리 인간이 지닌 본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또한 살아있는 모든 것들의 존재가치를 소중함으로 일깨워주는 내용으로 조금은 두려운 마음을 내내 끌어안고 읽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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