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하늘에 떠있는 하얀 달
무심하게 나선 출근길,
가을의 느낌이 피부로 전해지니 괜한 마음이 쓸쓸해진다. 파란 아침 하늘에 떠 있는 하얀 달은 나로부터 충분히 먼 거리에 있는 지극한 단순함의 풍경임에도 괜히 시큰해진 마음을 끌어안고 운전석에 앉았다. 무언가 모를 다감함에 이끌려 습관적으로 카 라디오를 켜니 귀에 익숙한 노래가 나온다. 커피칸타타다. 칸타타(cantata)는 이탈리아어의 칸타레(cantare, 노래하다)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약 300여 년 전, 1732년에 바흐가 작곡한 오페라이다. 바흐시대 독일에서 그 당시 유행하던 커피를 소재로 아버지와 딸의 갈등을 코믹하게 그린 내용으로 종교적이지 않고, 조금은 세속적인 내용이어서 일까 전반적으로 음악이 경쾌하고 친근미가 있어 쉽게 귀에 들어온다.
내용은 아버지는 딸에게 커피를 마시지 말라고 하는데 딸은 제발 부탁을 한다. 하루에 3번 커피를 마시지 못하면 말라비틀어질 것이라 말하면서 부르는 아리아에서 커피 맛은 “수 천 번의 입맞춤보다도 더 달콤하다‘ 고 한다. 아버지는 커피를 계속 마시면 약혼자와 결혼을 못하게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그러자 딸은 이제 커피를 마시지 않겠다고 약속을 하지만 작전상 후퇴였다. 딸은 혼자 속으로 말한다. 결혼 전에 커피를 마셔도 좋다는 내용으로 결혼서약서에다 한 구절 써야겠다고 한다.
아버지와 딸의 갈등의 원인이 어찌 이다지도 단순함인지 웃음이 빙긋 나온다. 300여 년 전, 단순한 이야기를 가장 과학적인 이치에 따른 음악으로 풀어낸 작곡가의 천재성이 경이롭다. 단순함이 빚어낸 아름다움은 영원성을 지니고 있을까.
나 역시도 커피를 즐겨 마신다. 날씨의 영향을 받아서도 그렇지만 괜한 시간의 공백을 만나거나 나만의 오붓한 시간이 다가오면 나도 모르게 커피 한 잔을 챙겨들고 앉는다. 차를 마신다 함은 그만큼 시간과의 역학관계가 아닐지… 때론 멋진 분위기에서 예쁜 커피 잔을 들고 앉아 있는 것도 생각을 하지만 나의 생활패턴은 그런 분위기와 사뭇 다르다.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문득 생각날 때 마다 커피를 즐긴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종이컵을 자주 사용하곤 한다.
종이컵 가득 커피를 담아 두 손으로 감싸들고 있으면 전해오는 온기에 그만 마음이 스르르 녹아내린다. 혹자들은 종이컵의 유해성을 이야기하며 배척하기도 하지만 난 종이컵이 지닌 모습까지도 더 할 수 없는 단순함의 매력이라 여겨진다.
종이컵의 끝은 어느 것을 막론하고 둥그렇게 말려있다. 이는 우리의 입술에 부드러움을 주기위한 것이라 여겨지지만, 커피를 마실 때 입술이 닿지 않는 다른 쪽으로 흘러내리지 않는 이치다. 컵의 날렵함이 참 예쁘다. 종이컵을 책상위에 올려놓고 바라보면 아담하면서도 안정감을 느끼게 해준다. 하관이 빠르게 깎여 내려짐은 여러 개의 종이컵을 포개어 쌓을 수 있으니 공간 차지를 하지 않으면서도 많은 개수를 품을 수 있잖은가. 겸손함이었다.
종이컵의 밑 부분은 약간의 턱을 내 놓고 안쪽으로 올라가 있다. 턱은 다리가 되어 컵을 받쳐줄 뿐만 아니라 내용물의 온도를 보존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밑 부분이 직접 바닥에 닿으면 컵 안에 든 물질의 온도를 쉽게 빼앗아 가기 때문에 그를 방지하기 위함이란다.
흔하디 흔한 종이컵, 아주 단순 명료한 종이컵이 지닌 종이컵의 과학적 수준은 최고에 이르고 있었다. 더 이상 진화할 래야 할 수 없는 경지에 도달함이 이렇게 단순함이라니…
단순하다하여 품은 내용까지 단순함은 절대 아니다. 계절 따라 아무 곳에서나 아무렇게 피어나는 들꽃 한 송이에도 그들만이 지닌 숨은 비범함은 우리를 늘 감탄케 한다. 같은 색, 같은 모습으로 피어나는 것 같지만 그들은 서로를 침범하지 않고, 흉내 내지 않으며 꽃잎 하나 잎자루 하나에도 특별함을 지니며 서로 다르게 자라고 있는 것이다. 아무렇게 핀 꽃이라 무심히 지나칠 수 있지만 그들은 더 이상의 경지를 바라보지 않으면서 단순함으로 세월을 살아가고 있음이다.
바흐의 커피칸타타를 들으며 흔한 사물들이 지닌 단순함의 아름다움을 연상했다. 이제는 점점 추워지는 날씨가 될 것임에 커피를 더 자주 마시게 될 것이다. 자신만이 지닌 단순함과 최고의 과학적인 이치로 전하는 종이컵의 온기를 마음껏 누리고 싶다.
멋진 분위기를 누릴 줄 모르는 단순한 생활이지만
그 안에서 즐길 수 있는 아름다움을 놓치지 않는 진득한 여유를 지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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